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슬픔의 영화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별님을 잡아보자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하늘에 닿아보자

조그맣게 웅크려 바람과 얘길하자

몸을 크게 펴서 햇빛을 느껴보자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별님을 잡아보자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하늘에 닿아보자

모두들 안녕 내일 또 보자

구부렸다 몸을 쫙 펴서 배가 고프면 돌아가자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가자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매춘부로 전락해서 한 남자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갔다가 끝내 살해당해 일생을 마친 한 여인의 생을 다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주인공 마츠코(나카타니 미키)의 생을 가로지르는 것은 바로 이 노래다. 아이들의 체조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느릿한 노래는 이상을 위해 살아가다 끝내는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을 축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파의 전형성을 벗어나다

로코코 의상 마니아 소녀와 펑크 로커 소녀의 우정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불량공주 모모코>로 독자적인 팬층을 지닌 나카시마 데츠야 감독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줄거리를 요약해 글로 옮기면 말 그대로 전형적인 ‘신파 멜로’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나름대로 인정받고 살아가던 여성이 우연히 실수에 휘말려 일을 그만두고 나쁜 길로 접어들어 비참한 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6, 70년대 한국 멜로 영화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고 이 영화에서 마츠코의 일생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이런 줄거리를 지닌 영화의 스타일에서 한참 벗어난 영화다. 영화에서 마츠코는 온갖 나쁜 일이란 나쁜 일은 모두 겪지만 넘쳐나는 에너지로 생을 돌파해 나가는 인물이다. 마츠코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화사한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화면에는 경쾌한 뮤지컬 넘버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녀를 움직이는 에너지, 사랑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온갖 장르가 혼합되어 있다. 멜로드라마는 물론이고 뮤지컬과 코미디에 일본 버라이어티 쇼의 요소에다 만화적인 구성 그리고 뮤직 비디오 스타일까지 이 영화는 박복한(?) 여자 마츠코의 일생을 온갖 꽃비단으로 채색한 영상으로 선보인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혐오스런’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마츠코의 생에 대한 의문이다. 기억에 없는 고모의 생을 추적하는 인물은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마츠코의 조카 쇼(에이타). 영화의 도입부에서 쇼의 주변에는 일본 첹스터리물의 여왕 카타하리 나기사가 출연하는 미스터리 드라마가 계속 방송되는데, 위기에 몰린 범인이 벼랑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장면의 연속이다. 이런 부수장치는 쇼의 인생에 위기가 몰렸음은 물론이고 이 영화가 마츠코의 미스터리한 일생을 뒤쫓는 영화가 될 것이라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괴이한 에너지로 가득 찬 영화다. 마츠코의 남자들은 마츠코를 때리고 속이고 이용한다. 하지만 마츠코는 바보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캐릭터다. 그녀의 삶의 엔진은 온통 사랑이라는 연료로만 가득 찰 수 있다. 영화의 화면에 마츠코가 가는 길에 꽃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묘사되듯, 마츠코는 여자만이 지닌 사랑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그의 마지막 연인인 류(이세야 유스케)가 ‘마츠코(의 사랑)는 나의 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방적이고 받을 것을 예상하지 않는 그녀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그것이 객관적으로는 절망으로 가득 차 보이는 마츠코의 삶을 찬란하게 물들게 하는 힘이다. 감독인 나카시마 데츠야는 이런 마츠코를 위해 어디서도 보지 못한 미장센을 선보인다. 마츠코가 달릴 때 화면에는 꽃길이 수놓이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새가 주위를 날아다닌다. 기가 막힌 것은 글로 옮겨?았을 때 유치하게만 느껴질 이 장면이 영화의 색깔에 무척이나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뭘 주었는가로 정해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 마츠코는 자신의 삶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맞는 것이 외톨이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하는 여자다. 마츠코는 자신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구식의 인간이다. 마츠코의 공포는 맞거나 배신당하거나 학대받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때 시작된다. 마츠코는 그래서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마츠코의 비루해 보이는 삶이 실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주목하며 그 삶이 비참했음에도 또한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한다. 결코 감상에 차 있지 않으면서도 인생에서 행복의 형태는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 영화의 자세는 의미가 있다. 모두가 자신이 받은 것을 통해 삶의 가치를 평가할 때, 이 영화는 (자신이 무엇을 베풀었는지도 모른 채) 타인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베풀었던 한 여인의 삶에 온갖 화사한 색을 덧칠해 예찬한다. ★★★★

원색의 색감이 두드러진 영상

1950년대부터 최근에 이른 시간까지 아우르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본편 영상은 시대마다 독특한 색감을 선보인다. 가령 마츠코의 23세 시절의 영상은 세피아 톤의 색감을 유지하였으며 필름 스크래치 등의 노이즈가 추가되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소프트 필터의 느낌이 강조되어 윤곽선이 의도적으로 부드럽게 보이며 마사지숍 시절의 장면은 원색 계통의 색감이 두드러져 보인다. 인물 윤곽선의 날카로움은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으나 색 표현이 많이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 영화로서는 화려한 색감이 잘 살아 있는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