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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도시 붐'과 '미국의 꿈'이라는 악몽

'마르크스주의 환경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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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 지금, 마이크 데이비스는 “스스로 ‘국제 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환경주의자’라고 밝힌 바 있으며 도시사회학·역사학·정치학·생태학 분야를 가로지르며 활발한 저술·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 1946- )의 한국어판 두 권은 발행날짜가 13년 이틀 차이 난다(번역 저본의 출간은 딱 20년 차이 난다). 이런 경우, 두 권은 대체로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룬다. 마이크 데이비스도 그렇다. 슬럼(slum)과 미국 노동계급의 역사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주제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 글 또한 마찬가지다.

앞서 나온 책의 그것이 더 간결하지만, ‘역자 후기’에서 이를 보충한다. “데이비스는 1946년 캘리포니아의 샌버너디노(San Bernardino)에서 태어나 1960년대에 사우스 캘리포니아에서 민권운동, 반전운동, 노조운동의 활동가로 활약하다가 정육노조(Amalgamated Meatcutters Union)의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다니게 된다. 그 후 트럭운송노조에서 노조개혁운동을 벌이다가 1980년대에는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지 편집진에 합류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마이크 데이비스는 “스스로 ‘국제 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환경주의자’라고 밝힌 바 있으며 도시사회학?역사학?정치학?생태학 분야를 가로지르며 활발한 저술?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슬럼이란 무엇인가

『슬럼, 지구를 뒤덮다-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김정아 옮김, 돌베개, 2007)는 전 세계적 현상인 도시의 슬럼화를 파헤친다. 슬럼을 최초로 정의한 문헌에서 그것은 ‘사기’ 혹은 ‘불법적’ 거래와 비슷한 말로 쓰였다. 1830~1840년대에 슬럼은 빈민층의 행위를 뜻하는 것에서 빈민층의 거주지를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한다. 감식가와 산책가는 인간이 가장 심하게 타락한 곳이 어딘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895년에 <스크리브너스 매거진(Scribner’s Magazine)>은 대도시 빈민에 관한 탐방 기사를 실으면서 나폴리의 폰다치(fondaci)가 인간이 사는 곳 가운데 가장 끔찍한 곳이라고 했지만, 고리키는 모스크바의 악명 높은 키트로프(Khitrov) 지역이 ‘더욱 낮은 나락’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키플링은 이들을 비웃으며 독자들을 ‘더욱 깊고 깊은’ 콜루톨라(Colootollah)로 데려갔다. 이곳은 콜카타의 ‘무시무시한 밤의 도시’에 위치한 ‘가장 낮은 수렁’이었다.”

슬럼은 쓰러져 가는 집, 인구 과밀, 질병, 빈곤, 비행이 뒤섞인 곳이다.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슬럼의 가장 큰 특징은 비도덕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생각한 슬럼은 구제 불능의 흉포한 ‘인간쓰레기 더미’가 부도덕하고 허랑방탕하게 썩어가는 장소였다.” 실제로 많은 문학작품이 도시의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빅토리아 시대의 중산계급에 짜릿함을 제공했다고 한다.

2003년 10월, UN-HABITAT에서 펴낸 보고서 『슬럼의 도전(The Challenge of slums)』은 이러한 슬럼의 고전적 정의를 따른다. 인구 과밀, 열악한 비공식 주택, 안전한 식수와 위생설비의 부재, 주택 보유의 불안정 같은. 그러나 “슬럼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슬럼의 원형인 도심 빈민가와 도시 외곽 판자촌을 포함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디까지가 슬럼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는 매우 보수적이다.” 다만, 도덕적 비난을 하지 않을 뿐이다.

저개발 나라를 중심으로 한 전 지구적 슬럼화의 양상은 매우 심각하다. 선진국은 슬럼 거주자가 도시 인구의 6%인데 비해 저개발국은 도시 인구의 78.2%나 된다. 또 이는 전 세계 도시 인구의 3분의 1에 이른다. 1970년대 이래 남반구 전역에서 슬럼의 성장 속도는 도시화 자체의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

세계에서 슬럼 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도시 인구의 99.4%가 슬럼에 거주하는 에티오피아와 차드다. 아프가니스탄(98.5%)과 네팔(92%)이 그 뒤를 잇는다. 인도 “뭄바이는 스쿼터(Squatter, 무단점유자)와 슬럼 세입자 1,000만~1,200만 명을 자랑하는 전 세계 슬럼의 수도”다. 그럼, 어째서 다들 도시로, 도시로 모여드는 걸까?

도시로, 도시로

“도시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채무와 경기침체로 인해 현저히 약화되었지만, 시골에서 사람들을 ‘밀어내는’ 전 지구적 동력들-자바와 인도의 농업 기계화, 멕시코와 아이티와 케냐의 식량 수입, 아프리카 전역의 내전과 가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기업 합병 및 거대 농기업 경쟁-은 여전히 도시화를 지속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의 불황기에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물가는 급등하며, 도시 실업자가 크게 늘어났는데도 제3세계의 도시화는 급증하는 추세를 그대로 이어갔다. 한편, 20세기 초에는 시골의 빈곤 계층이 대규모로 도시로 흘러드는 것을 막는 장치가 있었는데 가장 주된 장벽은 유럽 식민주의였다.

슬럼은 컨퍼런스, 국빈 방문, 스포츠 행사, 미녀 선발대회, 페스티벌 따위의 국제적 이벤트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여기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다.”

이 책은 슬럼의 유형을 짚어보고 슬럼의 현실을 살핀다. 6장 「슬럼의 생태학」은 마이크 데이비스의 성향을 반영한다. “슬럼은 우선 토질이 나쁘다.” 게다가 도시 빈곤으로 말미암아 자연적인 위험요소가 배가되는가 하면, 전적으로 인공적인 위험요소가 새로 만들어져 엄청난 인재(人災)를 낳기도 한다.

‘감사의 말’의 한 구절은 마이크 데이비스가 경직된 좌파가 아님을 말한다. “최근의 ‘사이언스 어드벤처’ 3부작을 아들 잭에게 헌정했으니, 이 책은 잭의 누나 로이진에게 헌정할 차례다. 로이진은 날마다 100가지 방법으로 나에게 기쁨을 안겨준다(걱정 마라, 카산드라 목테주마, 제임스 코놀리, 내 새끼들, 너희들 차례도 곧 온단다).”

미국 노동계급의 역사

“레이건 이후에 미국의 정치는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미국 노동계급사의 정치경제학』(김영희?한기욱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4)의 ‘에필로그’ 첫머리에서 마이크 데이비스가 던진 물음은 고색창연하지는 않지만 얼마간 낡았다. 미국의 정치가 아버지 조지 부시의 과도기를 거쳐 각기 연임에 성공한 빌 클린턴과 아들 조지 부시의 시대로 이어졌고, 조지 부시의 대통령 임기가 1년 6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물음이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미국 혁명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포괄한 데다 “미국 좌파의 향방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에 대한 이론적 개입”을 하고 있어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1980년대 미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계급투쟁이 갈수록 일방적인 것이 되어간다는 점을 든다.

노동절이 미국 노동자의 투쟁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처음 알면,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게 사실이다. 메이데이는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선 노동자들이 5월 3일 시카고의 헤이마켓(Haymarket) 광장에서 경찰에 희생당한 것을 기린다. 미국의 교과서는 미국 노동자의 투쟁에 의미를 부여하나, 그런 견해는 현실에선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이크 데이비스의 생각이다.

“다른 어떤 요인들보다도 (양차 세계대전) 전후의 노동운동이 흑인해방운동과 유기적인 블록을 형성하지 못한 점과 남부를 조직화하지 못하고 민주당 내부의 남부 반동세력을 무너뜨리지 못한 점이야말로 미국 노동조합운동의 궁극적인 몰락과 (19)70년대 정치경제의 우경적인 재편을 결정지은 요인이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사회주의 정치운동은 제도권 정당의 ‘유효표’ 확보의 요건에 부합되게 재단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좌파에게 가능한-그리고 필요한-지평은 자본주의 정당 중 어느 하나의 ‘충성스런’ 외곽이 되려는 가당찮은 기획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사회적 뿌리를 갖고 있는 독자적인 좌파정치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다.”

“사회주의가 어느 날 북아메리카에 찾아온다면, 국경을 넘나들며 여러 운동을 얽어놓는 총체적인 대륙적 반란의 과정을 통해서 찾아올 가능성이 훨씬 큰 것이다. 미국 좌파의 장기적 전망은 좌파가 자신의 ‘자생적인’ 대중적 기반들 가운데서 대표성과 조직화의 수준을 더욱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국제주의에서 필수불가결한 일익이 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남북아메리카 모든 나라들의 대중적 좌파들 사이에 일치된 행동과 정치적 협력을 도모하는 좀 더 과감한 기획들을 상정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는 너나없이 ‘미국의 꿈’이라는 똑같은 악몽에 갇힌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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