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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다 갖췄으나 2% 모자란 뮤지컬 <댄싱 섀도우>

뮤지컬 <대장금>에 이어 <댄싱 섀도우>까지,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오른 창작뮤지컬 두 편이 연달아 실망감을 주고 있다. 실망은 물론 그만큼 큰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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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대장금>에 이어 <댄싱 섀도우>까지,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오른 창작뮤지컬 두 편이 연달아 실망감을 주고 있다. 실망은 물론 그만큼 큰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기획사가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많은 제작비를 들여 공을 들인 만큼 걸출한 작품이 나오리라 한껏 기대했건만, 너무 많은 것을 갖춰서일까? 하나로 집결되는 맛이 없다. 지난 7월 8일, 대한민국 뮤지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겠다던 뮤지컬 <댄싱 섀도우>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무대는 실로 화려했으나, 알맹이는 허술했다.

뮤지컬 <댄싱 섀도우>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여자들만 남은 마을을 무대로 한다. 그들은 낮에는 태양군, 밤에는 달군의 지배를 받으며 각각의 군대에 식량과 장작을 제공하는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현실적인 지주 마마 아스터(김성녀)와 정신적인 지주인 ‘영혼의 숲’이 있는데, 유일하게 나쉬탈라(김보경)만이 나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던 중 마을에 탈영병 솔로몬(신성록)이 숨어든다. 전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 다니는 솔로몬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나쉬탈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극한 상황에 몰려 나쉬탈라의 사촌인 신다(배해선)와도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이들의 처절한 삼각관계는 결국 영혼의 숲은 물론 그들의 목숨까지도 잃게 한다.

얼마 전 강부자 씨가 열연했던 연극 <산불>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고 차범석 선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1999년 첫 기획을 시작으로 무려 8년이라는 준비 과정을 거쳤으며, 제작비만도 50억 원을 들인 대작이다. 게다가 뮤지컬 시장의 세계화에 맞춰 배경인 ‘6.25 전쟁’을 ‘전쟁’으로, 극 중 점례와 사월이도 나쉬탈라와 신다로 바꾸면서 시대와 지역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렸다.

내로라할 배우들 대거 등장

뮤지컬 <댄싱 섀도우>에는 김성녀를 비롯해 배해선, 김보경, 신성록, 성기윤 등 그야말로 내로라할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단독으로 무대에 올라도 무대를 꽉 채울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니, 뮤지컬 팬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역량이 제대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모두 연기에 크게 나무랄 데는 없었으니, 개성과 연기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무대가 마련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멋들어지게 노래를 내지르는 장면도, 현란하게 춤을 추는 장면도, 눈물을 뚝뚝 흘려 내릴 정도로 농익은 연기를 펼쳐보일 장면도 없었으니 말이다.

일단 김성녀는 여장부다운 마마 아스터 역에 제격이었으나, 푹 삶아낸 듯한 연륜 있는 연기를 펼쳐보일 무대는 부족했다. 게다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음이 너무 낮아,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현실적이고 관능적인 역으로 변신을 시도했던 배해선 역시 특유의 광적인 끼를 충분히 끌어낼 만한 장면을 만나지 못했고, 독특한 음색의 김보경은 멋진 가창력을 선보였지만 숲과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의 나쉬탈라 역에 썩 어울리지는 않았다. 또한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의 신성록이 솔로몬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매력은 전혀 없었다.

김성녀, 배해선 등 유명 배우들 대거 등장

화려한 무대 연출과 조명 돋보여

처음 무대를 보면 울창한 나무숲이 눈에 띈다. ‘영혼의 숲’을 표현하고자 9m 높이의 커다란 나무 열일곱 그루가 무대에 들어차 있는데, 역시 소극장 무대와는 다른,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맛이 있다. 또 마을 장면에서는 크기가 다소 축소된 여러 채의 집이 등장해서 배우들이 직접 문을 통해 드나들곤 하는데, 역시 색다른 발상이다. 무엇보다 무대를 장악하는 장면은 역시 숲에 불이 나는 장면이다. 시뻘건 조명이 가득한 무대 너머로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가 어느새 밑동만 남은 채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게다가 원근법을 사용한 영상을 통해서도 숲의 폐허와 또 다른 희망을 표현하는데, 한발 앞선 무대 연출에 내내 탄성을 내지른다.

‘영혼의 숲’이라는 설정에 맞게 신비로운 분위기의 조명도 인상적이다. 많은 색감을 사용하지 않고, 게다가 겉으로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련된 맛이 있다. 음악 역시 멋스럽다. 비록 귓가에 남을 만큼 쉽고 재밌는 대중적 요소는 부족했지만, 기획의도대로 진중하고 고상한 멋은 충분히 살좷다.

울창한 숲이 들어찬 무대

다국적, 그러나 공감대는 부족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

앞서 말했듯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원작 「산불」의 기본 플롯을 토대로, 극작가인 아리엘 도르프만과 작곡가인 에릭 울프슨의 손에 의해 새로운 뮤지컬로 태어났다. 세계 어디에서나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표방한 만큼, 원작의 느낌이나 한국적인 요소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집도 기와집이 아니고, 점례가 아닌 나쉬탈라가 한복을 입었을 리도 없다. 또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에릭 울프슨이 굳이 한국적인 선율이며 국악기를 사용할 이유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국적인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정체성을 잃었다. 작품의 제목이 갖는 모호함처럼 도대체 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전쟁 중에 만난 사랑과 그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인간성을 표현하기에는 극의 전개가 미흡하며, 어떤 당위성도 찾을 수 없다. 시대극도 아니고, 전쟁에 대한 아픔을 함께 나눌 수도 없고, 진한 러브스토리도, 어른을 위한 동화도 아니다 보니 어느 한 장면에 기대 마음을 나눌 수도 없다.

작품의 배경은 전쟁. 전반적으로 진중하고 암울한 분위기며, 무대도 의상도 음악도 무채색이다. 대사도 많다. 극적인 요소도 부족하다 보니 빠릿빠릿한 젊은 층에게서는 ‘지루하다’는 말이 바로 터져 나올 것이며, 작품성을 따지는 마니아들마저도 큰 감동은 없을 것이다.

숲이 불에 타는 장면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은, <댄싱 섀도우>는 재미와 흥미 위주의 브로드웨이식 뮤지컬과는 다르며, <레미제라블>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뮤지컬이 그렇듯 진중함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뮤지컬은 그것이 진중함이든 흥미 위주든 분명히 재미와 감동이 있다. <댄싱 섀도우>는 많은 것을 갖춘 세련된 작품이지만, 가장 중요한 재미와 감동이 부족한, 그래서 대중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뮤지컬이다.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먼저 국내 팬들에게 그 가능성을 입증받아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인 만큼 치밀한 보완작업을 거쳐, 제대로 그 진가를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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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댄싱 섀도우>
2007년 7월 8일 ~ 8월 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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