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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미래 - 〈어글리 베티〉

외모가 볼품없어서 사람들에게 무시받지만, 아름답고 위대한 영혼의 힘으로, 끝내는 사랑도 얻고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이야기는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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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볼품없어서 사람들에게 무시받지만, 아름답고 위대한 영혼의 힘으로, 끝내는 사랑도 얻고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이야기는 아주 많습니다. 우선, 약간의 흠으로 여겨지던 주근깨를 매력으로 승화한 주근깨 삼총사가 있습니다. 주근깨에다 고집스러움의 상징처럼 된 빨간 머리의 앤, 주근깨투성이라고 어지간히도 놀림을 받는 캔디 그리고 해결사 말괄량이 삐삐가 그들입니다. 르네 젤위거가 열심히 살을 찌우고 연기한 브리짓 존스와 앤디 색스(〈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어떤가요. 해가 지면 ‘어글리’해지지만,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눈부신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피오나 공주도 있습니다.

옛날에 〈신데렐라〉는 ‘재투성이 아가씨’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곤 했지요. 이들은 모두 작품상에서 외모는 별 볼 일 없다고 묘사되지만, 건강한 영혼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부 무척이나 사랑스럽습니다. 물론 성격 좋고 영리해서 사랑스럽다고 표현은 됩니다.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라고 설정상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꼭 아름다운 내면이 외모의 단점을 오히려 매력으로 부각해 주었다고 한다손 쳐도, 어딘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꼭 있습니다. 다만 아직 꾸미지를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직 변신하기 전 그녀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을 뿐입니다.

퀸스 소녀의 맨해튼 평정기 〈어글리 베티〉

통통한 몸매에 후줄근한 속옷 때문에 망신을 당하고 술과 담배를 끼고 살아도 브리짓 존스는 굳이 말하자면 평균 이하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패션은 고통, 즉 삶 자체라고 외치면서 치장에 목숨을 거는 뉴욕 패션계의 골수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소도시 출신의 앤디 색스도 그다지 못 봐줄 만한 차림새는 아닙니다. 주근깨 삼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전부 특유의 긍정적인 정신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습니다. 옛날이면 몰라도,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있다고 니콜 키드먼의 미모를 깎아내리는 사람은 이제 없겠지요. 오히려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표현하려고 매부리코 분장까지 불사하지 않았다면, 니콜 키드먼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과연 탈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완전한 단절이었지요. 60억이 사는 지구에 아무리 별별 사람이 많아도, 일부러 미워지고 싶은 사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코드. 이들은 이윽고 눈 밝은 사람에게 발견됩니다. 자기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통해 비로소 환골탈태하게 되는 셈이지요. 물론 매력 철철 넘치는 캐릭터의 이 인물들이 변신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에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핵심 요소가 그녀들의 변신입니다. 그리고 그 눈 밝은 사람은 혜안을 발휘한 대가로 복을 받지요. 미녀가 거칠고 추한 야수의 껍데기 속에 숨은 마음을 알아본 대가로 눈부신 왕자님을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아서왕과 거웨인의 이야기에서도, 거웨인은 우정을 위해 추한 마녀와의 결혼을 결심하지만, 첫날밤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나타난 마녀를 맞이합니다. 밤의 피오나를 보고 대경실색한 슈렉이 갈등을 겪다가 있는 그대로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거나,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처럼 한 단계 ‘진화’한 못 생긴 여자 이야기도 있습니다.

ABC에서 2006년 가을에 새로 시작한 〈어글리 베티〉도 손가락질 받는(문자 그대로 패션계의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놓고 손가락질합니다) 외모의 여자가 일구어가는 일과 사랑의 성공기 코드를 많이 따라갑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베티는 제목 그대로 예쁘다고 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눈썹에, 절대로 벗지 않는 굵은 뿔테 안경, 청소년기를 놓치고 뒤늦게 낀 치아교정기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프라임 타임대의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줄 만했지요.

또 타고난 외양이야 그렇다 치고, 패션 감각은 점입가경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1980년대 패션과 헤어스타일의 악덕만을 모아놓았을까 싶을 정도로 촌티의 극을 달립니다. 잡지, 그것도 패션의 심장부 뉴욕 맨해튼 중에서도 최고급의 세련미를 추구하는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개전의 정(?)을 보일 생각도 없는지,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변화도 없습니다. 그 꿋꿋함이 거의 뻔뻔하기까지 하지요. 앤디 색스가 뉴욕 패션계의 속물들을 상대하고자 회사 의상실에 들어가 대변신을 꾀하는 동안에, 베티 수아레즈는 회사 의상실에 의상실 책임자 크리스티나와 수다를 떨 목적으로만 갑니다. 크리스티나는 잡지사 내에서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지 않고 베티를 바라봐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거든요.

베티는 출판계에 들어가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 손으로 벌어 명문 취급은 못 받지만 그래도 번듯한 대학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책이나 잡지를 기획하고 쓰는 일에 외모가 먹여주는 건 하나도 없으련만, 가는 회사마다 번번이 퇴짜를 당합니다. 출판계의 재벌 미드 사에 가서도 역시나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그때 계단 저 위에서 무참히 내쳐지는 베티를 바라보는 브래드포드 미드 회장.

그는 장차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심산으로 족벌 경영을 꾀하지만, 하나 남은 아들이라고는 순 주색잡기만 일삼으며 부글부글 속을 끓여놓습니다. 패션 잡지 《모드》의 편집장으로 앉혀놓았지만, 비서와 놀아나기나 하고 달라지는 게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브래드포드는 못생긴 베티를 고용하는 수를 내기로 합니다. O. J. 심슨이 자기가 흑인이기 때문에 아내 살해혐의를 씌운다고 차별을 역이용했던 것처럼은 아니지만, 어쨌든 못생긴 외모 덕분에, 능력에 세련된 외양까지 갖춘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모드》에, 그것도 편집장의 수석비서로 들어가는 행운을 거머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녀, 베티 수아레즈

새로 들어온 베티를 보고 《모드》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브래드포드 미드의 아들인 대니얼 미드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잡지 쪽 일이라고는 ㅈ자도 해본 적이 없는 대니얼은, 능력이 있어도 세습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눈에 불을 켠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소굴에서 베티가 든든한 지원병이 되어줄 것임을 곧 깨닫습니다. 이때부터 못생긴 명랑소녀 베티의 유쾌한 성공기가 펼쳐집니다. 일에서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대해서도 대니얼의 해결사로 맹활약하면서 베티의 존재감은 커지지요.

〈어글리 베티〉는 최근 미국 드라마에서 유행하고, 특히 ABC가 강점을 보이는 드라미디(드라마+코미디)의 새로운 강자입니다. 원래 NBC가 2000년대 초반에 30분짜리 코미디 시리즈로 구상했다가 얼크러졌던 것을, 히스패닉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드라마를 제작하겠다고 야심 차게 프로덕션을 차린 샐마 헤이엑과 ABC가 손잡고 한 시간짜리로 탄생시킨 드라마입니다. 뉴욕의 최고 속물들을 그리는 만큼 풍자도 들어가고, 익살스러운 촌극에 미스터리까지 가미됩니다.

〈보스턴 리갈〉과 함께 ABC의 대표적인 드라미디인 〈위기의 주부들〉처럼 검은 음모와 범죄가 도사리는 듯하면서도, 훨씬 밝고 유쾌한 드라마가 〈어글리 베티〉입니다. 강력한 편집장 후보였지만, 대니얼이 낙하산 인사로 들어오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윌레미나와 그녀의 비서 마크 콤비는 대니얼을 몰아내려고 갖은 공작과 음모를 꾸미지만, 어딘가 엉성합니다. 브래드포드의 아내이자 대니얼의 엄마인 클레어 미드는 단란하고 결속력 있는 가정을 꿈꾸지만 불행한 부부생활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마크는 베티 때문에 대니얼의 비서가 되지 못한 아만다와 또 다른 콤비를 이루며 베티에게 갖은 심술을 부리지만, 베티를 무너뜨리는 데는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윌레미나는 들어가는 나이와 늘어가는 주름살에 보톡스와 성형수술로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틴에이저의 딸이 있음을 숨기려고까지 하지만, 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무너져버리고 마는 엄마입니다. 요컨대 이 드라마 역시 악역이 없는 드라마입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그들의 음모는 어설프기만 합니다. 그 어설픔이 웃음을 주기도 하고,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는 분위기도 만들어내는 셈이지요.

남에게 허점을 내보이면 커리어고 인생이고 끝장이라고 절박하게 꾸미고 감추는 그들을 그렇게 어설프게 만드는 책임은 베티에게 있습니다. 지킬 게 많은 그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켜버리고 변화하며 감정의 무장해제 상태가 되는 것은 베티를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스물두 살의 베티를 그런 인간으로 자라게 한 것은 베티의 가족입니다. 멕시코 이민자 출신에 뉴욕 퀸스에 터를 잡고 살아온 아버지 이그나시오 수아레즈는 베티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아낌없이 사랑을 퍼붓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날씬하지만 오래 곤 사골처럼 진국인 동생이 결국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바람에 콤플렉스가 약간 있는 언니 힐다는 그래도 동생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힐다가 싱글 맘으로 키우는 아들 저스틴은 어리지만 패션에 관해서는 줄줄이 꿰면서, 이모 베티의 열렬한 지지자 노릇을 하지요. 외형상으로는 결손가정이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그런 가정의 모습은 맨해튼 소호의 로프트에 사는 인사들의 발걸음을 자꾸 퀸스로 향하게 합니다.

베티의 못 말리는 상사 대니얼 미드

제작진과 ABC는 밤의 피오나 공주 같은 캐릭터로 사랑받을 수 있는 여지를 극도로 제한한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위험하고도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레이 아나토미〉와 함께 이 드라마를 목요일 밤 프라임타임대에 배치했던 ‘만용’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어글리 베티〉는 컬럼비아에서 제작되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샐마 헤이엑이 제작자와 게스트 스타로 적극 나서며(셀마 헤이엑은 베티의 아버지 이그나시오가 열렬히 시청하는, 드라마 속의 가짜 드라마인 스패니시 소프 오페라에 방종한 수녀로 깜짝 등장해 웃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케이블 채널도 아닌 공중파 ABC가 나선 이 드라마는 한 편의 착한 드라마, 동화로 완성되었습니다.

못나고 조그만 여자가 피할 수 없는 매력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코드가 비슷한 소재의 여느 드라마, 영화와 같음은 맞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외모 면에 대한 리얼리티만큼은 만화나 어느 드라마나 영화도 성취하지 못한 진화를 이루어냈습니다. 현실에서는 아닌데 드라마적으로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리얼리티가 아니라, 현실상의 리얼리티를 성공적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중요합니다. 설정상으로만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실제로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여자에게 사랑스러움을 안겨주고 분수처럼 매력이 흘러넘치게 하여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험로를 일부러 택한 만큼 결과는 현재까지 달콤합니다. 2007년 골든 글로브에서 첫 시즌으로 코미디 부문 작품상에 여우주연상 등을 탔고, 피바디 어워드 작품상을 탄 것이지요. 평생 받아온 무시와 조롱으로 받은 상처를 제 인생의 버팀목으로 삼지 않는 그 대책 없는 낙천성, 콩쥐 같은 마음씨는 남들의 미움을 받지 않게 해줄 수는 있지만, 제 인생의 행복을 위한 충분조건은 되지 못함을 아는 영리하고도 능청스러운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현재 못생긴 여자 명랑 성공신화의 최고 진화단계에 〈어글리 베티〉를 올려놓은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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