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abc살인』『싸이코』『모르그 가의 살인』『열 개의 인디언 인형』… 초등학생 때부터 여름이면 시원한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추리소설의 제목입니다. 동명의 영화를 TV에서 방영하는 날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졸음을 참으면서 영화가 시작하길 기다렸다가 덜덜 떨면서 영화를 보고는 잠이 오지 않아서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야 잠이 들어서 다음 날 늦잠을 잤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무더운 여름밤은 늘 추리소설과 함께 오싹오싹하게 보낸 기억이 납니다. 제 딸들은 아직은 그런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지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조만간에 아이스크림과 선풍기보다 더 강력한 무더위 퇴치제에 푹 빠지리라 생각되네요.
그런데 왜 이런 추리소설 이야기로 시작했느냐고요? 이번 여름휴가엔 친구가 있는 부산에 갔습니다. 해운대 쪽에 사는 친구 덕에 확실한 바닷바람을 맛볼 수 있었는데요, 그 외의 수확이라면 근처 달맞이언덕에서 8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렸던 '제10회 달맞이언덕 철학 축제'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누구의 가슴에 사랑을 남겼나'였습니다. 3일부터 5일까지 매일 '사랑'을 주제로 강연이 열렸는데 마침 그 강연 장소가 추리문학관이어서 문학관 구경도 해볼 겸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 달맞이언덕 철학 축제 안내 플래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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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문학관 이정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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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간 날은 김용택 시인이 강연하는 날이었어요. 예의 수수하고 구수한 모습의 김용택 시인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랑처럼 사랑하라'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는 자리에는 해운대포럼의 회원뿐만 아니라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아기를 업고 온 젊은 새댁 그리고 고등학생들까지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나서 함께 간 친구와 추리문학관 1층에 내려가 문학관을 구경해 보았습니다.
| 강연을 하는 김용택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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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문학관은 주로 추리문학에 관계된 자료를 모아 놓은 전문도서관입니다. 우리에게는 <여명의 눈동자>라는 TV드라마로 기억되는 추리문학 작가 김성종 씨가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1992년 사재를 털어 지하 1층, 지상 5층의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해요. 만 3천 권의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아동도서, 전문도서, 잡지, 외국 원서 등 기타 도서를 합치면 3만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이곳은 층마다 색다른 테마와 인테리어로 꾸며져, 찾아오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마침 2층은 강연과 행사가 열리고 있었기에 ‘셜록 홈즈의 집’이라는 별칭이 있는 1층을 둘러보았습니다.
| 추리문학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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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문학관 1층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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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를 문 홈즈의 그림이 문패 구실을 하는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벽돌로 만? 책꽂이마다 추리소설이 가득 꽂혀 있고 가벼운 커피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의자가 놓인 공간이 나옵니다. 바로 이곳이 셜록 홈즈의 집이죠. 바다 쪽으로 탁 트인 창가에는 벌써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취향 따라 고른 추리소설에 빠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어요. 저도 차 한 잔을 시키고 나서 카페를 둘러보았습니다.
| 추리문학이 가득한 책꽂이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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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록 홈즈의 집'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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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머, 이 책 생각나니? 세상에….” 친구가 놀라며 가리킨 곳은 붉은 벽돌로 둥그렇게 모양을 낸 책꽂이였는데 거기에는 정말 어릴 적 침을 발라가며 날이 새도록 읽었던 어린이용 설록 홈즈 전집이 있었습니다. 한 권을 꺼내 가격을 보니 2,500원이라고 되어 있네요. 책값만 봐도 세월이 느껴지는 그 홈즈 시리즈를 보면서 친구와 저는 갑자기 열두 살 소녀가 되어 두근두근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
| 옛 추억을 생각나게 한 셜록 홈즈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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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신문, 잡지, 일반 서적 및 시집이 빽빽이 꽂힌, 멋진 붉은 벽돌 서가 사이사이엔 어김없이 유명작가의 그림과 사진이 든 액자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사진을 구입할 수도 있었는데 저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사진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또 김성종 작가의 신간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작가의 친필 서명이 든 책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도 있답니다. ^^
| 추리문학 외에 일반 책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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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종 작가의 친필 서명이 있는 신간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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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책을 둘러보고 나서 맘에 드는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데 2층에서 열린 행사가 끝났는지 추리문학관 관장이신 김성종 작가님이 내려오셨습니다. 행사 진행으로 바쁘신 것 같아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변변한 공공기관의 지원 없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국내 최초의 전문도서관 1호를 끌고나갈 작가의 어깨가 한편으로는 듬직하고 한편으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 추리문학관 관장 김성종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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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수영장에 두고 살짝 와 본 터라 시간에 쫓겨 자리에서 금방 일어서야 했지만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맞이언덕을 내려오는 길, 친구는 제게 그러대요. ‘여기 이사 와서도 이름만 들었지 가볼 생각을 못했는데 참 잘 온 것 같다. 이번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다시 와서 온종일 추리 소설을 읽으며 피서를 해야겠다’라고요. 저도 아이들과 시간 되면 다시 와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왠지 영국 베이커 가에 있다는 셜록 홈즈 박물관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해운대 달맞이언덕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추리문학관이 오래오래 자리했으면 하는 바람도요. ^^
[TIP]
* 추리문학관(
//www.007spyhouse.com/)
- 이용요금: 성인 4,000원, 초등학생 2,000원, 중·고등학생, 외국인 3,000원
입장료를 내면 차(커피, 녹차)를 제공하며, 앉아서 책을 보거나 이야기하실 수 있습니다.
- 이용장소: 1층(오전 9시~오후 8시), 2, 3층(오전 9시~오후 6시), 휴관(구정, 추석 연휴)
- 전화번호: 051-743-0480, 741-9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