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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시대의 호탕한 야인이 남긴 족적 - 『백범일지』
2007년 갈라선 남북의 두 정상이 다시 한 번 만나는 길은 첫 번째 정상회담만큼의 감격과 이슈를 몰고 오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의미가 있습니다. 남북 군사분계선을 남측의 노무현 대통령은 차에서 잠시 내려 직접 두 발로 걸어서 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데,
2007년 갈라선 남북의 두 정상이 다시 한 번 만나는 길은 첫 번째 정상회담만큼의 감격과 이슈를 몰고 오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의미가 있습니다. 남북 군사분계선을 남측의 노무현 대통령은 차에서 잠시 내려 직접 두 발로 걸어서 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데, 세계 언론이나 사진기자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끊어진 반도의 허리를 두 발로 넘어간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려야 없을 수 없습니다.
군사분계선은 아니지만, 남북을 갈랐던 그 선을 두 발로 걸어 넘은 이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백범 김구, 간신히 해방된 조국의 분단을 안타까워하며 직접 두 발로 38선을 넘어 김일성과의 회담을 위해 찾아갔던 이 늙은 독립투사는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오랜 투쟁과 방랑의 삶을 마치게 되는데, 그가 남긴 자신의 일생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청소년의 필독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둘러볼 책은 바로 그 백범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입니다.
1997년 원본이 보물 제1245호로 등록되기도 한 『백범일지』는 해방 후 백범 스스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써 내려간 자서전입니다. 상, 하 두 권의 내용과 ‘나의 소원’이라는 김구의 독립운동 사상을 포함한 3장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백범의 자서전은 그가 살아온 삶만큼이나 굴곡이 심하고 역동적입니다. 조선왕조의 과거 시험에도 응시했고,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사냥꾼을 모아 관군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아시다시피 상해에서 주요 폭탄 테러를 준비하고, 직접 일본인을 살해하기도 한 역동적인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삶은 이른바 ‘먹물’과는 거리가 먼, 무척이나 소탈하고 평범한 문체를 통해 『백범일지』를 타고 조용하게 독자의 가슴 속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의 파격적인 인생은 그냥 나열하면 도대체 이 이야기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인지, 드라마 <야인시대>에나 나올 법한 협객의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내란주도(동학농민운동), 살인(일본군관 살해), 탈옥(2회)과 같은 거침없는 행보는 국부로까지 추앙받는 점잖은 사진 속 이미지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김창수(김구의 옛 이름)가 그렇게 의기 넘치는 성격이었기에 오히려 독립운동의 큰 맥을 이을 수 있는 대담함을 지닐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담한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군 살해 장면입니다. 백범은 어느 시골길을 가는 도중 묵어갔던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에 객주 주인과 대화하는 한 남자를 목격합니다. 해주 말씨를 쓰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두루마기 사이로 살짝 비치는 일본 군도軍刀를 본 백범은 발끈합니다.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선 백성의 반일감정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국모의 원수’ 일본의 앞잡이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백범은 치밀한 살해 준비를 시작합니다.
“주모! 내가 오늘 천릿길을 달려가야 하니, 밥상 일곱 개를 차려오게. 허기가 지면 천릿길 가기가 어려우니.”
모두가 다 들리게 주모에게 7인분의 밥을 시키자, 주인은 저런 미친놈을 다 봤느냐며 혀를 찹니다. 모두가 미친놈이라고 수군거리는 찰나에 한 노인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나무랍니다.
“여보게들, 원래 난세에 위인이 나는 법일세. 저 젊은이가 정말 축지법에 도통한 영걸인지 누가 알겠나.”
한바탕 호기를 부린 백범은 빈틈을 노려 일본 밀정을 쓰러뜨리고, 칼을 빼앗아 일본군을 살해한 뒤 그 피를 담은 사발을 들어 벌컥벌컥 마시는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변에 소리칩니다.
“이놈은 국모의 원수인 일본의 앞잡이다! 내가 이놈을 죽은 것은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지 사사로운 감정에 의한 것은 전혀 아니니 걱정치 말라! 나는 이 길로 경찰서로 걸어가 자수할 터이니 붙잡지 말라!”
그러자 아까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던 주막 주인이 잽싸게 백반 7인분에 국수 소반까지 따로 챙겨?가 ‘장군님 장군님’ 굽실거리며 백범 앞에 올립니다. 백범은 천릿길 간다고 호기는 부려 놨지만, 도저히 일곱 그릇을 먹을 엄두가 안 나 꾀를 내어 숟가락 겹쳐다가 큰 양푼에다 밥과 반찬 쏟아 넣고 비벼 몇 숟가락 뜨더니 이내 엄살을 피웁니다.
“오늘은 먹고 싶었던 왜놈 피를 먹었더니 밥이 안 들어가는구먼~.”
거침없는 행동력으로 상상도 못할 일을 수시로 벌였던 백범의 풍모도 대단하지만, 그의 일대기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는 바로 백범이 살아 숨 쉬던 그 시대의 시대상입니다. 백범 자신도 『백범일지』에서 이야기하지만, 그러한 낭만 시대와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분위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봉건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체제로 옮겨가는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그것도 자체로부터의 힘이 아닌 외세라는 새로운 형태의 압력에 의해 변화하는 세계라는 분위기는 안 그래도 정체되어 있던 한반도에 큰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게다가 법과 제도가 오늘날처럼 조직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러한 일탈적 행동은 ‘호탕하다’ ‘대장부답다’와 같은 형태로도 읽힐 수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요즘 세상에 김두한 같은 폭력배가 거리를 휘몰고 다녔더라면 그의 일생이 <야인시대>라는 제목으로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낭만의 시대였기에 백범의 흔적은 독립운동가로서보다는 ‘바람 같은 야인’으로서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남들보다 뭘 많이 배운 것도 아니었고, 풍족한 재산과 넉넉한 삶도 아니었던 그는 그러나 남들보다 호탕하고 시원한 기백을 지녔고, 그 기백을 펼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우직할 정도로 강한 신념은 그러한 호탕한 풍모를 타고 마침내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반체제 운동을 지휘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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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저/<도진순> 주해10,800원(10% + 5%)
『백범일지』는 1947년 국사원에서 최초로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전국민의 필독서이다. 27년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 스승 백범, 일제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살길을 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