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날,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나니 왠지 오늘은 나에게 휴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하늘도 꾸물꾸물한 게 이런 날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친구와 차 한 잔 마시며 수다나 떨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우리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 한 잔 어때?” 그러자 친구가 바로 “왜? 거기도 책이 있냐?”라고 말하네요. ^^ 잽싸게 준비하고 딸내미 mp3플레이어까지 챙겨서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정말 상쾌했습니다. 압구정역에서 로데오거리 쪽으로 걷다가 파리 크라상에서 직진하면 삼거리가 나와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다시 갈림길에서 좌회전을 하면 밀크티라는 곳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우회전하면 작은 골목이 보이고 이층에 ‘아뜰리에’라는 간판을 단 건물이 보입니다.
| 카페 아뜰리에 외부 전경 |
|
“우와~ 정말 여기 얼마 만에 와보냐? 한 10년은 더 된 것 같아.” 친구의 말이 세월을 실감하게 하네요. 뭔가 우리만의 비밀스런 장소로 떠나는 여행 같아서 저도 친구도 설레는 맘으로 아뜰리에로 가는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갔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벽에는 클림트의 제자로 에로티시즘이 넘치는 그림을 그렸으며 스페인독감으로 죽은 부인을 따라 3일 만에 짧은 생을 마감한 에곤 쉴레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 아뜰리에 입구 |
|
자전거가 서 있는 입구에 들어서자,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고 먼저 들어선 친구는 “와~~” 하며 감탄을 하더군요. 시원스레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때마침 내리는 빗소리가 나긋나긋한 재즈 음악과 뒤섞여 멋진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우리는 한쪽 테이블에 앉아서 천천히 아뜰리에를 감상하기로 하고 일단 차 한 잔을 시켰습니다.
| 넓은 테라스와 엔틱 가구로 꾸며진 아뜰리에 |
|
오래된 철제 침대 위에 가지런히 올라앉아 있는 알록달록하고 예쁘장한 수제신발, 낡은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노트와 앙증맞은 가방과 소품, 각각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개성 강한 테이블과 의자, 깔끔한 흰색의 주방 한쪽에는 손 글씨로 쓴 메뉴가 있는 까만 칠판과 주인장의 요리 비결이 가득 들어 있을 것 같은 레시피와 요리책이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주방 옆의 하얀 책장 하나였습니다.
|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
|
| 책이 있는 공간 |
|
| 아뜰리에의 깔끔한 주방 |
|
많지는 않았지만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운 책은 자신의 주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가 있으며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워하는지 제게 알려주는 같았어요. 요리에 관한 책, 패션에 관한 책, 영화에 관한 책, 그 외에도 각종 소설과 손때 묻은 원서, 잡지가 빼곡히 꽂혀 있었습니다. 책꽂이 옆으로는 작은 작업실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앞에는 ‘플라워 강좌’를 연다는 작은 종이가 붙어 있어서 이 공간이 어떻게 쓰이는지 대충 짐작하게 했답니다. ^^
| 여러 가지 책이 가득한 책꽂이 |
|
| 책꽂이와 가로막이로 공간 구별을 한 작업실 |
|
| 아뜰리에에서 열리는 강좌를 알려주는 안내판 |
|
| 여러 가지 소품과 책이 함께 있는 책장 |
|
주문한 차가 나오고 따뜻한 차의 향기를 맡으며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자니 지금 이 시간이 꿈처럼 느껴지더군요. 친구도 그랬는지 연방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카페나 해볼까?”
비 오는 날의 카페 아뜰리에의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요? 마흔의 문턱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쉼 없이 달려온 아줌마라는 사실도 잊은 채, 그 순간 우리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하하 호호 이야기 바구니를 풀어놓는 소녀로 변해있었답니다.
| 창이 큰 테라스 너머로 옹기종기 지붕이 보인다. |
|
“만약 우리한테 이런 공간이 있다면 무얼 할까?”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야 당연히 집 안에 있는 책 몽땅 꺼내다가 북 카페를 만드는 거지. 저쪽 공간에는 마루를 만들어서 배 깔고 누워서 온종일 책 읽어도 좋을 그런 곳을 만드는 거야.”
“그럼 이쪽에는 이젤을 놓아서 누구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볼까?”
“그거 좋다. 그리고 벽에는 유명 동화작가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말이지. ^^”
| 구석진 공간에 자리한 책상과 의자. 편지 한 장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벌써 멋진 북 카페의 사장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상상이었지만 책이 있고, 음악이 있고, 또 맛난 차가 있는 그런 공간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어 보는 자신만의 아지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든 주인장은 누굴까?”
“그러게, 정말 궁금한데?”
우리는 마침 옆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아뜰리에의 주인장 중 한 분인 박지영 씨에게서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카페 아뜰리에는 재봉틀 소리를 좋아하는 패션큐레이터 박지영 님과 달콤한 향기에 빠진 디저트작가 백오연 님,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인 김지은 님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공간이라고 하네요.
서로 초등학교와 대학 친구로 만나 함께 작업실을 꾸미고 서로 에너지를 나누며 세상 속에서 그들이 지닌 열정과 삶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아뜰리에’가 뫅생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다시 아뜰리에를 둘러보니, 하나하나의 공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소박하게 시작하는 작은 공간이지만 서로에게 줄 수 있는 inspiration은 무한한 곳’이라고 소개하는 그녀의 반짝이는 큰 눈을 바라보면서 이런 공간을 만든 세 친구가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아뜰리에 간판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간판에 그려진 세 여자의 이미지도 바로 친구들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 아뜰리에를 만든 세 친구의 모습이 디자인된 가방 |
|
“언제든지 들러서 편안하게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시다 가세요. 그리고 다음엔 여러 가지 모임이나 강좌가 있으니 참여해보셔도 좋고요."
어느새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우리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주인장에게 담에 비 오는 날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아뜰리에를 나섰습니다.
“이런… 정말 신데렐라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친구가 한마디 하네요.
“담에 또 비 오는 날 만나자. 이제 우리만의 아지트가 생긴 거잖아? 내가 ‘거기~~’ 하면 알았지?”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 대한민국의 바쁜 아줌마에게는 기약할 수 없는 날이겠지만, 비 오는 날이면 아마도 친구나 저나 마음은 책이 있고 따뜻한 차가 있고 음악이 넘치던 아뜰리에로 달려가고 있지 않을까요?
[TIP]
아뜰리에 앤 프로젝트(
//atelierandproject.com/)
* 영업 : 오전 11:00~오후 10:30 (일요일 휴무)
* 전화 : 02-548-3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