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아줌마들이 미치는 뮤지컬 <메노포즈>

자, 이번에 소개할 공연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아니라 아주머니, 아니 느낌 제대로 살려 보자. ‘아줌마’들이 그야말로 손뼉치고 무릎 쳐가며 열렬한 공감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사람은 나이를 더해가면서 그때마다 갖은 수식어를 달게 된다. 미운 일곱 살(요즘은 미운 세 살, 미친 일곱 살이라고 하더라), 사춘기, 낭랑 18세, 결혼 적령기, 노처녀, 갱년기… 누군가 할 일 없어 구분해 놓은 것도 아닐 테고, 많은 사람이 이렇게들 부르는 걸 보면 아마도 그때마다 나름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제아무리 세뇌를 해도, 차곡차곡 쌓이는 나잇살과 급격하게 무거워지는 엉덩이를 보면 우리는 모두 ‘나이’의 지배를 톡톡히 받고 있나 보다.

자, 이번에 소개할 공연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아니라 아주머니, 아니 느낌 제대로 살려 보자. ‘아줌마’들이 그야말로 손뼉치고 무릎 쳐가며 열렬한 공감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바로 뮤지컬 메노포즈. 일단 ‘메노포즈(Menopause)’의 뜻을 알면 작품의 절반은 이해했다고 볼 수 있겠다.

뮤지컬 '메노포즈'

폐경기 여성들의 속 시원한 진실게임

그렇다. 메노포즈는 말 그대로 폐경기에 접어든 여성들의 솔직 대담한 이야기다. 바지 정장 차림의 전문직 여성과, 상대적으로 여성스러움을 과시하지만 한물간 여배우, 다소 많이 뚱뚱한 전업주부, 한때는 운동파였으나 지금은 목장을 운영하는 웰빙 주부. 이렇게 네 명의 여인이 백화점 세일 기간, 그것도 속옷 매대 앞에서 딱 만났다. 여자들이라면 평소에는 고상함과 우아함으로 온몸을 휘감고 다닌다 할지라도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매대 앞 쟁탈전. 이제 누가 봐도 아줌마인 그녀들은 오죽할까? 속옷을 부여잡고 서로 먼저 잡았노라 금방이라도 싸울 기세다.

이렇게 만난 네 명의 아줌마. 백화점 파우더룸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처음에는 물론 다들 자기 자랑에 바쁘다. 그러나 배경은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폐경기에 접어들었다는 것. 겉은 멀쩡하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역정을 어찌 토해낼까? 그러나 감추려고 제아무리 용을 써도 증상이 밖으로 드러나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게 서러운 것 아니겠는가. 자글자글 작렬하게 자리 잡은 주름, 축 처진 뱃살, 금붕어보다 못한 기억력, 불타는 얼굴 홍조, 각종 성형수술에 호르몬 요법, 식은땀에 갑작스런 발열, 밤마다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엄청난 식욕, 그에 반해 급격히 감소한 성욕 그리고 그 밖의, 그 이상의 것들….

‘어머, 바로 내 얘기예요!’

객석은 물론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소 점잔을 빼던 그녀들도 어느덧 손뼉을 치고 옆 사람을 부여잡으며 박장대소로 화답한다. 만만치 않은 가격의 뮤지컬을 보러 올 중년 여성이라면 생활이나 문화적 관심 또는 자식농사에서 뒤지지는 않을 터. 다들 고상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건망증에 화장실에서 치마를 내리지 않고 나오는가 하면, 밤마다 속옷을 흠뻑 적시는 땀, 남편이 없어서, 또는 있어도 물밀듯이 찾아오는 외로움, 세월과 함께 변해버린 무늬만 여자인 내 모습…. 무대 위에서 자신의 얘기를 저렇게도 신랄하게 들춰내고 있는데 말이다. 처음에야 얼굴이 화끈거리고 자신은 아닌 척 외면하지만, 별 수 없다. 이제 방법은 ‘어머, 바로 내 얘기예요!’라고 함께 속내를 드러내고 즐기는 게 상책이다.

폐경기 여성들의 솔직 대담한 이야기

게다가 배우들이 객석을 가만 놔두질 않는다. 무대 밖으로 내려와 관객을 붙들고 하소연을 하는가 하면, 낯 뜨거운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또 7~80년대 추억의 팝송에 맞춘 흥겨운 노래와 춤, 실감 나고 재밌는 상황, 독특한 의상도 시종일관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마지막 커튼콜에서는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 모아 함께 춤추는 시간까지 마련했으니, 아줌마들 오랜만에 속 시원히 웃고 제대로 스트레스 날려 버렸을 것이다.

이영자 파워, 배우들의 호연 돋보여

<메노포즈>는 뮤지컬 배우 전수경이 연기는 물론 직접 연출을 맡은 데다, 이영자, 조갑경 등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개인적으로 무대 위의 이영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개그라는 것도 나름의 유형이 있?고 치면 이영자의 개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무대 위의 그녀는 끼로 똘똘 뭉친 재치, 재간둥이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는 할 수 없지만 풍부할 수밖에 없는 성량, 숨을 언제 쉬는지 모를, 모터를 단 듯한 속독, 코믹하고 다채로운 표정과 몸짓, 개그맨의 뇌(언젠가도 말했지만 일반인과는 분명히 구조가 다를 것이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상을 초월한 애드리브. ‘살로 성공해서 살로 망한 여자’라고 말하던 그녀의 온몸을 내던진 연기를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영자의 코믹 연기와 재치 있는 애드리브 돋보여

다른 여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뮤지컬계의 감초 연기자 전수경은 물론 함께 전문직 여성을 맡은 진복자도 중성적인 연기에 우렁찬 가창력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또 한물간 여배우의 이윤표도 요염하면서도 호들갑스러운 이미지, 과감한 연기로 무대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생각보다는 조갑경의 연기가 눈에 띄지 않았다. 폐경기 여성 연기를 맡기에는 너무 젊은가? 스스로 배역에 푹 빠지지 못한 모습이어서 아쉬웠다.

여자, 나이 듦의 슬픔이여

얼마 전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신조로 항상 걱정 없이 사는 후배가 ‘요즘 들어 발끈하는 일이 많다’며 이상하다고 말해오기에, 씩 웃으며 답해줬다. “그거 히스테리야!” 물론 나도 겪고 있으며, 심심찮게 듣는 말이니 우리 역시 공감의 나래를 펼쳤다. 나는 요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거 참 그냥 때 되면 흙으로 돌아가면 될 걸, 뭘 늙고 아프기까지 하냔 말이다. 여자는 할머니가 돼도 여자라는데, 늙어가면서 이렇게도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어야 한다니….

나는 고등학교 때와 지금 체중이 같다.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상하게 대학 때 아니, 졸업하고도 한참이나 입었던 치마와 바지가 맞지 않는다. 옷장을 꽤 차지하는데 미처 버리지 못하고 있다. 메노포즈가 되면 그때는 훨씬 많은 걸 부여안고 아쉬워하겠지? 참 슬픈 일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뮤지컬 <메노포즈>
2007년 7월 19일 ~ 10월 14일
백암아트홀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장재현 감독의 K-오컬트

2015년 〈검은 사제들〉, 2019년 〈사바하〉, 2024년 〈파묘〉를 통해 K-오컬트 세계관을 구축해온 장재현 감독의 각본집. 장재현 오컬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오리지날 각본은 영화를 문자로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독자를 오컬트 세계로 초대한다.

위기의 한국에 던지는 최재천의 일갈

출산율 꼴찌 대한민국, 우리사회는 재생산을 포기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갈등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인 최재천 교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펴냈다. 갈등을 해결할 두 글자로 숙론을 제안한다. 잠시 다툼을 멈추고 함께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

어렵지 않아요, 함께 해요 채식 테이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의 첫 번째 레시피 책. 한식부터 중식,일식,양식,디저트까지 개성 있는 101가지 비건 레시피와 현실적인 4주 채식 식단 가이드등을 소개했다. 건강 뿐 아니라 맛까지 보장된 비건 메뉴들은 처음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할 말, 제대로 합시다.

할 말을 하면서도 호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일과 관계, 어른으로서의 성장을 다뤄온 작가 정문정은 이번 책에서 자기표현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을 전한다. 편안함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대화법, 말과 글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방식을 상세히 담아낸 실전 가이드를 만나보자.

자세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