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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없는 세대의 탄생
세상은 1980년대의 언어가 아닌 1990년대 언어로, 1980년대의 영웅이 아닌 1990년대의 개인들이 써내려가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무협소설도 이젠 정파와 사파의 대립을 축으로 한 영웅서사시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좌백의 무협소설 『대도오』가 품고 있는 정서는 1980년대 대중이 열광했던 홍콩 누아르의 정서와는 달랐다. 1987년 상영된 <영웅본색>을 시작으로 1989년의 <첩혈쌍웅>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홍콩 누아르의 정서는 <첩혈쌍웅>에 나오는 “개처럼 살기보단 영웅처럼 죽고 싶다”라는 말로 상징된다.
그러나 1995년 출간된 무협소설 『대도오』는 주인공 ‘대도오’부터 영웅이 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영웅심과 공명심에 들뜬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는 “살아남은 쓰레기가 죽은 영웅보다 낫다”라는 문장을 통해 비웃기까지 한다. 물론 “살아남은 쓰레기”라는 이 말은 “의지에 반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자신의 힘으로 살겠다는 생의 강한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대도오』도 무협소설이기에, 그래서 당연하게도 동료 간의 ‘의리’ 같은, 무협을 읽는 독자의 판타지를 실현해줄 요소가 많다. 그러나 동료 간의 의리만 해도 그것은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에서처럼 원래부터 그러했던 것이나 무조건적인 요소로 등장하지 않는다. 사파(邪派)를 이겨야 하는 정파(正派)의 대의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사(正邪)의 구별이 없는 개인들이 각자 살아남고자 서로 필요로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고, 서로 책임을 다하기에 생성된 경험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정서의 이런 변화는 『대도오』가 ‘대의’와 ‘필연’을 걷어내고, ‘개인’과 ‘삶의 우연성’을 작품 안에 적극적으로 집어넣어서다. 『대도오』는 기존 무협소설과 달리 ‘기형도(奇形刀)’를 찬 주인공 ‘대도오’를 비롯한 하급무사의 이야기다. 이 하급무사들은 비장한 각오로 달성해야 할 어떤 목표가 없다. 우연히 가담한 ‘철기맹’에서, 또 우연히 배속된 ‘흑풍조’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은 당장에 주어진 임무를 해결하고 살아남고자 서로 협력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만남엔 꼭 그래야 하는 필연이 없었고, 그렇기에 그들이 달성해야 하는 대의도 없었다. 그들은 개인으로 존재하며, 그들 각자의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실행할 뿐이다.
작품의 이런 성격 탓에 『대도오』는 기존 무협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신무협(新武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실존주의 무협소설’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사실 ‘실존주의’는 무협소설이 걸치기에는 무거운 철학적 갑옷이다. 판타지, 추리, SF 등 다른 장르문학보다 덜 고급스럽고, 더 가볍게 다가오는 탓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도오』에 실존주의라는 수식어는 무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아는 데는 첫 문장으로도 족하다.
“모르오.”
아버지 이름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면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날 희귀한 동물처럼 본다.
아비의 이름을 묻는 세간의 질문에 “모르오”라고 답하는 이 문장은 전통적인 가치와 철저한 결별을 통해 날것으로서의 생과 맞서고자 했던 실존주의자들이 지닌 전복적 의지와 비슷하다. 마치 인간이 생의 의미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질문하고 그 대답을 자신의 힘으로 구해야 하는 ‘실존적 존재’가 되고자 신을 추방해야 했듯이. 자식들도 홀로 서려면 아비를 추방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비를 추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개인이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아비의 이름을 대는 것이다. 그것은 아비란 자식들의 원인이어서, 아비의 삶은 자식에 반영된다는 오래된 믿음에서 온다. 인간이 생의 정당성을 설명하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 ‘신의 나?를 건설’하고자 자신이 믿는, 자신을 만든 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많은 작가는 아비를 추방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학,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설명하고자 아비들에 기대어왔다.
서정주는 시 <자화상>을 통해 아비가 ‘종’이었음을 고백하였다. 소설 『영웅시대』에서 아비가 ‘남로당원’이었음을 고백한 이는 이문열이다. 소설 『빨치산의 딸』의 작가 정지아는 제목 그대로 ‘빨치산’의 딸이었다. 아비가 ‘개흘레꾼’이었다는 충격적인 고백은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의 것이다. 소설 『그리운 동방』을 통해서였다. ‘종’에서 ‘남로당원’ ‘빨치산’ 그리고 ‘개흘레꾼’으로 이어지는 작가들의 고백은, 그 아비들이 ‘지주’ ‘친일파’ ‘경찰’ ‘자본가’ 등으로 바뀌어도 자신의 삶에 필연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아비들에게 기대어야 했던 작가적 절박함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아비에게까지 반드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가. 삶을 자기로부터 시작할 수는 없는가. 아비와 자식의 생은 반드시 필연적이라고 믿을 까닭이 있는가.
하지만 나로서는 아버지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 이름을 아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때로는 그들에게 너희는 어떻게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너희가 알고 있는 그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인지 어떻게 확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말이 길어진다. 그것이 귀찮아 그냥 이유를 설명해준다.
“나는 사생아(私生兒)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필연에서 비켜서 있을 때, 그들은 사생아라 불린다. 사생아란 원인은 있지만 그 원인과 단절된 아이를 말한다. 그러할 때 자식의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 의미를 규정해줄 아버지가 없을 때 자식은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를 찾아 나설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대도오』가 실존주의적이라 하는 까닭은, 아비에게 기대고, 아비를 찾아가는 전통의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생을 개척해야 하는 ‘사생아’라는 자기의식에 도달해있어서다.
자식이 아비를 추방하고, 급기야 “자신은 사생아다”라고 말하는 것엔 시대적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1990년대가 ‘1980년대 콤플렉스’를 벗어나 스스로 의미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는 자신감이다.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고 절규한 조용필의 노래 <창 밖의 여자>로 시작한 1980년대는 노랫말만큼이나 비장하였다. 군인을 대통령으로 둔 탓에 거리는 전쟁터였다. 피 묻은 권력에 대항해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사회는 권력과 민중, 자본가와 노동자 등 대립하는 두 모순의 축으로 나뉘어 투쟁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개인은 없었다. 알지 않는가, 전쟁의 와중에 개인은 소모될 뿐인 것을. 개인들은 오직 이편과 저편 중 어느 한편이 되어야 했다. 어느 한편이기를 거부한 이들은 사회의 뒤로 물러나 있기를 강요받았다. 다행히 억압에 반대했던 사람들 편으로 역사는 흘렀다. 독재는 타도되었고 가난은 사라져가는 듯했다.
1990년대 초반은 분명히 1980년대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정치 이슈는 민주화였고 경제 이슈는 평등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은 세상이 예전과 달리 좋아지고 있고, 세상은 전쟁터라기보다는 꽤 재미있는 곳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대립하는 두 주체는 여전하였지만 그들의 선동은 재미가 없었다. 대립하는 두 주체에게서 어느 한편이기를 선택받았던 개인들은, 이젠 대의보다는 실리, 거대담론보다는 생활이슈에 몰두하였다. 세상은 대립하는 두 주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작디작은, 그러나 치열한 욕망이 서로 얽힌 곳이라는 인식이 커져 갔다. 마침 인류의 거대한 실험이었던 사회주의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기고 역사 밖으로 사라졌고, 역사의 투쟁은 종결되었다는 선언마저 들리기 시작하였다. 바야흐로 대의명분의 시대, 혁명의 시대가 끝나 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1980년대의 언어가 아닌 1990년대 언어로, 1980년대의 영웅이 아닌 1990년대의 개인들이 써내려가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무협소설도 이젠 정파와 사파의 대립을 축으로 한 영웅서사시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대도오』는 이런 변화의 와중에 등장하여, ‘1980년대 콤플렉스’를 벗어나 “나는 사생아”라는 자기의식을 지닌 1990년대 캐릭터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들은 ‘신세대’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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