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젋은 거장, 바이올린으로 마음을 훔치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나는 감동하고 감사했다. 기량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또 교육해내는 저 독일의 교육정책과 그들의 자세와 실천이 너무나 고마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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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13일 저녁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김수연 초청 바이올린 독주회’가 열렸다.

음향이 아주 좋은 아름다운 성당을 가득 메운 청중은 열네 살밖에 안 된 김수연 양의 모국에서의 첫 연주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길사 창사 25주년을 기념하여 우리가 마련한 음악회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그를 생각하면 나는 감사해서 늘 목이 멘다.

빼어난 음악적 기량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딛고 일어나 참으로 아름답고 심성 곧게 자란 모습이 우리를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음악 하는 의연한 자세와 마음가짐도 그러하거니와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러하다.

그날 연주 이후, 날로 발전하고 성숙해가는 수연이를 바라보는 것이 나는 참으로 즐겁다. 이미 ‘젊은 거장’으로 칭송받는 수연이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우리들은 수연이 이야기를 꺼내면 서로가 감사하고 행복해진다.

‘젊은 거장’ 김수연을 성원하는 친구들

어려운 형편을 이기고 바이올린을 익힌 김수연. 그녀는 이제 젊은 거장이 되어 있다.
1998년 10월에 나는 독일 보쿰대학과 뮌스터대학을 각각 방문하고 그곳에서 공부하는 한국유학생들에게 작은 강연을 한 바 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던 길이었다. 아마도 그곳의 많은 유학생들이 한길사의 독자였을 것이다.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문적인 지식사회의 동향에 일정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인문학 출판을 주로 해오는 한 출판인의 ‘생각’을 들어보려 했을 것이다. 유학생들과의 대화는 나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김수연 양은 뮌스터에서 1987년 11월 유학생 김동욱 씨와 지경순 씨의 큰딸로 태어났다. 뒷날 들은 얘기지만, 나의 강연회에 수연이의 아버지도 와 있었고 이런저런 질문까지 했다고 한다. 수연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뮌스터대학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다. 물론 그들도 한길사의 독자였을 것이다.

독일 도서전에서 돌아온 나의 일상은 다시 ‘책’과 씨름하는 나날로 바빠지게 된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출판인은 오직 책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났고, 우리는 창사 25주년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독일에 가 있던 강옥순(현 도서출판 열린터 대표) 주간이 나에게 수연이 이야기를 했다.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수연이를 한길사가 초청해서 ‘귀국 독주회’를 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출판사가 느닷없이 음악회를 왜 기획하느냐에 대한 의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음악회를 열자면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래 책! ‘책’이었다. 나는 독일 강연회에서 책과 출판문화에 대해 유학생들과 토론했고, 신학을 전공하는 수연이의 아버지 김동욱 씨는 나에게 ‘책’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수연 양이 책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책과 음악, 모두 인간정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한길사가 음악회를 기획할 수 있다! 늘 책을 들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을 초청해서 창사 25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하자! 그렇게 하여 한길사는 다른 계획을 접어두고 ‘김수연 초청 바이올린 독주회’를 준비하여 2001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그 계절에 열게 되었다.

수연이의 음악회를 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유학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학업은 물론 생활 자체가 어려워진 것이다.

가난한 유학생의 큰딸 수연이의 음악공부도 힘들고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연이의 음악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이런 수연이를 뮌스터의 한국 유학생들은 물론 뮌스터 시장까지 나서서 성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1993년 뮌스터 시립음악학교에서 마야스 선생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김수연은 94년에 독일청소년음악콩쿠르 뮌스터지역대회에서 만점을 받아 1등을 하는 등 어떤 콩쿠르라도 나가기만 하면 1등을 했다. 만 아홉 살의 나이로 뮌스터음대에 진학했다.

이런 수연이를 고국의 무대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판단이었다. 한국에서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면 정말 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은 수연이를 저렇게 키워내고 있지 않은가. 남의 나라 유학생의 자식을 정성을 다해 당당한 음악가로 교육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과 유럽의 장점을 갖고 있는 수연의 음악

2001년 한길사 창립 2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김수연 연주회 팸플릿
나는 감동하고 감사했다. 기량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또 교육해내는 저 독일의 교육정책과 그들의 자세와 실천이 너무나 고마울 뿐이었다. 수연이의 가능성을 일찍이 발견하고 키워낸 마야스 선생도 참으로 위대한 교육자다.

나는 수연이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받아서 음악전문가들과 의논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원장 이건용 교수(나중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역임)에게 수연이의 연주녹음을 건네주었다. 중앙대 노동은 교수와 『민족음악론』(1991)을 공저해 우리 출판사에서 펴낸 바 있는 이 교수는 수연이의 음악을 높이 평가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연주는 그 첫소리부터 다르다. 나는 김수연을 만난 적이 없다. 그의 녹음을 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생상의 ‘론도 카프리치오’였고 나는 첫 두 소리에 ‘아’ 하면서 그다음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첫소리가 달랐다. 그 녹음에서 김수연은 그 범상치 않음으로 내내 나의 주의를 다른 데 돌리지 못하게 하였다.”

뮌스터 음대에서 수연이를 지도하는 헬게 슬로트 교수도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극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었다.

“수연이는 특출한 재능을 타고난 악기 연주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특별한 음악인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의 많은 훌륭한 장점을 물려받은 데다, 아울러 유럽 음악에 대해서도 독창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연결시킵니다. 수연이가 연주하는 음악은 유럽의 음악이면서도 마치 고향인 한국의 음악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들립니다.”

나는 초대하는 글을 썼다.

“아직 어리지만 빼어난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는 김수연 양을 초청하여 여러분께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좋은 책을 기획하여 세상에 내놓아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출판이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모두 인간정신을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수연 양은 그날 한방원 교수(현 성신여대)의 반주로 그리그의 ‘소나타 3번 다단조 작품45’와 윤이상의 ‘작은 새’(리나의 정원 중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8번 사장조 작품30-3’ 등을 연주했다.

훌륭한 연주였고 대단한 성공이었다. 준비기간도 짧았다. 음악연주 전용홀도 아니었다. 전문으로 음악회를 기획하는 집단에 의해 준비된 음악회도 아니었다. 그러나 수연이는 듣는 이들을 감동시키는 빼어난 연주를 해내고 있었다.

특별히 디자이너 앙드레김 선생이 수연이를 위해 맞춰준 연주복이 수연이와 그의 음악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음악회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앙드레김 선생은 아낌없는 사랑으로 연주복을 디자인해 줌으로써 그날 성공회 성당의 음향과 더불어 수연이의 연주를 더욱 빛나게 했다.

성공회 주교좌성당을 제공해준 홍영선 신부의 배려가 없었다면 수연이의 음악회는 어쩌면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80년대에 최영준 고려대 역사지리학과 교수의 강의와 안내를 받으면서 강화도를 역사기행한 바 있는데 홍 신부는 그때 그 아름다운 강화도 한옥성당의 주임신부로 봉직하고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홍 신부는 기쁜 마음으로 수연이의 음악회를 도와주었다.

‘한국의 딸’ 수연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1년 12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김수연 양이 연주하고 있는 모습.
김수연의 귀국 첫 연주회가 끝났지만 나는 수연이를 뒷받침하는 일련의 일을 시도했다. 이렇게 역량 있는 ‘한국의 딸’을 국내에서부터 성원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음악을 좋아하고 성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 있다면 수연이도 얼마나 든든할까.

나는 유동종 KBS 쇇로듀서와 의논했다. 수연이도 그렇지만 수연이를 키워내는 독일의 공교육을 조명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역시 유동종 PD였다. 그는 독일 현지로 취재·촬영을 가는 등 심혈을 기울여 수연이의 음악적 성취를 6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일요스페셜에 내보냈다.

나는 부산 ‘소년의 집’을 유 PD에게 소개했다. 나의 고향 친구 김재환 군이 교사로 근무하는 이 학교를 수연이가 방문하게 해서, 이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연주하게 한 것이다. 나는 어려운 처지를 음악으로 이겨내는 아름다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김 군으로부터 전해 듣고 감동한 적이 있다.

나는 낙동강 하구의 섬 을숙도를 수연이더러 걸어보게 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수연이가 우리 국토를 걸으면서 느끼면 좋겠다 싶었다. 유 PD는 이런 내용도 프로그램에 담았다. 그 학교의 음악도들과 수연이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소년의 집’ 친구들은 그 후 수연이의 한국연주회 땐, 부산에서 서울까지 달려오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지금도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한편, 나는 출판계의 동료들과 의논해서 수연이를 성원하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홍지웅 열린책들 사장과 강맑실 사계절 출판사 사장, 심만수 살림출판사 사장, 그리고 윤영석 춘원당 한의원원장, 정세학 장학건설 사장, 회계사 고달수 선생, 하경효 고려대 법대 교수 등이 주요 멤버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수연이를 후원하는 약간의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수연이의 귀국을 전후해서 독일과 한국에서 여러 사람들이 수연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서을오 교수(현 이화여대 법대)는 뮌스터 대학에서 학위논문을 쓰는 와중에 수연이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대전의 한국전력연구원에 근무하는 문호림 씨(현재 일본 유학중)도 홈페이지 제작을 도왔다. 물론 이밖에도 많은 분이 수연이를 성원하는 일에 나섰음은 물론이다.

수연이는 2001년의 귀국연주회를 계기로 널리 알려져 그 후 잇단 연주회가 국내에서도 열렸다. 2002년 1월에는 금호아트홀에서 독주회가 열렸으며, 10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기획한 해외동포예술제에 참가했다. 2004년 1월에 다시 금호아트홀에서 음악회가 열렸고, 2005년 11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협연했다.

특히, 같은 해 10월에 예술마을 헤이리가 제정한 제1회 헤이리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기념초청연주회를 갖게 된다. 수연이에게는 최만린 선생(현 헤이리 이사장)이 조각한 기념패가 수여되었다. 그리고 2006년 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명훈 선생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했다.

김수연의 성장과 활약상은 실로 눈부시다. 2004년에는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제에서 1등을, 2006년에는 하노버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역시 우승을 차지한다. 모두 최고 명성의 대회들이다. 저명한 음악가들이 주관하는 음악제에 초청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와 잇따라 협연을 하고 있다. 이제 그는 당당한 젊은 거장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김수연은 2007년 5월 중순 브라운슈바이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첼리스트 탄냐 테츨라프와 브람스의 더블 콘체르트를 연주한다. 5월 하순에는 도이치 캄마 필하모닉과 협연 예정이고, 6월 중순에는 김민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서울 바로크 합주단과 함께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 공연을 한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김수연을 향한 러브 콜이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2006년 김수연이 발표한 하르트만 음반은 영국 BBC방송이 그해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한 바 있다.

독일은행에서 바이올린 제공하다

2005년 제1회 헤이리예술상 수상 기념초청 연주회 포스터
금호아트홀에서 수연이가 연주하는 것을 본 신수정 서울대 음대 학장은 말했다. “수연이 바이올린을 바꿔줘야겠어요.”

그때 수연이는 “전 괜찮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수연이가 쓰고 있는 바이올린도 그의 선생님이 마련해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 도움을 줄까 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독일 음악장학재단이 기꺼이 수연이에게, 이탈리아에서 1750년에 제작된 바이올린 카밀리우스 카밀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베풀었다. 수연이는 이제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감격했다. 독일 사회는 저렇게 젊은 음악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나는 수연이가 한국에서 연주할 때마다 늘 반주를 맡아주는 한방원 교수?게 “왜 수연이의 음악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 말에 한 교수는 “자기 자신의 노래가 뚜렷하게 있기 때문이지요”라 답했다. 다른 음악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수연이 음악의 특별한 ‘개성’을 말한다.

독일의 언론은 1995년부터 일찍이 수연이의 음악에 대해 그야말로 격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나는 음악평론가 안드레아스 바이트캄프가 1997년 2월 22일 <뮌스테세 차이퉁>에 쓴 글을 소개하고 싶다.

“이 어린 소녀는 바이올린에 불꽃을 피워서 듣는 이로 하여금 현기증이 나게 한다. 독일의 최연소 대학생으로서 뮌스터 음대에 다니고 있다. 안네소피 무티, 이자크 펄만, 정경화를 이을 만한 이 뛰어난 영재의 입학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수연이는 독서를 엄청나게 좋아한단다. 마야스 선생은 아마도 이 때문에 아홉 살짜리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뛰어난 작품해석 능력을 갖게 되었을 거라고 한다. 그처럼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수연이는 소박하고 겸손하다.”

나는 헤이리예술상 심사위원회에서의 한 풍경을 떠올린다. 이른 봄날 심사위원회가 마당에 플라타너스가 서 있는 북카페 ‘반디’에서 열렸는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양성원 교수(연세대·첼리스트)는 수연이의 연주 CD만 계속 듣고 있었다. 나는 “수연이의 음악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양 선생은 말했다.

“수연이 음악밖에 안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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