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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생산품 같은 영화 <슈렉 3>

여기서 재미있는 건 바로 관객을 만족하게 하려 한 계산의 결과가 관객에게 오히려 덜 어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렇게 완벽한 계산이 통하는 동물이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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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 3>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그 영화의 기성품적인 느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 영화는 너무나도 공장생산품 같았어요. 의욕 넘치는 예술가들이 모여서 만든 창작물이 아니라 손에 카푸치노 컵을 든 회사 중역들이 어떻게 하면 그럴싸한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를 날로 먹을까 회의한 끝에 만들어진 것 같았죠. 그래서 전 잽싸게 결론지었죠. 맞아, <슈렉 3>를 망친 건 바로 드림웍스의 중역들이야.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요? 물론 안 되지요. 성공작이었던 오리지널 <슈렉>은 3편과 엄청나게 달랐습니까? 다를 것 없었어요. 그 역시 손에 카푸치노 컵을 든 회사 중역들의 토론 끝에 만들어진 영화였지요. 오리지널 <슈렉>의 캐릭터 구축이나 농담 쌓기, 디자인이나 스토리 선정은 몽땅 다음 디자인의 승용차를 출시하는 자동차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거기서 개인적인 것은 원작이 된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슈렉><슈렉 3>를 갈라놓는 건 결국 좋은 기성품과 나쁜 기성품의 차이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니, 몹시 나쁜 기성품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기성품이죠.


공장 생산 예술이란 나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즐기고 감상하는 수많은 예술품이 공장 생산품이죠. 지금은 교과서에 오르고 예술의 정점으로 알려진 걸작도 그렇습니다. 푸치니 혼자서는 오페라를 쓸 수 없었죠. 제작자와 돈을 대주는 스폰서와 스타와 스태프와 극장과 홍보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장이 덜컹덜컹 움직여 줘야 했습니다. 푸치니도 거기에 맞추어 <라 보엠>을 썼던 거고요.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라고 그 시스템에서 예외였겠습니까? ‘그래도 예술가의 개성은 남았잖아!’라고 외치시는 분도 있겠지만 <카사블랑카>처럼 철저한 공장생산품이면서도 여전히 걸작으로 칭송받는 작품으로 넘어가면 그 핑계도 안 먹힙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뒤로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은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거물 예술가의 이름을 앞세운 영웅주의에 속아 넘어가도 그 공장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슈렉 3>의 퀄리티는 걸립니다. <슈렉>뿐만 아니라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퀄리티는 다 조금씩 걸려요. 그건 끊임없이 배경만 바꾸어 찍어대는 한국 조폭 영화도 마찬가지고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설정만 고쳐 만들어내는 일본의 가도가와 호러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 좀 다르고 불편한 겁니다.

그 이유가 슬슬 짐작이 가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잇속을 내려는 공장생산품이라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계산이 정확한 공장생산품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계산이 정확하고 너무나 이치에 맞기에 숨 쉴 여유가 느껴지지 않아요.

여기서 재미있는 건 바로 관객을 만족하게 하려 한 계산의 결과가 관객에게 오히려 덜 어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렇게 완벽한 계산이 통하는 동물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그런 것이 통할 만큼 완벽하지도 못하고 계산적이지도 못합니다. 그런 동물을 기계처럼 다루며 완벽한 계산을 한다면 당연히 그 계산은 틀리죠. 너무 맞기 때문에 틀리는 겁니다.

물론 이런 계산이 멈추는 날은 없을 겁니다. <슈렉 3>만 해도 관객이 뭐라고 투덜거리건 장사는 되거든요. 영화의 흥행은 관객이나 비평가의 만족도와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만드는 사람들도 알죠. 그래서 할리우드의 총제작비는 계속 올라가고 그중 엄청난 돈이 마케팅으로 흘러가는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실속 있는 장사를 하고 있어요. 우린 여전히 동전 넣으면 움직이는 기계처럼 그들이 만든 영화를 보고요. 우리가 기계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간이 되는 건 그 영화를 직접 접하는 바로 그 순간인데, 그때는 이미 늦었죠. 결국 그들이 이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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