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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감에 소름 돋는 뮤지컬 <쓰릴 미>

시카고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쓰릴 미thrill me>가 언론과 관객의 호평에 힘입어 연장공연에 들어갔다. 차일피일 미루던 터라 이때다 싶어 공연장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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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쓰릴 미thrill me>가 언론과 관객의 호평에 힘입어 연장공연에 들어갔다. 차일피일 미루던 터라 이때다 싶어 공연장으로 발을 옮겼다. 게으름의 대가로, 연장공연에 합류하지 않은 류정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쓰릴 미>가 낳은 새로운 스타, 김무열을 관찰할 기회였다. ‘류정한 보러 갔다 김무열 팬이 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던데, 얼마나 멋진지 기대해 본다.

90분의 긴박한 스토리

무대에는 ‘나’와 ‘그’, 단 두 명이 등장한다. 34년을 교도소에 갇혀 생활한 나. 오늘은 나의 일곱 번째 가석방 심의가 있는 날이다. 나와 그는 34년 전, 어린아이를 유괴해 살해했다. 나는 호기심이나 사회에 대한 반발심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

나와 그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둘 다 XY염색체를 지닌 남성, 그러니까 나와 그는 동성애자다. 나는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못된 장난에 관심이 많다. 창고에 불을 지르고, 빈집을 털고… 그렇게 금기된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의 희열은 내가 갈구하는 사랑의 발화점이기에, 나는 그의 모든 허섭스레기 같은 일에 동참한다. 문제는 감정의 역치 지점이 시간이 갈수록 상승하는 데 있다. 자극을 느끼려는 그의 장난은, 아니 범행은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급기야 어린아이를 유괴해 살해하기에 이른다.

극에 몰입한 배우들, 동성애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배우들의 흡입력 강한 소름 돋는 연기

이야기는 탄탄한 구성을 토대로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박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앞서 말했듯 나와 그, 단 두 명이 풀어간다. 일단 동성애라는 베이스가 아직 국내 정서가 지닌 보편타당함에서 벗어나 있기에 편하지는 않다. 남자들이 서로 주고받는 끈끈한 눈빛, 밀어 그리고 스킨십까지. 배우들 또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거부감을 주지 않는 정도를 놓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러나 본 공연에는 없었던 키스신이 연장공연에는 등장한다. 아마도 배우들의 욕심일 것이다. 물론 그런 욕심을 낼 만큼 그들은 극에 몰입한다.

김무열. 결과적으로 나도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키 크고 잘생겼으니 배우로서 타고난 외모라고 하겠다. 그러나 요즘처럼 잘생긴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 외모만 보고 팬이 되지는 않는다. 결정타는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다. 몸매가 드러나는 정장에 깔끔하게 쓸어 넘긴 머리카락. 그 차림새만큼이나 새치름하고 미끈한 표정과 말투. 관계의 주도권을 쥔 그는 얄미울 정도로 제멋대로다. 사랑받는 자의 우월함에 광적인 포악함이 더해져 나쁜 남자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다. 어떨 때는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가 또 어떨 때는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야’를 내뱉는 능청스러움이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입술과 표정, 눈치 빠른 비열한 눈매는 ‘그’ 역할에 안성맞춤이다.

<쓰릴 미>로 주목받고 있는 이율, 최재웅

물론 김무열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다. 애초 류정한의 등장으로 주목받았던 뮤지컬 <쓰릴 미>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당일 ‘나’로 등장했던 최재웅을 비롯해 강필석, 이율까지 모두 근사한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 무엇보다 흡입력 강한 연기로 관객의 우렁찬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

화려하면서도 절도 있는 피아노 연주

뮤지컬 <쓰릴 미>의 무대는 빈약하다. 무대 전환도 없고,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거나 춤을 추지도 않는다. 게다가 오케스트라까지 참여하는 다른 뮤지컬과 달리 음악은 피아노 한 대가 도맡았다. 그러나 전혀 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극의 배경과 등장인물, 스토리 전개까지 표현하는 세련된 조명과 화려한 피아노 연주 덕분이다.

특히 피아노 연주는 무대 시작과 함께 쉬지 않고 울려 퍼지는데,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모호함에서 음산함, 췅질 것 같은 흥분과 두려움까지, 배우들의 심리는 물론 긴박한 이야기 전개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어찌나 화려하고 힘이 넘치면서도 또한 절도 있는지, 아이스링크에서 멋들어진 만점짜리 공중회전을 연달아 보는 기분이다.

핵심은 사랑, 결국 누구의 승리인가?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는가? ‘어린이 유괴 및 살해사건’이라는 잔혹한 탈을 썼지만, 핵심은 연약한 ‘사랑’에 있다. 아니, 사람을 죽이게 하고 30여 년을 교도소에 살게 할 수도 있으니 사랑이야말로 잔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가 이렇게 엄청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는 그가 원했고 그를 원해서였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보면 관계를 지속하고자 ‘노력하는 몫’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 겪어봤겠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 10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두 사람이 똑같이 5라는 에너지를 담당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어느 한 쪽이 6~7, 많게는 9의 에너지를 짊어지게 돼 있다.

류정한 보러갔다 김무열 매력에 빠지다(왼쪽부터 류정한, 김무열)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 항상 앞서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고 이리저리 맞추며 아파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그’는 사랑받는 사람, 관계가 아닌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항상 등을 보이며 돌아서 이리저리 달아나 웃는 사람이다. 이럴 때 대개는 후자가 아무렇지 않게 관계를 끊고 멀어져가게 돼 있다. 그런데 더러 전자, 그러니까 노력하는 사람이 관계의 주도권을 거머쥐고 관계를 재정비할 때가 있다. ‘그’가 우월함에 젖어 있는 사이, ‘나’는 그 서글픈 관계를 되씹으며 모래알처럼 작고 하찮은 정황까지 담은 섬세함을 지니게 된다. 거기에 ‘미치도록 잔혹한 사랑’이 더해지면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뮤지컬 <쓰릴 미>가 지닌 팽팽한 긴장의 끝은 바로 ‘나’의 ‘잔혹한 사랑’이 만들어낸 반전에 있다. ‘나’와 ‘그’는 교도소에 함께 갇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누구의 승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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