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한량의 복고풍 연가
한국어에서 ‘아내’의 자리는 ‘누이’나 ‘어머니’보다 작다. 시와 노래는 ‘누이’와 ‘어머니’를 ‘아내’보다 더 사랑한다. 아내를 소재로 한 시나 노래가 아주 없진 않지만,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엄마야 누나야>) 이후로 누이와 어머니에게 바친 시와 노래의 사랑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 까닭에 아내라는 말이 주는 ‘울림’ 또한 누이나 어머니보다 작다. 누이와 어머니는 소월의 시에서는 ‘고향’이나 ‘돌아가고 싶은 유년’이 되었다가, 조국의 분단을 아파하고 외세로부터 독립된 통일조국을 꿈꿨던 김남주 시인의 『나의 칼 나의 피』『조국은 하나다』 같은 시집에서는 ‘식민지 조국의 아픔’을 상징하게 된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나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같은 시집의 시에서는 ‘가난하고 불행했던 유년의 지독한 고통’으로 의미가 전이되기도 한다.
반면 아내란 말의 울림은 매우 작고 고정적이어서 단조로운 느낌마저 준다. 그것은 아내의 이미지가 반드시 남편의 의지를 따라야 하는 ‘여필종부(女必從夫)’의 마음으로 남편의 고생스러운 삶을 끝까지 함께하는 ‘조강지처(糟糠之妻)’의 자세를 잃지 않고 현명한 어머니이자 착한 아내, 즉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되어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전통적으로 부여받은 당위적 의미에서 아직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필종부’ ‘조강지처’ ‘현모양처’란 결국 아내의 독립성을 그 존재에서부터 부인하고, 아내를 남편과 아내와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1921년 <개벽>에 발표한 ‘현진건’의 「빈처」에서는 한국 남성, 그리고 적어도 우리 시대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의심 없이 품고 살았던 아내의 이런 이미지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가난한 예술가에게 시집 와서 세간과 의복 등을 하나하나 전당포에 맡기며 생활을 꾸려가는 빈처(貧妻). 아내는 가끔 예술가 남편에게 “당신도 좀 살 도리를 하세요”라고 은근히 대들기도 하지만, 이내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소! 저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라는 남편의 사나운 어조에 눈물만 흘리다가,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이라는 남편의 빈말에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라며 되레 고마워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남편의 태도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 아내의 이런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반면, 아내의 한결같음과 달리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는 다분히 변화무쌍하다. “외국으로 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新風潮)에 띠어 까닭 없이 구식여자가 싫어”지기도 했고, 그러다 “집에 돌아와 아내를 겪어 보니 의외로 그에게 따뜻한 맛과 순결한 맛을 발견”하고 “그의 사랑이야말로 이기적 사랑이 아니고 헌신적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가끔은 아내의 “불같던 사랑까지 없어져 가는 것 같”아 “점점 강한 가면을 벗고 약한 진상을 드러내며 가소로운 변명”을 하기도 하는데 이럴 땐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비소하고 모욕하여도 상관이 없지만, 마누라까지 나를 아니 믿어주면 어찌한단 말이오”라며 다소간 비겁한 태도로 나타난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이 같은 감정과 태도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1976년에 나와 그 시대의 남편들이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때 아내의 손을 잡고 “젖은 손이 애처로워” 하며 부르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의 정서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여필종부’하며 고생을 함께했던 ‘조강지처’에 대한 남성들의 순정이었던 까닭이다. 물론 성공한 남편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소위 수준에 맞는 여자를 찾아 떠나는 현실의 모습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진건의 「빈처」가 제시한 다소간 낭만적인 끝맺음에 깃든 아내를 향한 남성들의 순정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두 팔로 아내의 허리를 잡아 내 가슴에 바싹 안았다. 그 다음 순간에는 뜨거운 두 입술이…. 그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그렁그렁한 눈물이 물 끓듯 넘쳐흐른다.
물론 오늘날 아내의 이미지가 항상 ‘현모양처’나 ‘여필종부’의 이미지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활기차고 자기주장 강한 아내의 모습이 TV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심심찮게 등장하여 남성을 긴장하게 하고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같은 경우는 아예 바람난 아내의 모습을 주요 테마로 한다. 재미있는 것은 대중문화, 특히 영화가 그리는 아내의 반란, 즉 불륜의 대다수가 ‘아내’의 이름이 아닌 ‘부인’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처럼 작명하여 왔다는 것이다. 1954년 1월 1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문학의 선정성 논쟁을 낳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정비석의 세태 소설 『자유부인』에서 바람난 대학교수의 ‘아내’를 ‘부인’으로 명명한 이후 이런 경향은 쭉 이어져 온 듯하다. “내가 잠자리를 요구할 때마다 당신은 냉정하게 거절했어요. 저도 사람이에요. 당신과 똑같이 하겠어요”라며 아내이기를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부인’이 된 1982년의 <애마부인>. 태평양을 건너온 ‘차탈레 부인’이나 <끌로드 부인>, 1995년의 토종 ‘젖소부인’, 그리고 ‘자라부인’ ‘왕따부인’ 등 아찔하게 이어져 온 부인들의 바람. 아마도 이런 경향은 아내에 깃든 순정성을 해치고 싶지 않았던 사회의 무의식적 공모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상당히 도발적인 소설이다. 그는 아내가 아닌 부인으로서만 가능했던 ‘아내의 바람’을 ‘아내’의 이름으로 대담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아내의 바람’이 아니라, 전통적인 결혼제도의 한계와 부부 간 관계의 재구성에 있긴 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나는 그녀의 친구가 아니다. 친정 식구도 아니다. 전 남편도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남편이 있는 여자가 지금의 남편과 여전히 같이 살면서 다른 남자와 도 결혼해서 살겠다는 이야기다. 도발적인 소재 탓에 남성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데, ‘소설 속 아내’의 모습을 매력적이고 유쾌한 모습으로 그려내어 돌파하고 있다. 그런 정도의 매력이 있는 ‘소설 속 아내’라면 나라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인정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소설 속의 아내’는 축구를 잘 알고 좋아하며, 섹스를 무척 즐기며, 밥과 반찬을 맛있게 만들 줄 알며, 집안 청소도 잘하며, 무엇보다 돈도 버는, 그리고 소설 속의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슈퍼 아내’다. 그러니 ‘소설 속의 남편’이 ‘소설 속 아내’의 이런 매력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아내가 주장하듯이 아내 하나에 남편 둘인 이상한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이상하지 않은 거래다.
물론 『아내가 결혼했다』가 인간관계가 거래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우선 ‘존중’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도발적인 까닭은 심판의 눈을 피해 반칙을 하는 플레이어, 즉 ‘불륜 부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플레이메이커, 즉 ‘아내란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제껏 아내는 욕망이 없는 존재였거나, 혹은 그 욕망이란 것도 남편의 눈을 피해 죄의식 속에서 즐기는 불륜, 즉 ‘OO부인’으로의 불륜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내가 결혼했다』는 아내의 욕망을 남편으로부터 해방해 냈다. 그리고 아내의 욕망에 덧씌워진 부인의 어두운 불륜 이미지를 걷어냈다. 그로부터 하나의 전복적 관계가 ?려진다. 남편을 일방적으로 믿고 따르는 여필종부의 아내로서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짜릿한 역전. 남편은 이제 아내의 존재, 욕망, 생각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당연하고 즐거운 변화이며,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남성들이 배워야 하는 자세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아내의 존재와 생각을 존중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아내에 남편이 둘인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는, 설사 그 사고를 인정한다 해도 마음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남성인 까닭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이젠 늙어버린 까닭이다. 새로운 낭만을 꿈꾸기보다는 오래전의 낭만으로 더 이끌리는 까닭이다. 그러니 생각이 난다. 1990년 황지우가 발표한 『게눈 속의 연꽃』에 숨어 있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가.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내가 대신 앓고 싶어요’보다 천 배 만 배 더 혁명적이었던 이 시 덕분에 애인을 만들고 싶고, 결혼하고 싶고 그랬던, 20대 청춘의 들뜸에 대해서. 이 시 덕분에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며, 그리하여 그와 함께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의 숭고함이 얼마나 혁명적으로 낭만적인지에 대해서. 그 사실을 지금 문득 기억해낸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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