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텔레비전물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전 테이프의 수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프로그램이 과연 지금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먹힐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죠. 아직도 60년대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의 DVD를 보면서 남은 시간을 때우는 저로서는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 텔레비전물에도 제가 같은 반응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정확한 계산은 불가능할 겁니다. 작품과 시기에 따라 다를 거고요. 전 70년대 <웃으면 복이 와요>가 당시만큼 저에게 재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최근에 봤으니까요. 얼마 전에 몇몇 편이 DVD로 나온 <수사반장>은 그 투박한 느낌과 저작권을 팍팍 위반한 음악이 오히려 거친 사실주의와 연결되는 걸 체험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리즈 전집이 나온다면 제가 오리지널 <미션 임파서블>을 보듯 보게 될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전설의 고향>은 어떨까요? 한혜숙이 나오는 <구미호> 에피소드는 제가 지금까지 본 호러물 중 가장 무서웠던 작품입니다. 물론 전 어렸을 때
<사이코>를 보면서도 극도의 공포에 시달렸으니 지금 보면 <구미호>를 보면서 무서워하지는 않겠죠. 그래도 한 번 보고는 싶습니다. 아직도 테이프가 남아있는 작품이 있다면 마땅히 여름 시즌에 몇 편 골라 방송국 페이지에 올려놓는 게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기억이 보존되고 전통이 이어지는 겁니다. 그래야 관객들이 <전설의 고향>의 제목을 단 사다코 클론 영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지요. 사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얼마 전에
<전설의 고향> 시사회를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보면서 참 그랬어요. 어떻게 이게 장르 팬의 영화일 수가 있지?
<토요 미스터리 극장>은 어떨까요? 그 역시 엄청나게 자극적인 공포물이었고 인기도 많았습니다. 유령이 나오고 미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지금은 이런 내용의 시리즈가 모두 케이블로 후퇴했지만요. 아쉬운 일입니다. 내용이 무엇이건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원한다고 생각해요. 디스커버리 채널과 같은 정통 다큐멘터리 방송에서도 <유령 사냥>과 같은 호러물을 방영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화’를 주장하는 이런 작품들이 호러 영화 장르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공포가 가장 효과적일 때는 그 감정이 현실과 연결되어 있을 때입니다. <토요 미스터리 극장>이 무서웠던 것도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이런 프로그램들이 텔레비전 위에 계속 떠돌고 있다면 우린 관객을 적절하게 자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척 한국적으로 보일 수 있는 호러 영화 재료를 얻게 됩니다. 지금처럼 외국 영화, 특히 일본 영화의 영향력 아래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호오도와는 상관없이 우린 이들을 기억할 임무가 있습니다. 텔레비전물은 우리의 과거를 반영하고 책이나 영화가 갈 수 없는 더 사사롭고 세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찮은 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요한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으니까요. 만약 여러분이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설득력 있는 작품을 쓰길 원한다면 진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는 건 영화가 아니라 텔레비전입니다.
이들과 시청자를 가로막는 건, 이들이 흑백 영상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케이블에서 재방송하는 <사랑이 뭐길래> 재방송을 보고 거의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인데, 흑백이라는 건 단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몇 년이 흘렀다고 벌써 낡은 홈비디오처럼 보이는 <사랑이 뭐길래>와는 달리 <수사반장>의 흑백 화면은 거의 예술적 효과처럼 보이니까요. 지금 <전설의 고향> 시리즈를 흑백으로 본다면 오히려 더 멋있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소스가 제대로 보관되고 있느냐는 것이지만요. 보관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