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신념으로 이룬 교육의 기적

미국 사회를 가리켜 흔히들 ‘Melting Pot’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소수 민족이 존재하며 그들의 상이한 문화가 용광로처럼 녹아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흔한 설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이런 이상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늘 부정되곤 한다. 흑인 갱스터를 소재로 한 <보이즈 앤 후드, 1991> <사회에의 위협, 1993> 등이 등장했던 90년대 초반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으며 한인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던 1992년의 LA폭동은 그런 인종 간의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의 오프닝 시퀀스는 바로 그 LA폭동의 뉴스릴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많은 소수 민족이 존재하는 캘리포니아의 상황은 최악이었고 이 폭동으로 인한 사망자는 55명, 부상자는 2,383명 그리고 피해액은 무려 7억 1,700만 달러에 이르렀다. 90년대 초반 이런 캘리포니아의 윌슨 고교로 부임한 영어 교사 에린 그루웰은 다민족 프로그램으로 인해 한 교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미국 사회가 지녔던 인종 갈등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던 150여 명의 아이들과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그들의 상처를 달래고 서로 화합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초임 교사였던 에린 그루웰은 자신이 지도한 150명 아이들의 일기를 묶어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라는 책을 출판했고 이 영화는 150명의 아이들 중 11명의 캐릭터를 뽑고 그중 주요 캐릭터 4명 정도를 선정해 영화화가 진행되었다.

영웅 교사

할리우드가 교육을 다루는 방식은 어떤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든 <홀랜드 오퍼스>든 또는 <스쿨 오브 락>이든 그들은 생기 없는 교육 현장의 반항아이며 그들만의 방식을 체득하고 있다. 또 그들은 필연적으로 시스템과 충돌하고 만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린 그루웰 역시 마찬가지다. 총제작자이기도 한 힐러리 스웽크가 연기한 에린은 (미국 사회에서 그다지 대우도 좋지 못하고 긍지도 높지 않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신념이 강한 인물이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혼란으로 마무리된 첫 수업의 실패 이후 아버지(스콧 글렌)와의 식사 장면에서 ‘네 좋은 머리로 교도소에서 선생을 한다니’라고 개탄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는 강인함을 선보인다.

이 영화에서 에린 그루웰은 시스템에 해당하는 선배 교사 마가렛(이멜다 스탠튼)과 가장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는 학생 에바(에이프릴 L 헤르난데즈)로 대표되는 두 집단과 대립한다. 아이들과의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시스템과의 갈등이 제기된다. 어쨌든 에린 그루웰은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며 그 방법 역시 꽤 합리적이다.

폭력과 희망

서서히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가는 에린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방식은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글쓰기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방법이다. 영화에서 에린이 거두는 성공은 바로 아이들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60년대의 민권 운동을 지지한 민주당 지지 백인 중산층 가정에 자라난 에린은 갱들 간의 전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아이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살아온 인물이다. 이 영화의 한 축은 그런 아이들의 현실에 할애되고 영화는 에린과 아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뒤쫓는다.

에린의 교육 방식에서 특이한 점은 이런 아이들의 폭력적인 현실을 나치와 그들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의 역사와 연결해 설명한다는 점이다. 에린은 문헌으로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실제 역사의 주인공을 초대하는 데까지 이르며 이로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폭력적인 삶의 부당함을 폭력에 희생된 안네 프랭크의 삶과 일치해 나간다. 한마디로 아이들은 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철칙이라고 여겼던 갱스터의 인종주의적 폭력성을 깨달아 가게 되는 것이다.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이런 이야기들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 나간다. ‘유대인 학살’은 자칫하면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으로 귀결된다는 한계가 있지만 ‘폭력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증거가 가장 많은 예이기도 하다.

희생과 헌신

이 영화에서 에린은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한다. 에린은 아이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고 박물관에 데리고 가려고 호텔과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심지어 자신의 남자 친구인 스콧(패트릭 뎀시)마저 떠난다. 헌신적인 개인의 희생을 통해서 아이들의 삶은 나아지며 이로 인해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에린의 희생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힐러리 스웽크는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강한 의지를 지닌 교사의 역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자칫 잘못하면 교사 개인의 영웅성만을 강조할 수 있다는 약점에도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감동적이다. 미국적인 특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특히 ‘공교육 붕괴’를 사회적 화두로 삼는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교사의 자세는 여전히 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소영웅주의’라는 혐의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어른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 또 아이들이기에 설득력이 있으며, 아이들의 이야기에도 영화의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영화의 균형이 잘 살아 있는 편이다.

MTV에서 제작한 영화답게 2PAC, 사이프러스 힐 등의 음악이 수록된 사운드트랙 역시 훌륭하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흥행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DVD로 바로 풀린 수작 영화 중 한 편이 되었다. ★★★☆

화사하고 밝은 영상

올해 1월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답게 영상 퀄리티의 수준은 훌륭한 편이다. 인물 윤곽선이 약간 흐릿한 부분이 있지만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색감이 전반적으로 화사한 편이며 시원한 느낌을 준다. ‘최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DVD 매체로서는 어느 정도 안정된 영상을 선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