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한량의 복고풍 연가
2007년의 눈으로 박노해의 1984년도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정서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프레스에 찍혀 날아가 버린 일당 4,800원짜리 손목을 공장 담벼락 아래에 묻는 노동자의 울분과 분노를 표현한 시 ‘손무덤’은 아득한 과거의 일로만 여겨진다.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노동의 새벽』은 권력과 부에서 소외된 가난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그 분노의 밑바닥에 흐르는 슬픔이 전면에 깔린 시집이다. 1989년, 대학에 입학해 세상물정 모르고 연애할 궁리나 하는 ‘어느 청춘’에게도 이 시집의 정서는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대학 바깥 세상살이의 치열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어느 청춘’의 경험은 풍부하지 않았다. 현실은 물론 책이나 TV 어디에서도 프레스에 찍혀 손목이 절단 나는 노동자의 삶을 본 적도 없고, 앞으로의 삶이 저 바깥 노동자의 삶과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해봤다. 그저 소녀 노동자의 선잠에 스며든 가련한 꿈을 노래하는 ‘봄’이나 ‘시다의 꿈’ 같은 시를 읽으며, 학교에 가는 대신 공장에 가야 했던 가난한 아이들을 ‘공돌이’나 ‘공순이’라 부르며 놀린 철없던 시절을 부끄러워할 뿐이었다.
허기진 배를 쓸며 오전내 기다린 점심시간이면 공장뜰 귀퉁이에도 봄볕이 따사롭다 아직 시러운 시멘트벽에 어깨를 기대고 배불러 이야기 많은 아이들 속에서 사르르 졸리운 눈을 들면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고향집 그리운 추억이 흔들린다 못먹고 부친 돈으로 빚은 얼마나 갚았을까 구름진 어머님의 손등, 고랑 깊은 아버지의 검게 탄 얼굴 철없이 보채고 웃고 싸울 동생들의 모습이 진달래 꽃잎처럼 선연하다 (‘봄’)
불행하게도 아직도 우리 사회는 ‘노동자’란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서 공사판을 따라다니며 막일을 하는 실패한 인생으로 노동자를 단정하거나, 스스로 노동자라고 칭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혹시 빨간 물에 푹 젖은 사람은 아닌지 의심부터 한다.
그런데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풍요는 프레스에 숱하게 찍힌 손목의 대가며, ‘공순이’가 되어야 했던 어린 소녀가 눈물로 포기한 꿈의 대가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고의적으로 망각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 편』 서문에서 강준만은 1970년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던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를 든다.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의 야심에 찬 구호 ‘조국근대화’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고속도로를 하나의 거대한 합창이나 교향악에 비유한다면 우리나라 고속도로, 특히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작사, 작곡, 지휘로 이루어진 불멸의 일대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공사 15년사』,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 편』 1권에서 재인용). 그러나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던 1970년, 그해 11월에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분신하며 한국 현대사의 뒷면을 세상에 폭로한다.
전태일의 분신은 경부고속도로로 상징되는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라는 거대 업적이 결국은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가능했다는, 한국 현대사를 직관적으로 꿰뚫는 사건이다. “세계에서 가장 싼 건설비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공사를 마친” 경부고속도로는, 바로 그 때문에 77명의 노동자를 죽게 하였다. 그리고 그 고속도로를 거슬러 상경한 농촌의 젊은이들은 청계천 다락방과 구로공단 벌집에서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조국근대화’의 대업을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싼 장시간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많은 전태일이 되었다. 그 ‘근로’의 결과로 대한민국은 1977년 대망의 100억 불 수출을 달성하게 된다.
박노해의 ‘지문을 부른다’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수출역군’이나 ‘산업전사’로 불리며 거칠고 힘든 노동으로 내몰렸던 노동자의 ‘근로’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임석경찰은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봐
시인이 시집을 내던 1980년대가 망각했고, 지금 2000년대가 망각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의 풍요가 노동자들의 ‘잘린 손목’과 ‘닳은 지문’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또 잊은 것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근로’만 강요하지, ‘보상’엔 인색하다는 것을. 그러니 1980년대 노동자들이 ‘산업역군’이 아니라 ‘불온한 노동자’, ‘산업전사’가 아니라 ‘노동해방 전사’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성하지 않는 사회가 잘못이지, 사회로부터 배신당한 ‘근로자’가 ‘노동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들이 저들의 도구의 이름을 우리에게 붙였다 산업전사
저들의 부를 위해 가난을 지키다 죽어라는 산업전사
저들의 보석과 빌딩을 지키기 위해 가난과 질병과 평생 싸우다 죽어라는 산업전사
귀족과 왕족과 권력자와 양코황국을 위해 영광되게 죽어라는 산업전사
이 시는 박노해와 같은 노동자 출신 시인 백무산의 1988년도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에 실린 ‘전진하는 노동전사’의 일부다. 노동자 시인은 ‘산업전사’가 아니라 ‘노동전사’가 되어 자본가가 야금야금 갉아먹었던 것을 “한꺼번에 되찾을 것이다”라며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노동전사일 뿐이다. 너희는 조금씩 알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안다 너희는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전사이어야 한다 가난과 수모와 철창과 위선자를 쳐부수는 노동전사이어야 한다
“한꺼번에 되찾겠다”라는 무시무시한 선언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한국 현대사는 1987년 7월과 8월에 목격한 바 있다. 두 달 동안 울산을 중심으로 3,000건의 노동쟁의가 봇물 터지듯 터진다. 사회는 마비되었다. 풍요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멈추자 세상도 덩달아 멈춘 것이다. 1987년 전국을 태풍처럼 강타했던 ‘노동해방’은 공장노동자, 공사판 막일꾼들의 노동해방을 넘어, 화이트칼라, 교사, 시간강사, 간호사들의 노동해방까지 퍼져갔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란 말에 대해 ‘무시’와 ‘경계’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노동의 삶은 가난한데, 사회는 노동자가 그 삶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불온하게 여겨서다. 1989년, 낯설기만 하던 노동자란 말은 대기업에 다니건 공장에서 육체노동을 하건 막일을 하건, 가진 것이 몸밖에 없어 육체와 지식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면 모두 노동자라는 앎과 함께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가진 것이 없는 어느 청춘의 삶이 결국 노동자의 삶으로 열려 있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후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7년, 서울 도심의 어느 건물에서 농성을 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한다. 그들은 노동해방을 외치지 않는다. 생계와 자식 교육비를 위해 일해 왔던 그 직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풍요는 공평하지 않고 소외된 노동은 외롭기만 하다.
밤안개 젖었구나
뿌연 가로등
사는 일이 고달퍼라
빈 손으로 돌아가는 가슴 아픈 시간
공장의 불빛도 빛을 바래고
새벽에 집 나올 때
등에 와서 박히는
식구들의 밥 걱정 집세 걱정
공장에서 쫓겨난 후 여기 저기
일자리 툇자놓고 툇자맞고
아흐레 일한 공사판에
밀린 노임 받으려다 책상만 엎어 버리고
막걸리 몇 잔에 털리는 가슴
뭐라고 하나 식구들에게
어허, 세상은 비오는 차장처럼
흔들리네 삶도 도시도 사랑도
울며 떠난 이들, 죽어서 떠난 이들
털리는 가슴도 나도 몰라라
골목길 스레트 지붕 어둔 모퉁이
두 남녀 봇짐 하나 껴안고 잠들고
담장 아래 기대선 그림자 또 하나
어떻게 하나 슬픈 사랑들아
뭐라고 하나 털린 가슴으로
덕지덕지 누더기 이리저리 기운 노래
어둔 밤 긴 밤 숨죽여 흐느끼던 밤
오호라 털려라 털려라
이 시대 슬픈 사랑노래여
바닥에서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
털려라 털려라 왕창 털려라
(‘김씨의 사랑노래’, 백무산 『만국의 노동자여』)
|
7,020원(10% + 5%)
10,800원(1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