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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소라닌』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에는 막연한 미래밖에 없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30대라는 나이는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에는 막연한 미래밖에 없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30대라는 나이는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제대로 되는 건 없고, 그렇다고 기성사회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기는 영 내키지 않고. 뭔가 결론을 확실하게 내고 달려가는 것도 아닌 어정쩡하고 불투명한 나날들. 그런 게 나의 20대 초반이었다. 아마 지금 젊은이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중·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일류대학에 가서, 졸업을 하자마자 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붙거나 대기업에 안전하게 취직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는 입장이 아니라면, 대개가 우왕좌왕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아사노 이니오의 『소라닌』은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띠지에는 ‘20대 초반…!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말이 적혀 있다. 아직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채 그저 그런 따분한 회사의 평범한 사무직으로 적당히 다니는 대졸 2년차의 메이코. 일러스트를 그리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뮤지션을 꿈꾸는 다네다. 메이코와 다네다는 동거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조그만 약국에서 일을 하는 빌리와 대학 6년생인 가토는 다네다와 함께 밴드를 하고 있다. 아직 자작 싱글 하나 내지 못한, 아마추어 밴드를.
『소라닌』은 따분하고 지겨운 직장에 진절머리를 내는 메이코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나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인데, 무기력하게 그저 딸려만 가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지방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대학에 들어왔을 때에는 ‘허전하고 불안했지만, 한편으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에, 그 무렵의 하늘은 한없이 드넓었다.’ 하지만 지금 메이코의 하늘은 ‘낮고 좁고, 그리고 무겁다.’ 과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 대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젖어들던 메이코는,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다. 자기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 위해.
『소라닌』이란 제목은, 감자의 새싹에 있는 독(Solanine)이란 뜻이다. 새싹에 들어 있는 독이라… 그것 참 묘한 일이다. 새로운 생명을 틔워내기 위한 싹에 독이 들어 있다니. 하지만 그게 모든 생명의 본질 아닐까. 메이코의 어머니는 다네다에게, 하나에만 매달려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자유롭게 해보라고 말한다. 빌리는 아버지의 약국을 물려받아 적당히 살 수 있지만,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고민한다. 안정과 모험, 어떤 길로 접어들든 위험은 따른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늘 후회만 하며 살 뿐이다. 어느 쪽이든 만족할 수도 없고 평화로워지지도 않는다. 편하면 편한 만큼, 모험을 하면 모험을 하는 만큼 거기에는 독도 함께 숨어 있다.
아사노 이니오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의 전형처럼 여겨지는 밴드를 둘러싼 젊은이들의 일상 이야기라는 점은 오히려 마이너스 점수지만, 아사노 이니오가 그려내는, 메이코와 친구들의 디테일한 삶의 묘사는 정말 공감이 간다. 그런 시절을 보낸 적이 있거나, 지금 엇비슷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면 『소라닌』이란 만화는 최고의 작품일 것이다. 너무 예리하고 현실적이어서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메이코와 친구들의 일상은 결코 평화롭거나 나태하지 않다. 그들도 열심히 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모라토리엄을 즐기며 한없이 늘어지기도 한다. 사회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성공의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쉽게 평화가 주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불안하고, 언제나 아쉽고, 언제나 짜증이 나고, 언제나 허탈해진다. 그들이 성공이란 신기루를 직접 손에 쥐기 전까지는.
그런데 묘하게도, 아사노 이니오는 주인공 중 한 명을 죽여 버린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슬프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막막하고, 모든 사물이 회색으로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흘러간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듯해도, 그의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다. 누군가가 죽어도, 남은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고, 이 세상의 섭리다. 안타깝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도, 절실하게 원하던 음악을 하게 되어도, 그렇다고 성공 같은 것이 단박에 찾아오지는 않는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2세는 등장하지 않는다. 키다리 아저씨도 없다. 단지 비슷한 일상이 여전히 열려 있을 뿐이다.
다네다가 만든 『소라닌』의 가사에는 “이제 안녕이라네. 이별이 나쁠 것도 없지. 어디선가 늘 건강하기를. 나도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꼭이야.”란 말이 있다. 그 말처럼, 희로애락의 거대한 물결과 파도, 때로는 해일이 닥쳐오기도 하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20대 초반은 아직 그 해일을 견딜 방파제가 덜 만들어진 상태다. 그러니 해일에 휩쓸리기도 하고, 파도에 내동댕이쳐지거나 물을 한껏 들이켜기도 하면서 우왕좌왕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인생이다. 20대 초반을 거친 나로서는 사실 할 말이 그것밖에 없다. 겪어볼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하면서 하나씩 몸에 익혀야 하는 것이다. 메이코가 기타 연주를 배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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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없이 불투명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청춘광상곡- 사회생활 2년차, 다네다와 메이코의 유쾌하면서도 가슴 아린 작은 사랑 이야기- 성별과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선사할 그 첫 번째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