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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을 찾아서 - 삼성출판박물관 나들이

느긋하게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금방 흘러가더군요. 같이 못 온 큰 녀석이 생각나데요.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서 다 만나볼 시인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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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시인의 마음을 찾아서’라는 특별전시회가 열리는 삼성출판박물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3번 출구로 나와 버스 승차장에서 1022번 버스로 갈아타고 상명대학교를 지나다 보면 구기터널 가기 바로 전 모퉁이에 자리한 삼성출판박물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삼성출판박물관은 당산동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 세미나실, 강의실 등을 갖추고 다양한 전시와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 전시 운영하는 곳입니다.

전시장을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출판 박물관답게 흥미 있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중국에서 유럽으로 종이가 전파되는 과정을 지도로 나타낸 <종이 전파 1000년의 역사>나 한국의 인쇄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한 <한국 인쇄 문화 연표> 등이 그것이지요. 아이와 하나하나 읽어 가며 4층 전시실로 올라갔습니다.

국보 제26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과 ‘월인석보(月印釋譜)’ 등 9점의 보물 외에 우리나라 출판역사에 관련된 전적과 서화, 도서 등 40만 점을 소장한 곳이라고 소개된 출판박물관 상설 전시실은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하나하나 꼼꼼히 전시실을 둘러보니 전시물 하나하나가 다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엄마, 이거 석가탑 맞지?” 얼마 전 경주에 다녀왔던 아이는 석가탑 모형을 발견하고 반가워했어요. 자세히 보니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형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사본이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우리나라의 뛰어난 목판 인쇄술에 대해서, 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를 이야기해주니 아이도 재미있어하며 석가탑과 다라니경을 새롭게 보는 것 같더군요. ^^

그 옆에는 금속활자로 찍어낸 최초의 한글 책인 ‘월인천강지곡’의 금속활자본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흔히 중국의 4대 발명으로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을 꼽지만 우리나라에서 서양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사용했다는 것은 자긍심을 가질 만한 멋진 일인 것 같았어요. 아이와 함께 전시실 안쪽에 자리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인쇄 도구를 살펴보았습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데 사용한 거푸집과 다양한 인쇄도구가 전시되어 있는데 책 한 권 갖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시절, 책을 더 많이 베끼려고 글씨를 깨알같이 적기도 했다는 이덕무의 일화를 아이에게 말해주니, 아이는 지금은 돈만 주면 어디서나 손쉽게 살 수 있는 책이 그때는 그렇게 귀한 것이었느냐면서 놀라더군요. 초등학교 시절, 반 아이들의 시험지를 한 장 한 장 철필로 쓰고 등사를 하시던 선생님이 생각나게 하는 등사기와 타닥타닥 지금은 흘러간 옛 소리로 기억되는 오래된 타자기는 새록새록 추억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인쇄기술과 인쇄과정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옛 문헌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

그 외에도 우리 조상이 책을 읽고 쓸 때 빠지지 않던 문방사우와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전각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옛 교과서가 있었어요. 가장 오래된 교과서라면 바로 천자문이겠지요? 하늘 천 따 지… 줄줄 좔좔 글을 읽던 학동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은 책은 책장을 넘기는 부분에 묻은 손때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있겠지요? 그 외에 해방 후 아이들의 책보에 들어가 유년 시절의 친구로 함께했던 교과서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셈본’ ‘초등도의’ ‘다른 나라의 생활’ 등 지금과는 다른 교과서 제목이 그 시절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고풍스런 문방사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게 옛날 교과서래요”

“엄마, 이 책은 왜 이렇게 빨개?”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거기에는 온통 빨간색 표지에 은색의 글씨로 ‘쏘련 공산당 역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 이게 그 빨간 책? ^^ “글쎄, 왜 이 책은 빨간색일까?” 아직 아이에게 설명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제가 다시 물음을 던졌더니 아이가 “아마 무서운 책일 것 같아”라고 하네요. ^^

그런데 전시실에 낯선 사진 한 장이 있더군요. 가까이 가서 보니 가운데에 고종황제와 순종황제, 그리고 영친왕이 있고 그 옆으로는 이완용, 송병준, 조중용, 김윤식 등 매국 7역신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엄마, 저분이 커피 좋아했다는 고종황제야?” 아이야 아직 매국이라는 단어가 낯설겠지만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 남은 사진 한 장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5층 특별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길, 역시 계단 옆에는 재미있는 전시물이 있었는데요, 전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배지가 촘촘히 붙어 있는 전시물이 재미있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제 중학교 배지를 찾아보니, 어머나, 정말 25년 만에 다시 보는 중학교 배지가 낯익은 얼굴로 제게 인사를 하네요. ^^

전국 중·고등학교 배지

5층 전시실은 ‘시인의 마음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대표작이 줄줄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명시인들의 시와 시집,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오발탄」「학 마을 사람들」 등으로 유명한 이범선 님의 서재를 그대로 재현한 입구를 지나면 전시실 안쪽으로는 보물 제684호로 지정된 용문사 윤장대 복제품이 있어요. 안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할 때 쓰였다는 윤장대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불교 공예품이라네요. 윤장대를 감상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인들의 자취를 살펴보았습니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항일 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님의 흉상과 작품이 있고 김소월, 이육사, 오장환, 윤동주, 유치환, 김광섭 등 낯익은 시인들의 친필 원고와 시집, 그리고 동인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또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 시인과 ‘농무’의 신경림 등 80년대를 관통하며 아픔과 저항을 노래했던 시인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어요.

만해 한용운 님의 흉상과 친필 앞에서
7, 80년대 시집

느긋하게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금방 흘러가더군요. 같이 못 온 큰 녀석이 생각나데요.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서 다 만나볼 시인들인데…. 다시 한 번 큰 녀석의 손을 잡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출판박물관을 나섰답니다. ^^

[TIP]
삼성출판박물관 //www.ssmop.org/
* 개장시간: 월요일 ~ 금요일 10:00 ~ 17:00
                 매주 토/일요일, 공휴일 휴관
* 위치: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126-4
* 전화: 02-394-6544
* ‘시인의 마음을 찾아서’ 전시회: 6월 13일 ~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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