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무대는 별다른 말없이 박효신의 노래로만 가득 채워지고 있다. 박효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으로서는 그의 열창에 푹 빠질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연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던한 사람들이 꼭 한 번 결정타를 날릴 때가 있다.
이른바 ‘소몰이 창법’의 대표주자인 가수 박효신이 올해 초 5집을 발표하고, 최근 전국 투어 콘서트를 단행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서울 앙코르 무대가 올림픽홀에서 열렸다. 어쩌다 보니 해마다 놓쳤던 그의 공연인지라, 마지막 티켓을 손에 넣은 사람처럼 벅찬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그러고 돌아와 칼럼 제목을 생각하다, 발라드 가수에게 어울리는 표현일까 잠시 망설였으나, 과감히 ‘섹시가이’라는 수식어를 입히기로 한다. 그의 콘서트는 상상을 뛰어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요염한 박효신의 무대를 들여다보자.
SG워너비의 김진호와 아이비의 오프닝으로 막을 연 무대에는 현악단과 밴드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차례로 짧은 연주를 끝내자, 박효신이 ‘It's Gonna Be Rolling’을 부르며 무대 아래에서 솟아오른다. 흰색 민소매와 바지, 스포티한 머리 모양, 갖은 장신구. 생각했던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박효신에게 이런 모습이!
전국 투어에 많이 지쳤다는 그는 팬들이 준 사랑이라는 약을 먹고 버틸 수 있었다며 ‘친구라는 건’과 ‘그립고… 그리운…’으로 무대를 이끌어 간다. 이어 무대에 오른 린. 박효신과 ‘Like A Star’ 듀엣을 선사한다. 친구인 두 사람은 평소에는 말을 놓는지, 린은 “너, 몸에 오일 발랐냐?” “경림 언니 결혼식 때 축의금 대신 낸 거 내놔”라며 우스갯소리를 건넨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는 박효신. 그렇지 않아도 공연 내내 “즐거우세요? 저도요!”라는 말만 해서 ‘박효신이 말주변은 별로 없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러는 걸까? ^^
역시나 무대는 별다른 말없이 박효신의 노래로만 가득 채워지고 있다. 박효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으로서는 그의 열창에 푹 빠질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연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던한 사람들이 꼭 한 번 결정타를 날릴 때가 있다.
‘나처럼’과 ‘동경’이 흐르고서 “잘생겼어요”라는 팬들의 환호에 박효신은 “잘생겨졌다고요? 수술이 잘돼서 그래요”라고 답한 것이다. 객석에서 난리가 나자, “진정하세요. 사실 가수가 아니었으면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런대로 살아갈 만한 얼굴이었거든요. 여러분 때문에 조금 욕심이 났던 것 같아요”라며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술술 털어냈다. 그러고는 다음 노래가 분위기 있는 노래라서 이런 얘기 하면 안 된다며, 그런데 너무 아팠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씩 웃는다. 그렇게 이어진 노래는 ‘눈의 꽃’과 ‘추억은 사랑을 닮아’, 박효신의 해맑은 모습에 마음까지 가벼워진 팬들은 이제 모두 박효신의 노래를 타고 사뿐 날아오를 듯하다.
가슴을 훑어내는 박효신의 발라드
새롭게 2부가 열리고 무대는 더욱 활기를 띤다. 이번에는 빨간 민소매 셔츠에 검은색 조끼와 바지를 차려입은 박효신은 ‘사랑 사랑 사랑’과 ‘다시 내게로 돌아와’를 부르며 댄스까지 선보인다. 박효신에게 이런 모습이? 그렇게 박진감 넘치는 무대로 객석을 휘어잡은 그는 또 한 번 의외의 말로 모두를 나자빠지게 했다. “더우시죠? 2부에서는 다 벗어젖히게 만들겠어요!” 이어서 많은 사람이 불러서 조금 쑥스럽지만 도전하겠다며 Beyonce의 ‘Listen’을 노래했는데, 그의 열창에 감동한 객석에서는 ‘박효신’을 연이어 외치고 만다. 그렇게 잘 불러놓고는 여전히 창피하다며 결국은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하는 박효신에게서 겸손함이 물씬 풍겨난다.
‘Lost’를 끝으로 ‘일단’ 마무리된 무대는 박효신의 예고대로 ‘이단’ ‘삼단’까지 이어져 ‘좋은 사람’과 ‘해줄 수 없는 일’ ‘옛 친구에게’까지 다시 달리고 나서 막을 내렸다. 이번 콘서트는 5집 위주로 이뤄졌고, 그러다 보니 데뷔 초중반 곡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웠고, 생각지 못한 공연 분위기에 조금은 놀랐다.
사실 박효신의 5집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음색이나 창법이 너무 가벼워진 것 아니냐며,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다. 아마도 초창기 박효신의 짙은 음색을 좋아했던 팬이라면 5집이 그즳 그런 발라드 음악으로 느껴졌을 테고, 반면 그의 음색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적절한 수위를 찾아 듣기에 편해졌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도 생각보다 대중적이고 신세대적이었다. 애절한 R&B 위주일 줄 알았는데, 일어나 점프하고 환호할 수 있는 노래도 많았고, 무엇보다 무대 위 박효신에게서 경쾌한 활기가 느껴졌다.
경쾌한 모습의 박효신
이번 공연에서 박효신은 자신이 데뷔한 지 8년째라고 했다. ‘벌써?’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그러고 보니 ‘해줄 수 없는 일’로 가요계에 들어설 때 박효신은 고등학생이었다. 19살이던 그가 29살도 지니기 어려운 짙은 감성을 뿜어내며, Michael Bolton과 임재범에 대적할 음색으로 가요계를 평정해버렸던 것이다. 당시 여러 매체에서 그를 인터뷰할 때면 고등학생이 얼마나 애절한 사랑과 이별을 겪었기에 이렇게 절절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고 묻곤 했다. 어쩌면 박효신은 그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하려고 자신의 재능을 너무 과하게 쏟아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야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원래 나이를 찾아 더욱 즐겁게 노래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린이 방송에서 “다들 발라드 노래 하는데, 박효신 씨가 ‘우워워워’ 한 번 하면 다 쓰러진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렇다, 박효신의 ‘우워워워’는 여느 ‘소몰이 창법’과 품격이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을 훑어내는 그의 짙은 음색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무대를 보고 ‘3, 4년 전에 공연을 봤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지금의 박효신에게도 분명히 매력은 있다. 무엇보다 무대를 통해 느껴지는, 여전히 겸손하고 순수한 그를 보면서, 팬으로서 그의 어떤 변화에도 동참해야겠다는 다부진 마음을 다졌다. 무한한 가능성, 풍부한 감성 그리고 절대적인 가창력을 지닌 가수 박효신. 앞으로도 그의 노래를 듣고 가슴에 새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도 행복한 일이다.
박효신 전국 투어 콘서트 'Breeze Of Soul'
2007년 7월 28일~29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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