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길역사강좌' 현장 ⓒ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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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열정의 시대였다. 우리는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들의 의미와 구조를 열정적으로 탐구했다. 우리는 우리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가 궁극적으로 구현해야 할 진실과 가치와 이론을 찾아 열정적으로 읽고 토론했다. 역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민족과 민중의 의미와 실체를 발견하려 했다.
1979년 10·26사태로 유신권위주의 권력이 몰락했지만, 1980년 광주 5·18학살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좌절과 절망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80년대였지만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걸을 수 있었다. 좌절과 절망의 겨울은 가고 다시 봄은 오고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책'이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세상 사람에게 공급하는 일은 나에겐 하나의 신명나는 축제 같았다. 정부와 권력이 나와 출판사에 경고 같은 것을 늘 보내오는 그런 엄혹한 상황이었지만, 그 상황이 한 권의 책의 가치와 의미를 오히려 확인케 하는 것이었다.
한 시대를 변하게 하는 사상적·이론적 역량으로서 한 권의 책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한 권의 책으로 한 시대와 한 민족공동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신념을 한 출판인으로서 그 책 만드는 현장에서 체득할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으로, 책의 문화와 책의 정신으로, 그 80년대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나의 가슴에 자리 잡았다.
한 권의 책 또는 출판문화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그 책을 기획해서 만들어내는 출판사가 어떤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80년대 중·후반의 일련의 총체적 시도와 실험을 통해, 좀 다른 차원에서 그 가능성과 미학을 말하고 싶다. 책의 외연은 얼마든지 넓힐 수 있고, 한 시대에 출판사와 출판인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80년대를 치열하게 산 사람들과 더불어 증언해보고 싶은 것이다.
안암동에 작은 강의실 하나를 마련하다
| ▲ 1회, 5회, 11회 '한길역사강좌'에 강사로 참여한 박현채 조선대 교수. ⓒ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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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가 마포경찰서 뒤쪽에 있는 한 인쇄소의 공간을 빌려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성북구 안암동 5가 101-21번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맞은편으로 이사를 간 것은 1982년 가을이었다. 안암동 로터리에서 개운사로 한참 들어가면 조그만 네거리가 나오는데 바로 그 왼쪽이었다. 개인주택으로 지하실까지 합쳐 연건평이 110평정도 되었다. 나는 공간 하나를 마련해서 한길사가 펴내는 책의 문화를 좀 색다르게 전개해보고 싶었다. 공간만 마련되면 여러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1층을 개축하는 작업에 나섰다. 마루가 제법 넓었는데 큰방과 부엌의 벽을 터서 작은 강의실을 하나 만들었다. 작은 교실이었다. 접이의자 50여개를 들여놓았다. 칠판도 걸었다. 마루의 한쪽 벽엔 우리가 펴내는 책을 꽂는 서가를 마련했다. 마루까지 합치면 때로는 100여 명이 강의를 듣거나 토론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한 셈이었다.
편집부는 3층에 자리 잡았고 2층은 영업부와 나의 방으로 구성하였다. 2층과 3층에서는 안암동 일대와 개운사, 고려대 정경대학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언젠가 한 스님이 우리 회사에 와서, 이 집의 방위가 좋아서 뭔가를 할 수 있을 만한 곳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한 출판인으로서 나의 꿈은 교육이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학교라는 믿음을 늘 지니고 있었다. 한 권의 책도 하나의 이론과 사상과 정신으로 탁월한 교육기관일 터이고, 저자와 독자를 이어주거나 한 자리에 모으면 열려 있는 또 하나의 교실이고 운동장이 될 수 있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한 일반사회과 선생님의 열강에 매료하여 교사를 꿈꾸기도 했다. 지난날의 그런 꿈은 출판사를 내어 책을 만들 때도 문득문득 솟아오르는 이미지였다. 안암동 5가 101번지의 그 공간에서 전개된 80년대 중·후반의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열정적으로 기획하고 구현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 또는 소망이 나의 가슴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까.
한길역사강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역사'는 지나간 역사뿐 아니라 오늘에 전개되는 삶의 모든 행위와 의미를 포괄하는 총체적 의미로서의 역사였다.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은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성찰하고 실천하는 그런 것이었다.
'한길역사강좌'는 일단 고답적인 어휘였지만 80년대의 엄혹한 상황에서는 참으로 치열한 의미로 싱싱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의 삶과 정신과 사상은 궁극적으로 역사로 존재하고 축적되는 것이었다. '역사'는 그 무엇보다도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무엇도 '역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인식이었다.
나는 처음에 '한길역사강좌'가 아니라 '한길역사학교'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엄혹한 상황에서 '학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학교'를 '사칭'한다는 권력의 주장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사학교'란 참으로 한번 해볼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현실적 조건을 고려해서, 어떻게 보면 아주 아카데믹해 보이는 '한길역사강좌'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던 것이다.
우리의 작은 공간에도 '한길사 세미나실'이라고 이름 붙였다. '교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조심스럽던 시대였다. 물론 '시민들의 세미나'를 위한 방이었다. '한길'이 '역사강좌'에 붙음으로써 대중성·민중성·역사성이 더해진다고도 생각했다. '한길'이란 큰길·넓은 길·옳은 길·마당·광장의 의미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역사강좌 첫 주제, 한국근대민족운동사
| ▲ 이이화 선생은 제7회 역사강좌 때 단독으로 '한국사상사'에 대해 강의했는데, 단군과 민족사상, 불교신앙과 겸수론, 유학사상과 이단론, 노장사상, 자연관, 변혁사상과 사회사상이 그 내용이었다. ⓒ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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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역사강좌의 첫 주제를 나는 '한국민족운동의 이념과 역사'로 정했다. 오늘 치열하게 펼쳐지는 '운동'의 지향과 근거를 역사라는 프리즘 또는 이론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오늘 우리의 민족공동체적 지향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 '한길역사강좌'의 서설 같은 주제였다.
1985년 7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50여 명의 동시대인이 성북구 안암동 5가 101-21번지 '한길사 세미나실'에 몰려들었다. 이날의 개강 강의주제는 박현채 선생의 '민족운동의 사회경제적 조명'이었다. 10시까지 거의 세 시간 동안 강의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민족이란 민족과 민족간 모순에 대응하는 것이다. 민족운동을 규정하는 요인은 외부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 발전단계, 민족간 모순에 있어서 한 나라 자본주의의 성격과 발전단계 등이 있고, 내부적인 것으로서 한 사회구성체의 성격과 모순관계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구식민지 종속국과 신생제국에 있어서의 민족주의가 갖는 사회경제적 특질과 민족주의의 내용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논구되어야 한다."
이렇게 시작된 한길역사강좌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어김없이 진행되었고 강사와 수강자들은 동지적 열정과 우정으로 감정이입을 주고받았다. 강사와 수강자들은 '1차 강의'를 끝내고 다시 자리를 옮겨 '2차 강의'를 계속하곤 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정신과 사상·실천과 이론을 역사적 시각으로 규명하는 공개된 광장"의 주체로서, 강사와 수강자들이 하나가 되는 경이로운 풍경이 안암동 그 골짜기에서 펼쳐졌다.
첫 한길역사강좌의 두 번째 강의는 신용하 교수의 '19세기의 한국민족운동'이었고 세 번째 강의는 강만길 교수의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의 성격'이었다. 네 번째 강의는 소설가 박태순 씨의 '민족운동으로서의 민족문화운동', 다섯 번째 강의는 김진균 교수의 '한국의 민족운동과 사회과학의 방향', 여섯 번째 강의는 박현채 선생의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의 민족운동', 일곱 번째 강의는 송건호 선생의 '민족분단과 통일운동'으로 이어졌다.
80년대 중반 한국사회는 민족운동·민주운동으로 격동하면서 한국인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지적 체험을 하고 있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학자로 구성된 강사진이 열강하는 한길역사강좌는 단연 새롭고도 이채로운 지적 경험이자 새로운 형식의 지식운동이었다. 선풍기를 계속 틀어놓았지만 그 좁은 약식 강의실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신념에 찬 강사의 열강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는 수강자들, 강사와 수강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한길역사강좌는 그 어떤 가능성을 보?주기에 충분했다.
작은 회사의 사장부터 대학원생까지
나는 제2회 역사강좌의 주제를 '한국의 사회사상'으로 정했다. 1985년 9월 26일부터 11월 14일까지 계속되는 강좌였다.
이우성 성균관대 교수가 '한국의 사회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강의했고, 윤사순 고려대 교수가 '조선조 성리학의 사회사상'을 이어 강의했다. 김태영 경희대 교수가 '실학의 사회사상: 실학의 현실개혁론'을, 조광 고려대 교수가 '조선후기 사회변동과 사회사상'을,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가 '조선후기 민중문화의 형성과 그 사상'을, 김경태 이화여대 교수가 '개화사상의 사회사상적 이해'를 강의했으며, 고은 시인이 '민중신앙의 사회사상사적 인식'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강의를 했다.
한길역사강좌의 수강자는 참으로 다양했다. 작은 회사의 사장부터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청년까지 있었다. 대학생도 있었고 사회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선 교사에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예비학자까지 있었다. 역사강좌에 나서는 강사들이 민족문제와 시대상황을 고뇌하는 학자·문학가·지식인이기에, 안암동 사옥의 작은 강의실은 늘 진지하고 치열한 분위기였다. 매주 '수요일'의 역사강좌를 통해 지식인·저자들과 시민·독자들은 새로운 교감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체험을 하였다.
제3회 한길역사강좌 '한국현대사와 역사의식'은 85년 12월부터 86년 1월까지 진행되었다. 진덕규 이화여대 교수가 '한국민족주의의 이념과 성격'을 강의했고, 강만길 고려대 교수가 '8·15해방의 민족사적 단계'를, 신용하 서울대 교수가 '신채호의 생애와 사상'을 강의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이 '한국현대문학과 역사의식', 김윤식 서울대 교수가 '한국근대문학의 성격'을, 그리고 리영희 선생이 '6·25세대론의 시각'을 강의했다.
제4회 강좌는 86년 2월과 3월에 걸쳐 '한국의 기층문화'를 주제로 진행하였다. 김용운 한양대 교수가 '한국인의 자연관과 과학사상'을 강의했고, 윤서석 중앙대 교수가 '한국인의 삶과 식문화'를, 한옥전문가 신영훈 선생이 '한옥의 역사와 문화'를, 전경수 서울대 교수가 '섬사람들의 풍속과 삶'을, 김동욱 단국대 교수가 '복식의 역사와 문화'를, 조흥윤 한양대 교수가 '한국 무속의 세계와 성격'을 강의했다.
1986년 4월과 5월에 진행된 제5회 한길역사강좌는 '한국의 사회경제사'였다. 김태영 경희대 교수, 이영훈 성균관대 교수, 이호철 경북대 교수, 유인호 중앙대 교수, 박현채 조선대 교수,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가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한국자본주의의 맹아문제, 조선시대의 농업사, 1876년 개항과 사회경제의 변화, 한국자본주의와 민족자본, 현대한국자본주의의 전상을 강의했다.
송건호·이이화·임헌영·김남식 선생의 단독 강의
| ▲ 임헌영 선생은 6회 때 '한국현대문학사상사'를, 13회 때 '일제 식민지시대 문학운동사' 강의를 했다. ⓒ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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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진행된 6회, 7회, 8회, 10회, 13회, 14회 강좌는 공동강의가 아니라 단독강의였다. 한 강사가 집중해서 강의함으로써 강의의 내용을 심화하는 한편, 수강자들과 함께 깊은 교감과 토론을 도모해보자는 의도였다.
제6회는 임헌영 선생이 '한국현대문학사상사'를 통람하는 강의였다. 민족문학의 사상사적 전개, 실존주의와 전후 문학사상, 문학과 사회경제사상,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미학사상, 한국현대문학사상사의 새 지평이 그 강의내용이었다.
제7회는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상사'였는데 단군과 민족사상, 불교신앙과 겸수론, 유학사상과 이단론, 노장사상, 자연관, 변혁사상과 사회사상이 그 내용이었다. 제9회는 송건호 선생의 '한국현대사'였다. 1930, 40년대 일제침략정책과 국내 독립운동의 전개양상, 해방전후사의 인식 I·II, 1950년대 한국사회와 이승만 정치권력의 성격, 4월 혁명, 제2공화국, 5·16쿠데타, 5·16군부세력과 제3공화국, 분단시대의 민족운동과 내가 생각하는 민족통일론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이화 선생은 이어 진행된 제10회 역사강좌에서 '한국근대민중운동사'를 단독으로 강의했는데 18세기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19세기 초 하층민의 동향, 관서농민봉기의 배경과 과정, 삼남 농민봉기의 배경과 과정, 동학운동과 민중의 동향, 동학농민전쟁의 배경과 과정, 의병항쟁의 단계적 전개, 민중의 반외세운동의 양상, 만민공동회와 남학상·영학당·할빈당의 투쟁 등이 그 강의내용이었다.
임헌영 선생은 제13회 역사강좌에서 '일제 식민지시대 문학운동사'를 강의했다. 식민지시대 사회구성체와 민족운동, 개화기 문학과 반외세의식, 민족개량주의문학, 카프문학운동사, 프로문학과 노동운동, 소시민문학의 역사인식, 파시즘과 순수문학, 항일민족문학과 반제의식이 강의내용이었다.
아마도 이만한 수준의 강의는 일반 대학에서도 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14회에는 북한문제 전문가 김남식 선생이 '북한사의 새로운 인식'을 단독강의 했는데, 그 내용과 문제의식에서 제도권 대학에서 정말 듣기 힘든 강의였을 것이다. 김남식 선생은 북한 연구방법론과 시기구분, 지도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 노동당의 형성과 권력구조, 사회주의 경제건설, 프롤레타리아 독재론과 계속혁명론, 자주노선과 대외정책, 한반도 통일전략, 북한사의 전망에 대해 강의했다.
오늘의 일본을 해부한다!
| ▲ 1985년 9월 26일부터 11월 14일까지 진행된 제2회 역사강좌에서 '민중신앙의 사회사상사적 인식'이란 주제로 강의했던 고은 선생. ⓒ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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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강좌는 '오늘의 일본을 해부한다'는 주제로 박영재 연세대 교수, 유인호 중앙대 교수, 이정복 서울대 교수, 차기벽 성균관대 교수, 언론인 이도형 씨, 김용운 한양대 교수가 일본근대사의 성격, 일본자본주의의 논리와 행동, 일본 보수정치의 구조와 지향, 일본 진보주의의 성격, 일본 우경화의 연원, 일본인은 누구인가를 강의했다.
제11회 강좌는 '일제 식민지시대의 민족운동'이었는데 박현채 조선대 교수, 조동걸 국민대 교수, 윤병석 인하대 교수, 이균영 한양대 교수, 친일문제 연구가 임종국 선생,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 언론인 양호민 선생, 지수걸 교수, 김낙중 선생 등이 강의했다.
강의 주제는 식민지시대 민족운동을 보는 시각, 식민지시대 국내독립운동의 이해, 1910년대 국외에서의 독립운동, 1920년대 각종 사회단체의 형성과 민족운동, 일제시대 민족개량주의 운동의 계보와 논리, 일제시대 공산주의 운동, 일제시대 농민운동의 전개와 성격, 일제시대 노동운동의 전개와 성격 등이었다. 아마도 이런 주제도 그때까지는 대학에서 수강하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1987년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제12회 강좌주제는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인식이었다. 고조선과 단군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고구려의 성립과 변천, 신라의 성립과 변천, 백제사의 재인식, 임나일본부설의 실체, 삼국시대의 사회구조와 신분제도, 불교의 수용과 고대사회의 변화, 삼국통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발해사의 전개와 남북조시대에 대해 노태돈, 이기동, 노중국, 김현구, 이기백, 김두진, 김영하, 이우성 교수가 강의했다.
1985년 7월에 시작된 우리의 한길역사강좌에 대해 나는 '민족사의 발전과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며 우리 시대의 모든 사상과 실천을 역사적 시각으로 규명하는 우리 모두의 열린 마당'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해보았는데, 1988년 6월까지 총 108회 강의가 진행되었고 연인원 800명이 참여했다. 동시대인의 역사의식의 대중화와 이론화에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리의 한길역사강좌는 이어서 기획된 한길사회과학강좌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 강좌개설운동의 계기가 되었다는 데 또 하나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상당한 수준의 본격적인 주제와 내용을 걸고, 특히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연구자들이 강의에 나섬으로써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강좌운동·학습운동의 지평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계몽강연회가 아니라 본격적인 주제강좌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다른 운동단체나 연구모임에서 우리의 기획과 진행에 대해 문의해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마도 많은 조직과 그룹이 한길역사강좌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강의는 다시 책으로
| ▲ 차기벽 성균관대 교수는 제9회 '오늘의 일본을 해부한다'에 강사로 참여했다. ⓒ 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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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들기란 '기록'하고 '정리'하는 지적·정신적 행위일 것이다. 모든 정신과 사상, 이론과 담론은 한 권의 책으로 존재함으로써 역사적 현실성·실천성을 확보할 것이다. 이렇게 구현되는 한 권의 책은 새로운 정신과 사상, 이론과 담론을 창출해낸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강좌를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애초부터 해보자 했다.
한길역사강좌는 총 14강좌 중 12강좌가 책으로 만들어졌다. 송건호 선생과 김남식 선생의 강의는 원고가 여의치 않아 책으로 엮어내지 못했다. 나는 책으로 편집되는 '한길역사강좌'의 머리에 우리의 책 만드는 정신 또는 그 연장선상에 서는 강좌 운동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기록했다.
"한길역사강좌는 민족의 역사적 전환기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우리들의 열린 마당으로서 개설되었습니다. 오늘의 현실 상황 및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실천적 인식의 제고는 물론이고 현대사회 및 현대사상에 대한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작업에 아울러 도모될 것입니다.
모든 사상과 문화는 역사적 실천의 산물입니다. 한 시대 한 사회의 사상과 문화는 역사성을 가집니다. 한 시대 한 사회의 궁극적 발전은 역사적 시각으로 규명되고 뒷받침됩니다. 한길역사강좌는 우리 시대의 모든 사상과 실천을 역사적 시각으로 규명하는 열린 마당이 되어야 합니다.
한 권의 책이란 하나의 주체적 논리가 개진되는 공개된 마당입니다. 그리고 이 한 권의 책은 그것에 대응하는 또 다른 한 권의 책을 생성시킴으로써 그 논리 및 내용은 극복됩니다. 따라서 책은 한 시대 한 사회의 문화의 총체적 귀결이자 새로운 문화를 진동시키는 힘이 됩니다.
책은 하나의 마당입니다. 삶과 문화 또는 사상이 한데 어우러져 성찰되고 토론되는 마당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펼치는 한길역사강좌는 책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형식입니다.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 그리고 민족적 삶을 성찰하는 모임 또는 강좌가 우리들의 삶의 현장 곳곳에 펼쳐져야 합니다. 거기에서 제기되는 모든 의견과 이론이 축적되고 심화됨으로써 우리의 역사에 대한 정당한 해석 및 실천이 가능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소망하는 역사발전을 도모하는 힘을 축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출판은 민족문화운동의 광장으로서, 그 견인차로서 중요한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출판문화는 이제 민중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그 민중과 만나야 합니다. 지식인 세계, 엘리트 세계라는 한계를 뛰어넘어서, 지식인 또는 엘리트와 맞서고 있는 민중의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독자와의 만남은 저자의 시야뿐 아니라 출판문화 전반에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입니다. 한길역사강좌는 민중 속으로 또는 민중과의 만남, 독자와의 만남을 지향하는 우리의 출판문화운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독자 또는 주체적 수용자로서의 독자와의 직접적이고도 대등한 만남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 출판문화운동의 하나의 큰 방향과 논리가 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신뢰하는 우리들의 공동작업
1980년대는 밤낮 없이 열정으로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온몸으로 학습하는 시대였다.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실현을 열망하는 우리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토론을 펼쳤다. 한길역사강좌는 우리의 그런 80년대의 삶을 보여주는 시민운동이었다. 강의를 끝내고도 미진해 수강자들과 강사는 자리를 옮겨 '2차'를 하였다.
하이델베르그라는 맥주집이 안암동 로터리에 있었다. '2차역사강좌'가 거기에서 진행되곤 했다. 삼겹살집으로 가서는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진행되는 강의를 단골들은 더 좋아했다. 고려대학교가 있는 안암동은 젊은 열정으로 우리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길역사강좌 동창회'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특히 단독강의로 진행된 강좌의 강사와 수강생들은 지속적인 스킨십으로 동지적 관계를 형성했다. 그 운동의 시대 1980년대에 우리가 누리는 또 하나의 축제였다.
한길역사강좌에 참여했던 수강생들은 지금은 나름대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계·언론계·기업·정계에서 지도적인 일을 하고 있다. 1980년대에 우리 출판사가 기획한 한길역사강좌는, 사실은 한 시대의 상황과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동시대인이 공동으로 체험하면서 구현해낸 '역사적 사건'이라는 생각을 한다. 역사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우리가 함께 성취해낸 그 열정의 시대를 아름답게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