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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꾼 이적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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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소설집 『지문사냥꾼』에 수록된 단편 「제불찰 氏 이야기」를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과 졸업생 6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역시나’ 싶었습니다.

이 칼럼에선 유독 유행가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핑계입니다만, 더는 너스레를 떨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안 좋네요.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구나 싶을 정도는 되는 듯싶습니다. 앞으로는 제 건강과 관련한 농담은 자제해야 할까 봐요. 원고가 늦어진 것, 독자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약속된 날짜를 훌쩍 넘길 때까지 원고를 완성 못 하는 동안 누구에 대해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대중문화계에서 2007년 5월은 정말이지 1월만큼이나 징글징글했습니다. 숨을 좀 돌릴 법하면 또 어딘가에서 비보가 터져 나왔어요. 권정생 선생님, 피천득 선생님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시자 마음이 허해지더군요. 물론 권정생 선생님은 원래 몸이 쇠약하셨던 걸 생각하면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주신 편이고, 피천득 선생님은 천수를 다 누리셨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만. 워낙에 살아있는 역사 같은 분들을 며칠 간격으로 떠나보내려니 그 충격이 컸던 듯합니다. 글을 읽는 데 게으른 저는 이제 한국 아동문학이나 수필을 대표하는, ‘현존하는’ 작가를 대지 못합니다. 저로서는 슬프고도 부끄러운 일이죠.

유능한 스포츠 캐스터였던 송인득 앵커가 창창한 나이에 돌아가신 것도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ZARD의 사카이 이즈미 씨가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죽었을 때는 적잖이 충격도 받았습니다. 그가 불렀다는 노래를 찾아서 들어 보니 죄다 귀에 익숙했던 노래였거든요. ‘아, 이 사람이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으로 입맛이 쓸 때쯤 결정타가 날아왔습니다. 배우 여재구 씨의 자살 소식 말입니다. 아마 이름만 말하면 낯설어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맹활약을 펼친 배우였어요.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능수능란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분이었습니다. 문제는, 저는 이분을 지난 몇 년간 TV를 통해서 만나 왔고 그 탁월한 연기에 늘 감탄했음에도 자살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기 전까지 이분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는 겁니다. 만년 좋아하면 뭐합니까. 전 그분 성함조차 알아보려고 한 적 없는데 말입니다.

몸이 골골해서 드러누워 TV를 보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은 누구나 언제고 어디서든 죽어간다지만, 그래도 유명인의 죽음에 더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는 대중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해 글을 끼적이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새삼 느꼈습니다. 그 생명은 다 제각기 개별적이어서 그 생의 무게가 타인의 시선에 비례하여 경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만, 저한테는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눈을 밝혀 사람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데,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면 글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이런 식으로 떠난 뒤에야 그 존재감을 깨닫는 일은 참 슬퍼요. 저의 지독한 게으름이 불쾌하고 저의 가난한 지식이 부끄럽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떠난 뒤에야 그들에 대해 상찬을 늘어놓는 건 지극히 가식적인 일일 테지요. 이번 칼럼에서도 전 저와 여러분이 익히 아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들어요. 제가 알던 세상이 저물기 전에, 제가 사는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두고 들여다봐야겠다 하는 반성 말입니다. 5월에 생을 접은 모든 분께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시작해봅니다.

순도 100%의 천상 이야기꾼 이적

(이하 사진 출처: 이적 공식 홈페이지)

이적의 소설집 『지문사냥꾼』에 수록된 단편 「제불찰 氏 이야기」를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과 졸업생 6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역시나’ 싶었습니다. 주인공 ‘제불찰’ 씨가 사람들의 귓속으로 들어가 내밀한 통로를 지나 거대한 자의식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의 시각적 임팩트를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이 영상화되는 게 이상할 것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질시 어린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 엮어낸 단편집이 13만 부 팔리고 바다 건너 대만에까지 출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등단이잖아요. 그런데 그도 모자라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책(『몽상만화 지문사냥꾼』)도 출간되었고, 이제는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된다고 하니, 질투 안 하고 버틸 재간이 없을 수밖에요. 만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떠들어대면서도 교내 다큐멘터리 한 편 외엔 완성한 작품이 없는 게으른 저로서는 마음 편히 질투도 못 해요.

그런데 저는 종종 『지문사냥꾼』이 그의 첫 번째 책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저 그의 다른 책이 CD와 부클릿의 형태로 출간되었을 뿐, 『지문사냥꾼』이 하드커버로 출간되었을 뿐이지 실은 이적은 이미 기성작가가 아닌가 하는 착각 말이에요. 이적은 가수일 때조차 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이야기를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기보단 자기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의 서사를 읊어주는 음유시인 같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예, 전 이 글에서 가수로서의 이적이 아니라, 이야기꾼으로서의 이적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적이 훌륭한 가수라는 걸 다 아는 마당에 저까지 똑같은 소리를 거푸 반복할 필요는 없겠지요.

데뷔 앨범에서부터 이적의 가사는 서사적인 구성이 도드라졌어요. 일단 <달팽이>부터 그렇잖아요. 화자가 지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달팽이 한 마리가 화자에게 바다로 가겠노라 속삭인다는 내용은 수많은 은유와 상징에도 시(詩)라기보다는 옛날이야기 같았거든요. 이적의 노래에는 늘 주인공이 있어요. 물론 모든 노래에 다 주인공이 있게 마련이지만, 대부분 싱어송라이터의 곡은 작가와 화자가 일치하는 반면에 이적의 곡은 작가와 화자가 명확하게 분리되거나, 작가가 화자 뒤에 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적은 자신이 미처 겪어본 적 없거나, 잘 알 수 없는 영역의 감정들을 노래하는 걸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아요. 80년대를 회고하는 노래에 목소리를 빌려주어 ‘그 시절 그땐 그렇게 갈 데가 없었는지 언제나 조조할인은 우리 차지였었죠.’ (이문세, <조조할인>) 라고 말하는 거야 자기가 작사한 게 아니니 그렇다고 쳐도,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에서 2대에 걸친 가족의 비극을 노래할 때 그는 꼭 전승되어 내려온 이야기에 사설을 섞어 전하는 소리꾼 같지 않나요?

이런 성향은 뒤로 가면 갈수록 더 짙어집니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거나(<비누인형> <지구 위에서>), 자신의 악몽으로 빚어낸 괴이한 광경을 들이밀지요.(<불면증> <죽은 새들 날다> <연쇄살인고양이 톰의 저주> <어느 날>) 혹은 홀로 남은 외톨이의 이야기를 애처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기도 하고요.(<옆집 아이> <희망의 마지막 조각>) 이적이 쓴 가사는 감정 묘사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제법 탄탄한 기승전결 구조를 지닌 완결된 형태의 이야기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나 <비누인형> 같은 노래는 사실 당장 다듬어서 단편집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니까요. 명확한 주인공이 있고, 화자는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상세하게 스토리를 전달합니다. 기승전결의 뚜렷함은 ‘노래하는 자’의 욕망만큼이나 ‘이야기하는 자’의 욕망을 강하게 시사하지요. Gigs 2집에 수록된 <늙은 딜러에게 묻다>에 이르면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연출이 그야말로 일품이라 할 경지에 오릅니다.

저는 이쯤에서 조금은 위험한 넘겨짚기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가설을 세웁니다. 싱어송라이터 이적과 이야기꾼 이적은 별개의 존재라는 가설이지요. 사람이 둘이라거나 인격이 둘이라는 것이 아니에요.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 사운드라면, 이야기꾼 이적이 추구하는 건 어떻게 하면 자기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아닌가 하는 말입니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단순히 좋은 가사를 쓰고자 하는 목적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처음엔 노래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이야기꾼 이적의 욕망은 차츰 싱어송라이터 이적과는 별개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이적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은 가사가 아니라 독립된 형태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단편 소설을 쓰고자 하는 욕망으로 자랍니다.


Gigs의 팬이었거나, 이적의 공식 홈페이지 夢想笛 ? www.leejuck.com에 방문해 보신 적이 있는 분은 아마 아실 겁니다. 『지문사냥꾼』에 실린 단편 중 「모퉁이를 돌다」「음혈인간(陰血人間)으로부터의 이메일」「고양이」는 이미 2000년에, 「피아노」와 「제불찰氏 이야기」 중 전반부는 이미 2001년에 Gigs 공식 홈페이지(gigs.co.kr)에 연재되던 <적메일>이라는 코너를 통해 공개된 바 있습니다. 「제불찰氏 이야기」의 후반부를 비롯한 다른 작품은 2005년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었고요. 자신이 직접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사로 하기엔 어려운 이야기들이 10년을 쌓여왔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만, 10년이 뭐예요. 벌써 2000년부터 단편을 발표해왔으니, 이야기꾼 이적은 어지간히 몸이 근질거렸던 듯합니다. 서사구조가 탄탄하고 이미지가 선명한 가사를 써오던 이적이라면 소설을 쓰는 일은 망설이거나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책은 2005년에야 출간되었지만, 벌써 2002년 2월 8일자 <적메일>에서 이적은 ‘올 한 해 준비할 이 책은 신변잡기 수필보다는 '환상적이고 우화적인 짧은 이야기 모음집'이 될 것입니다. 출판사와 실무적인 합의는 90% 이상 이루어졌습니다. 발매 시기는 내년 초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라고 이야기했거든요.

이적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앨범 안의 범위에서만 발휘될 때는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던 사람들은, 책이 출간되자 ‘이적의 재발견’이란 수사를 동원하며 그의 상상력을 극찬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이적’의 후광이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걸 제하고 보더라도 『지문사냥꾼』에 실린 ‘판타스틱 단편’들은 한국 문단에선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집중되었습니다. 굳이 비슷한 예를 찾아 김영하나 박민규를 거론하더라도, 현실의 세계에 뜬금없는 판타지를 섞어내는 이들에 비해 정색하고 판타지의 세계에 집중하는 이적의 글은 꼭 별세계에서 온 것처럼 낯선 것이었지요. 『지문사냥꾼』은 출간된 그해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대만에까지 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적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첫 공식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러냅니다. 정작 자신은 작사 활동을 통해 꾸준히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아마도 무엇이 앞으로 나서느냐의 차이가 크겠지요. 앨범은 아무래도 음악 자체로만 평가받지만, 『지문사냥꾼』은 오롯이 이야기만 평가받는 프로젝트였으니까요.

그런데 그의 글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이 작품의 스코어 작업에 이적이 참여하기로 하면서 양상이 조금씩 재미있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는 음률에 말을 붙이는 형식의 작업,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쓴 곡을 위해 이야기꾼 이적이 협업을 하는 순서의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꾼 이적이 지어낸 이야기를 위해서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나서는 순서가 되었지요. 전세가 역전이 된 셈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적은 뮤지컬을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숨기지 않고 널리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마흔이 되기 전에 자신이 만든 뮤지컬을 무대 위에 올리겠다고 중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제작되고 있고, 이 작품의 스코어도 이적이 작업하고 있다고 하니 그가 꿈꾸는 뮤지컬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지 살펴보는 건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닐 거예요. 이 작업은 애니메이션 스코어 작업과는 차원이 다를 거예요. 뮤지컬에서 음악은 단순한 BGM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요. 완전히 스토리를 전하는 목적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음악이어야 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그 감흥을 전달하는 음악이기도 해야죠. 모르긴 몰라도 그 뮤지컬은 이야기꾼 이적과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재능을 겨루는 흥미로운 공연이 될 겁니다.


이적이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언제부터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림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는 제법 됩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던 대학교 시절 연극 습작을 보더라도, 이적이 이쪽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이어왔던 건 분명해 보여요. 1분짜리 라디오 콩트긴 하지만,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던 시절 <적이네 집>이라는 코너에서 매일 일인다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것도 범상치 않았고요. 패닉 콘서트 실황을 보면 <벌레>를 무대 위에 올렸을 때도 연극적인 요소가 다분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적은 노랫말이 가리키는 선생 역할을 맡아서 학생으로 분한 백댄서들을 때리고 촌지 봉투를 챙기는 모습을 연기했어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곡의 끝에 마침내 분노한 학생들에게 번쩍 들려서 어디론가 끌려가면서 공연이 끝났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 이상한 비닐 옷을 입고 젤로 머리를 이상하게 세운 이적과 김진표가 표지에 그려진 - 패닉 콘서트 VCD를 가지고 계신 분은 지금 직접 그 무대를 한번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연도는 2004년입니다. 그해에 나온 <노래굿 공장의 불빛> 앨범 말이에요. 천재 뮤지션이라고 불리는 정재일이 원작자 김민기의 제안을 받아서 작업한 리메이크본은 원작의 아우라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아 ‘가장 성공적인 리메이크’ 혹은 ‘원작의 정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업데이트’라는 평을 받았지요. 그리고 이 리메이크에 이적도 목소리를 빌려주었습니다. 사실 이적이 맡은 배역은 참 작아요. 이적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은 다 합해 봐야 3-4분에 그치지요. 그렇다고 목소리를 빌려주는 것 외에 음악적인 기여를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빼곡하게 쓰인 Credit의 절반가량을 정재일이 ? 과연 천재라는 세간의 평에 걸맞게 ? 혼자 차지하는 바람에 이적이 딱히 참여할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 아마도 이적이 정재일을 내심 부러워했을 거라고 또 한 번 다소 위험한 추측을 해봅니다. 정재일이 ? 물론 원작이라는 제약이 있었지만 - 스토리의 진행과 장면의 감정을 증폭시키고자 곡을 조율하고 직조하는 과정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봤을 이적이라면, 자신의 이야기에도 음률을 입혀줘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도 일견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추측 말이죠.

아마 당분간 이야기꾼으로서의 이적의 활약은 계속 될 거 같습니다. 솔로 3집 <나무로 만든 노래>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세상에 다시 확인시켰으니,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도 고삐를 바짝 조여 부지런히 생산물을 선보이겠죠. 요 몇 년 부쩍 눈에 띄게 생산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야기꾼으로서의 행보 역시 바빠질 겁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이적은 더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말한 바 있지요. 그의 첫 번째 단편집이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로 다시 태어나는 숨 가쁜 와중에도 장편에 손을 댄다는 건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거겠죠. 한 달에 두 편 칼럼을 생산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저 같은 사람은, 그냥 이적이 많이 부럽습니다. 이번 호 요주의 인물은 음울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꾼 이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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