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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 1990년대에 나온 것들치고 후일담 아닌 것이 없다

1990년대 중반, 갑자기 1980년대는 사라졌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학살로부터 반드시 시작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1980년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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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가장 선정적으로 뒤돌아본 이는 최영미 시인이다. 그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을 통해 1980년대를 ‘잔치’에 빗대어 ”잔치는 끝났다 /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겨 환멸의 1990년대로 떠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나는 잔칫상을 뒤로하면서, 누군가 홀로 남아 사람들이 떠난 잔칫상을 치우고, 새벽이 오기 전에 잔칫상을 다시 차려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을 알지만,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990년대 중반, 갑자기 1980년대는 사라졌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학살로부터 반드시 시작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1980년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광주도 사라지고, 동지는 전향하고, 깃발은 간데없고. 그러자 1980년대로부터 살아남아 1990년대로 건너온 어떤 이들은 쓰러진 혁명의 깃발을 추켜올리며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1980년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1990년대를 환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또 다른 어떤 이는 1980년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1990년대를 시작하자고 말한다. 모두에게 1980년대의 의미는 각각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뒤돌아보는 1980년대도 각각이었다. 1990년대 중반 무렵의 일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나온 것들치고 후일담 아닌 것이 없다. 1990년대 것들은 1980년대 서정이 노래한 ‘혁명적 낙관주의’가 낳은 자식들이다. 1980년대 서정은 혁명적 낙관주의였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학살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죄책감과 분노에 시달렸다. 대학 대신 공장에서, 일터가 아닌 거리에서 그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표현했다. 브레히트가 ‘후손에게’라는 시를 통해 “나의 시대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라고 말하듯, 1980년대의 사람들은 모두 감옥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80년대의 혁명적 낙관주의는 학살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잉태되어 피 묻은 권력과 모순투성이 한국현대사에 대한 분노를 먹고 자랐다. 새로운 세상은 반드시 온다는 전망을 획득한 서정은 현실의 고통을 역사가 보상하리라는 전사의 믿음 속에서 전투적으로 단련되었다. 1980년 사람들에게 혁명적 낙관주의는 세상은 해독 가능하다는 인식과, 세상은 변화 가능하다는 실천의 변증법이었다. 그것은 혁명가, 곧 운동권의 세계관이었다. 그러니 어느 날 동유럽 사회주의를 통해 1980년대가 비참하게 쓰러지는 것을 본 이들이 대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1980년대에 가난한 이웃들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원미동 사람들』이나 전교조 원년의 투쟁을 소설로 옮긴 『슬픔도 힘이 된다』를 발표하기도 했던 양귀자는 변혁을 긍정하던 소설가였다. 그는 소설이 쓰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생전 하지 않던 일을 1992년에 하게 되고, 그것을 소설로 옮기고 있다. 199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숨은 꽃」에 그 내용이 담겨있다. 그가 여행을 떠난 까닭은 소설 쓰기의 전망이 사라져 버린 데서 오는 피로감이었다.

나는 거의 한 달 이상 줄곧 피곤했다. 물론 피로회복제 같은 것을 먹어 본 적도 없었다. 도대체가 회복시킬 피로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종일 팔다리를 휘둘러 일을 하지도 않았고, 자판을 두들겨 가며 원고의 양을 착실하게 늘려 간 것도 아니었다. (중략) 문제는 <슬픔도 힘이 된다>는 진술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세상의 변화에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텅 비어 버린 듯했다. (중략) 소련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몰고 온 파장은 그나마 모색되어 오던 이 사회의 새로운 물결, 상식적인 삶의 예감까지 붕괴시키는 데 단단한 몫을 하려는 듯이 보여졌다. (중략) 이제는 맹목적인 질주만이 남았는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늘 그렇다면, 에서 멈추었다. 누가 뭐라 말하든, 나로서는, 단편이란 양식의 소설이란 작가의 고백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 이후로 그는 1980년대적 지평을 소설 속에 더 이상 반영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는 『천 년의 사랑』을 통해 현실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축하기보다는, 이야기에서 현실을 재구성하는 세계로 건너가 버렸다. 세계를 인식할 가능성을 잃어버린 작가가 탐구하는 곳은 현실이 아니라 내면일 수밖에 없고, 그 내면의 고백마저 시들해지면 작가들은 현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이야기의 사실성을, 이야기의 유희를 추구한다. 리얼리즘을 대신해서 문화예술계를 사로잡았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가 그것이다. 여러 소설을 패러디하고 짜깁기했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나 역사 속의 한 사건을 재구성하여 이야기의 사실성을 허구적으로 재구축한 『영원한 제국』 등이 대표적인 소설이다. 이들 소설이 비록 1980년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혁명적 낙관주의가 물러난 세계관의 공백을 틈타 출현한, 역시나 1980년대의 후일담일 뿐이다. 역사와 현실에 지친 이들은 허구의 사실성에 주목한 것이다. 나아가 이들 소설은 이야기 속에서 혁명을, 그러니까 이야기 속에서 세계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짜릿함으로 이들을 그러모았던 것이다.

공지영은 1980년대의 작가면서 성공적으로 1990년대를 건너 2000년대에서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그를 소설가로 만든 것은 1989년에 발표한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다. 이 소설은 운동권이 후배에게 권하는 대표적인 소설이었다. ‘더아방’이란 약칭으로 부르며 1980년대가 사랑하였던 소설의 작가였기에, 그 또한 1994년에 『고등어』를 비롯해서 단편집 『인간에 대한 예의』 등을 통해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듯 1980년대를 추억한다.

살아있는 고등어 떼를 본 일이 있니?(중략)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 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중략)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다 속을, 대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공지영은 1990년대를 사는 1980년대의 사람들을 ”한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던 고등어라 부른다. 그러나 고등어가 석쇠 위에 놓여 구워질 때쯤 ”대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라고 회의하는 비유를 통해 1980년대 사람들의 상처를 헤집고 있다. 그러나 공지영은 1980년대를 어떡하든 긍정하고 싶은 것이 진심이다.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잊지 않는 사람들, 죽어간 친구와 미쳐간 친구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들…. 그들이 곧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게 돼요. 이제 곧 우리 세대에게서…. 그래요, 형 말대로 우리 세대를 거치느라 운전면허 하나 따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그들이 대통령이 되고 그들이 예술가가 될 거라구요. 가짜들 말구 진짜들…. 그것두 권력이라구 운동하지 않는 불쌍한 친구들 주눅 들게 하면서 거들먹거렸던 사람들 말구, 이제 와서 어리석었다고 그 세월 전체를 매도하는 인간들 말구, 진짜들. 끌려가는 친구들도 있슴데 미안해서, 정말 미안해서 테니스채를 사 놓고 한 번도 치지 못했던 친구들, 고시공부 하다가 도서관 밖의 집회 바라보고는 머리를 싸매고 그날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 길거리에 누워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사슬을 얽어매고 울었던 그 친구들.

1980년의 지평에서 어떡하든 1990년대를 품으려 하는 공지영은 현재에도 여성 문제에 천착하는 등 여전히 ‘인간’을 놓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있다. 그의 소설적 성취에 대한 개별적인 평가를 떠나 인간에 대한 끈기 있는 관심은,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그가 1980년대로부터 이어져 온 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형수 시인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 민족문화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력에서 알 수 있듯 그쪽 세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다. 몇 해 전 『문익환 평전』을 출간하기도 했던 이 시인은, 그러나 1995년 1월에 나온 『빗방울에 대한 추억』을 끝으로 더 이상 시를 발표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지막 시집에 있는 ‘젊음을 지나와서’란 시에 마치 퇴장하는 노병의 연설처럼, 자신이 거칠게 보내온 어떤 시기를 단박에 꿰뚫는 듯한 말을 적고 있다.

누구나 나중에 생각할 것이다 / 돌아보면 참 길게도 오만했다 / 내 젊음은 하필 그때였단 말인가, 고

시인이 돌아보는 시기는 그가 ”서둘러 냉전기를 산 지상의 실패한 혁명가“로 보냈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다. 그는 1986년에 데뷔한 시인이었지만,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이념으로 하는 <녹두꽃>이나 <노둣돌> 같은 문예사상잡지 창간에 더 열심이었다. 그는 또한 노동자, 농민, 소시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자신의 손으로 쓰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그들의 몸으로 표현하도록 독려하는 자주적 문예운동의 이론가이자 문화운동가였다.

그리고 명지대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고, 이에 분노한 많은 대학생이 뒤따라 분신하던 1991년,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고 대학생들을 비난할 때 ”동요하는 배는 닿을 내려라“라며 김지하를 비판했던 전투적 가두시인이다. 그러나 그도 역시 어느 날 초라한 사내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차라리 악몽 같은 것이었다.

맑스가 무너지고 / 레닌이 쓰러지고 또한 / 우리들이 꿈꾸었던 혁명의 신화들이 물거품이 되고 /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딘지도 모르게 / 간밤에 꾼 악몽의 뒤끝처럼 / 한 시대가 쏜살같이 사라지는 아침에도 / 나는 아무것도 손쓸 수가 없었다 / 신열에 싸인 딸아이를 등에 업고 / 소아과에 줄 서 차례를 기다리다 / 졸다가 깨다가 가위에 눌렸을 뿐

시인은 세상의 변화가 멈추기를 바라는 듯, 시의 제목이 ‘멈출 수 있다면’이다. 시인은 바쁘고 당황스럽다. 둘째 딸 낳아 돈도 꾸러 다녀야 하고, 큰딸도 돌봐야 하고 마누라 약도 사야 하고, 주택융자금 이자도 막아야 한다. 시인은 역사가 ”수면제 먹고 한두 달 / 잠에서 빠져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바야흐로 일상의 침범이다. 맑스도 레닌도 그 앞에서 쓰러졌다. 거대서사의 변화를 해석하기도 힘든데,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닥쳐 그 앞에서 허둥거리기만 하는 초라한 사내의 모습은 1990년대가 던진 당혹한 질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 1980년대 일상을 몰아세웠던 이념은 되레 왜소해졌다. 마치 공지영이 「무엇을 할 것인가」란 소설에서 ”화려한 민주 투사였던 노 선배는 다만 저녁을 사줄 돈이 없어서 후배에게 굽은 등을 보이며 사라져 가고“라고 이야기하듯 과거의 영광은 간데없고 패배감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게 된다.

그 자괴감 때문에 시인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게 된 것일까.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발전을 혁명적으로 낙관했던 1980년대의 서정을 시인은 더 이상 추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을까. 김형수 시인은 『빗방울에 대한 추억』을 끝으로 소설가로 전업하였다.

후일담이 한때 부정적으로 쓰이던 때가 있었다. 1980년대의 작가들이 ‘지금’과 ‘미래’와 사투하는 대신 자꾸 뒤를 돌아보며 1980년대를 추억하는 것을 전망상실이나 의지박약으로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대답 없음에 절망한 작가들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 들어가듯, 1980년대로부터 걸어 나온 작가들이 1990년대의 절망 앞에서 찾아들어 간 1980년대가 바로 그들의 내면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그때 1980년대를 이야기하였다 하여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만큼 세상에 깊게, 인간에 깊게 절망한 세대도 드물다. 그들은 뒤돌아보는 자가 되어 ‘야성’을 잃었지만, 그러나 그 대가로 한국 문단은 성찰을 얻었을 터이다.

아래는 김형수 시인의 ‘져야 할 때는 질 줄도 알아야 해’라는 시의 전문이다. 그는 오만했던 그 시절 그 젊음을 세월 속에 묻는 듯하다.

때깔 고운 잎이라면
시샘할 일도 아니지만 미워할 일도 아니다
가을 가고 겨울 오면
흔적조차 없다지만 그것은 또 그것의 일
나무라면 그 나이테 안에
꽃이라면 그의 작은 씨앗들 안에
그가 땅 위에서 서툴게 누렸던
청춘을 남겼을 터
그가 사랑했던 님 앞에 닿아보기 위해
그 많은 날 애써 부대꼈던
햇살을, 비바람을
제 몸 어딘가에 감춰두고 있을 터

나는 왜 자꾸만 예민하게 구는가
져야 할 땐 아낌없이 질 줄도 알아야 해
벌레 먹은 대로
바람구멍이 난 대로
고집스레 매달려 어쩌자는가
이파리 한 잎 제 여름을 다 살고
이제 가을 되어 아낌없이 져야 할 때
나 혼자 지지 못하고
늦도록 가지에 남아 어쩌자고 자꾸만 버텨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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