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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의 조화, 진단과 처방의 틈새

호주 생물학자 팀 플래너리의 '이란성 쌍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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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피터 샤우텐과 공저한 책 두 권의 한국어판은 팀 플래너리(Tim Flannery)를 동물학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번역된 그의 저서에선 스스로 “나는 화석과 지질 시대에 대해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라고 신원을 밝혔다.

양장본과 보급판

화가 피터 샤우텐과 공저한 책 두 권의 한국어판은 팀 플래너리(Tim Flannery)를 동물학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번역된 그의 저서에선 스스로 “나는 화석과 지질 시대에 대해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라고 신원을 밝혔다.

『자연의 빈자리』(이한음 옮김, 지호출판사, 2003)는 샤우텐의 그림과 플래너리의 글이 조화롭다. 야생 생물을 전문으로 그리는 샤우텐은 책에 수록된 멸종 동물 103종을 거의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이를 위해 그는 표본이 산재한 세계 각지의 자연사박물관을 훑었다. 플래너리는 서문을 통해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만을 다루었다”는 점과 네 가지 원칙에 따라 멸종동물을 선별했음을 고지한다.

『경이로운 생명』(이한음 옮김, 지호출판사, 2006) 또한 샤우텐과 플래너리 콤비의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97종류의 동물들은 이런저런 식으로 생명 진화의 극단에 서 있으며, 진정으로 경이로운 생물들이다.” 전부 척추동물이다. 두 사람은 “이 책이 새로운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연에 있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관심을 갖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자연의 빈자리』『경이로운 생명』은 매우 아름다운 책이다. 티 테이블 북(茶卓書) 형태의 『자연의 빈자리』 번역서 초판은 진경을 연출한다. 판형을 줄인 보급판 『자연의 빈자리』(2006)와 보급판으로만 나온 『경이로운 생명』의 아름다움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팀 플래너리의 『기후창조자』(이한중 옮김, 황금나침반, 2006)와 『지구 온난화 이야기』(이충호 옮김, 지식의풍경, 2007)는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관계다. 같은 책으로 볼 수 있으나, 내용이 똑같진 않다. 페이퍼백으로 만들면서 분량이 줄고 내용 일부가 달라졌다. 하드커버의 진입장벽을 낮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후창조자』를 알기 쉽게 다시 쓴 『지구 온난화 이야기』를 번역한 거라는 페이퍼백의 ‘일러두기’는 설득력이 약하다. 『기후창조자』도 그리 어렵지 않다. 둘 중 어느 것을 읽어도 무방하다.

나무랄 데 없는 설명

팀 플래너리의 기후 변화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공감의 정도가 크게 엇갈리는 드문 경우다. 기후 변화에 대한 그의 설명은 나무랄 데가 없다. “온실 기체는 지표면 근처의 열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둔다. 대기 중에 온실 기체가 증가하면, 온실 기체가 가둔 열 때문에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게 되는데, 이것을 지구 온난화라 부른다.”

기온이 오르면 지구의 기후계에 압력을 줘서 기후가 변한다. 기후와 날씨는 구별된다. 날씨는 우리가 늘 경험하는 것이고, 기후는 특정 지역이나 지구 전체에 장기간 나타나는 평균적인 날씨다. 대류권은 대기권 중에서 (적도를 경계로 나누어진) 남반구와 북반구의 공기가 서로 통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래서 남반뢱에 사는 주민은 지평선을 보이지 않게 하고 풍경을 우중충하게 만드는 북반구의 오염된 공기를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산화탄소는 지구를 덥히는 대표적인 온실 기체다. 이산화탄소가 발휘하는 온난화 효과는 전체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산화탄소는 잠재적 온실 기체인 수증기에 대해 방아쇠 구실을 하기도 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중요한 온실 기체다. “21세기에 일어나는 지구 온난화 효과에서 메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15~17퍼센트로 추정된다.” 온실 기체 중에서 가장 희귀한 것은 하이드로플루오르카본(HFC) 가족과 클로로플루오르카본(CFC) 가족이다. HFC와 CFC는 화학공학자들이 만들어낸 물질이다.

“현재의 밀란코비치 주기에는 이 긴 여름을 설명할 수 있을 만한 특이한 게 아무것도 없다. 사실, 만약 밀란코비치 주기가 아직도 지구의 기후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지금은 서늘한 기후가 계속되고 있어야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토목공학자로 보낸 밀루틴 밀란코비치는 지구의 기후 변동을 이끄는 중요한 주기 세 가지를 발견했다. 10만 년을 주기로 하는 지구의 공전 궤도와 4만 2000년 주기로 변하는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 그리고 2만 2000년 주기의 지구의 세차 운동이 그것이다. “세차 운동은 팽이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회전하는 것처럼 지구의 자전축이 2만 2000년을 주기로 한 바퀴씩 빙 도는 것을 말한다.”

환경과학자 빌 러디먼은 지구의 기후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온난화 안정기에 있는 요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전의 주기에서는 한 번도 작용한 적이 없지만, 이번 주기에서만 작용하는 어떤 것이어야 했다. 그는 그 특이한 요인이 바로 우리라고 결론 내렸다.” 석탄의 잘못이 아니다.

“오존 구멍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파울 크루첸과 그 동료들은 이미 새로운 지질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인식하고, 우리 종의 이름을 따 그것을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이름 붙였다. 인류세가 시작된 시점은 산업 혁명의 거대한 기계들이 뿜어 낸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800년으로 잡았다.”

공감하기 어려운 대안

플래너리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좀 아닌 것 같다. 순진하다고 할까, 뭘 모른다고 할까. 그의 대안은 현상 유지적이다. 삶의 방식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력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전 세계 각지에서 튼튼한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배출량을 줄인 정부와 기업의 사례는 많다”는 것이다.

영국의 어떤 곳에선 탄소 배출을 70퍼센트 이상 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영국의 지방 의회, 그것도 일부에 그친다. 플래너리는 태양과 태양에너지를 집적, 끌어내는 기술로 태양열 온수기, 태양열 발전, 광전지 등을 든다. 그런 와중에 그의 빈약한 사고가 드러나기도 한다.

우선, 기술만능주의에 빠져있다. 핵 발전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안이하다. “매년 우라늄 채굴이나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죽어 가는 사람보다는 석탄 채굴과 석탄을 때는 발전소 때문에 죽어 가는 (탄광 사고와 폐 질환을 통해) 사람이 더 많다.” 기술집약적인 것과 노동집약적인 것의 무차별한 비교도 문제려니와 ‘막장 인생’을 모독하는 언사다.

“핵무기가 악당의 손에 들어갈 위험성 문제를 제기한다”거나 중국과 인도, 두 나라는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핵 확산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라는 인식은, 이 사람이 제정신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핵보유국은 핵무기를 계속 더 만들어도 되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사용한다는 말인가?

그는 퍼센트 놀음을 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중에서 “적절한 것들을 선택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70퍼센트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어째서 지금 당장 왕창 줄이지 못하는가? 화석 연료, 특히 석탄을 태울 때 배출되는 탄소가 급박한 위협이라면서 말이다. 그의 주장은 영국 왕실의 ‘병 주고 약 주기’ 만큼이나 모순되고 짜증스럽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외국 방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환경 투자로 상쇄할 계획이다. 다음달 미국을 공식 방문할 예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에서 미국까지 가는 동안 항공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계산한 뒤, 이로 인해 환경이 오염된 만큼을 정화할 수 있는 비용을 ‘나무 심기 프로젝트’나 ‘무공해 에너지 생산 연구’에 투자할 예정이다.”(<한겨레> 2007년 4월 26일자)

환경 투자로 여왕을 싣고 가는 비행기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갈음하는 것은 아주 편한 셈법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반세기가 넘는 재임기간 동안 세계 곳곳을 다녔다. 이제는 버킹엄 궁에서 편히 지내실 때가 되지 않았나? 석탄을 더럽다고 비난하는 플래너리가 칭송하는 대체에너지는 과연 “깨끗한 에너지”일까? 정녕 깨끗하기만 할 걸까?

“기후 변화와 관련하여 정부의 결의를 더 다지기 위해서는 선거 때마다 이 문제를 최상의 의제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도 납득이 안 간다. 플래너리는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의 선거입후보자 선별법을 끌어들이지만 어쩐지 궁색하다. “아울러 정치인에게 그의 입장을 묻지 말아야 한다. 대신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정치와 정치인은 탄소 배출량과 무관하다고 본다. 정치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나는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게 전혀 없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플래너리의 결론은 ‘판단은 독자의 몫’ 혹은 ‘결정은 유권자의 몫’이라는 상투어처럼 무의미하다. 또한 나는 왜 그가 시장경제와 경쟁의 요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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