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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성性의 벽을 넘어
여자와 남자가 뒤바뀐다면 어떨까.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평등주의와 유토피아의 합성어, 그 땅의 이름은 이갈리아다. 여자는 ‘woman’이 아닌 ‘움wom’으로 불린다.
여자와 남자가 뒤바뀐다면 어떨까.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평등주의와 유토피아의 합성어, 그 땅의 이름은 이갈리아다. 여자는 ‘woman’이 아닌 ‘움wom’으로 불린다. 남자는 ‘man’이 아닌 ‘맨움manwom’으로 불린다. 이갈리아의 세계는 가모장제를 기반으로 한다. 기존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들의 역할을 여자가 대신하며, 남자들은 여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남자들은 집에서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고, 여자들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성에 대한 이미지와 관념까지도 뒤바뀌게 된다. 이갈리아의 남자들은 기존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들, 즉 연약함, 보호본능, 내향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이에 반해 여자들은 강건하고 거칠고 외향적인 특질을 갖게 된다.
책은 재미있다. 남자와 여자가 뒤바뀐다는 가정도 그렇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기발함을 보여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페호라고 불리는 기구인데, 페호는 맨움들이 페니스를 받치기 위해 입는 옷이란다. 꽉 낀다, 이음매 부분이 아프다 등등, 페호에 관해 이갈리아의 맨움들이 수다 떠는 부분에 이르면 웃음을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단발성 유머들로만 책이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갈리아의 가능성, 즉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뒤바뀌어 맨움과 움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부터가 현재 지배적인 가부장제에서 남자들이 누리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권력의 필연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책의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책의 많은 부분에서 이갈리아의 가능성을 논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부장제의 필연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가장 큰 논거는, “아이는 여자가 낳는다”라는 것이다. 임신 중 상당한 기간 동안 그녀의 노동력은 무용의 상태가 되며, 아이를 낳고서도 한동안은 경제?사회적인 경쟁 권역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부에서는 가부장제의 필연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브란튼베르그는 이러한 관념마저도 비판한다. 이갈리아에서는, 남성은 경제 문제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 수유는 남성들의 몫으로 정해져 있으며(어떻게 수유하는지는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육아도 그렇다. 부분적으로 소개하기는 했지만, 책 전체에 걸쳐 작가는 가부장제의 필연성은 허구라고 외친다.
한 이동통신 회사의 광고가 기억난다. 군복을 입고, 차렷 자세를 한 여자가 거수경례를 하던 장면, 그리고 자막. ‘차이는 인정한다, 하지만 차별엔 도전한다.’ 과연 이갈리아는 존재할 수 있는 땅일까. 근본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같을 수 있을까.
둘은 같을 수 없고, 같아져서도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여자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전근대적인 발언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신체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속속들이 밝혀지는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사회문화적인 가치 주입과는 별개로 정신 능력에 있어 남녀는 차이가 있다. 남자와 여자는, 같지 않다. 그리고 그에 바탕하여 각각의 성에 더 잘 맞는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란튼베르그는 이갈리아의 가모장적 사회제도 역시 생물학적 체계에 기반한다고 말하지만, 설득력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600만 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다시 한 번 시간을 되감는다 해도 이갈리아가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나는 회의적이다. 현재의 모습과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비슷하게, 가부장적인 사회가 형성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브란튼베르그의 대담한 가정은, 가정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뒤집음으로써 은폐되고, 일견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차별들을, 그는 날카롭게 집어낸다. 이갈리아의 맨움, 그리고 현대 사회의 여성은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를 관통하는 암묵적이고 포괄적인 동의에 의해 그들은 자신의 꿈을 희생하기를 강요당하며,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할 때가 있다. 배를 타서 훌륭한 어부가 되고 싶었던 맨움, 다리를 설계하고 싶었던 맨움들은 꿈을 포기하고 결국 한 가정의 육아와 가사에 치여 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인 미덕이며 의무다.
여성 상위적인 사회 체제가 나타나는 이갈리아건, 남성 상위적인 사룈 체제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현대사회건 간에 대립은 필연적으로 한쪽의 희생을 요구한다. 성과 성 간의 무리 짓기가 도대체 무엇을 보장하는가. 상대 집단과 내 집단 간의 분열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패거리화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벽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벽은 바로 성性의 벽이 아닐까. 개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 사랑만이 그 굳건한 벽을 허물 유일한 계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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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도전! 독서골든벨' 우승자 문형범 학생의 18년간 독서편력이 맛깔스럽게 담겼다. 상상력, 감수성, 표현력 모두 만점! 책속의 세상과 사람들, 그 속에서 배운 사랑과 사유와 감성의 힘을 빼어나고 겸손한 문장으로 들려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