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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자' 박현채, FTA 시대를 어떻게 볼까 - 박현채 ②

북쪽의 휴전선부터 저 마라도까지 국토와 역사의 현장을 탐험하고 다니는 우리의 역사기행에 박 선생은 늘 참여하여 때로는 강의하고 때로는 토론에 참여하는 늘 청년 같은, 참으로 대단한 낭만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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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한길사는 이른바 단행본이라고 하는 형식과 더불어 무크지 <한국사회연구>, 계간 <오늘의 책>, 월간 <사회와 사상> 등의 기획을 통해 한 시대의 진보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지식인·실천가들의 논의와 이론을 담아낸다.

1980년대란 한국현대사에서 변혁적인 사회운동이 전개되는 시대였고, 이 변혁적인 사회운동을 진보적 민족주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이론화했다고 할 것이다. 박현채 선생은 이 같은 한길사의 진보적 민족주의 내지 진보적 민족운동을 위한 담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8 광주항쟁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데, 많은 언론매체가 폐쇄되거나 통폐합된다.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자행된다.

그러나 이미 이 시대의 의식과 사상은 강력한 통치와 단속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해가고 있었다. 사람은 잡아 가두어도 의식과 정신, 이론과 사상은 더 제어할 수 없는 문명사적 단계에 이미 우리 국가사회가 진입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치열한 문제의식, 왕성한 글쓰기

조선대학교 교수가 되기 전까지 자신의 직업을 ‘강사업’이라고 적기도 했던 박현채 선생. 강의할 때마다 그가 보여주는 치열함과 열정은 늘 강의실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1985년 제1회 한길역사강좌 때의 모습.

80년대 전 기간을 통해 사실 ‘책’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동시대인을 개안하는 사상과 이론이자 집단적 행동과 조직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문명이었다. 마이크로미디어인 출판은 기성의 신문·방송 등 매크로미디어가 해내지 못하는 기능을 역동적으로 해냈다.

출판인·편집자를 아무리 잡아넣고 판금을 해도 책의 힘, 책의 문명을 더는 막을 수 없었다. 이미 복제·복사기술이 일상화되는 새로운 문명적 상황에서 권력에 의한 정신과 사상과 이론의 판금·구금은 오히려 그것들의 힘과 정신과 사상을 키워주었다.

출판인·편집자들은 정부가 허가해주지 않는 잡지를 펴낼 수 없게 되자 책과 잡지를 통합한 ‘무크’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기관지 격인 <실천문학>을 효시로 다양한 장르에서 무크지가 간행되었는데, 한길사는 1983년에 무크지 <한국사연구>를 기획하여 한국근현대사·한국사회·민족문제 등을 집중 규명한다. 이어 <제3세계연구>를 기획한다. 1년에 한 번씩 펴내는 <한국사회연구>는 전 5권까지 간행되는데 박현채 선생은 제1권에서 「해방전후 민족경제의 성격」을, 1985년 제3권에서는 「분단 40년의 한국자본주의와 농업」을 발표한다.

민음사 박맹호, 지식산업사 김경희, 창작과비평사 김윤수,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열화당 이기웅, 현암사 조근태, 까치 박종만, 한길사 김언호 등 출판인이 주축이 되어 양서진흥을 도모하는 ‘오늘의 책’ 선정운동을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연대하여 펼쳤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겨우 허가를 얻어낸 서평 계간지 <오늘의 책>을 한길사가 맡아서 간행하게 되는데, 박현채 선생은 이 잡지에도 늘 주목할 만한 논의를 발표한다. 1985년 겨울호의 「공동체운동과 공동체실현의 가능성」과 1986년 겨울호의 「한반도에 있어서 국가권력의 제양상: 역사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가권력의 전개」 등이 그것이다. 때로는 이들 무크지와 잡지에 토론자로 참여하여 당대의 현실문제를 분석한다.

한길사는 1979년 10월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1권을 출간한 이후 1989년까지 10년에 걸쳐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전 6권으로 기획한다. 제2권은 80년대 초반부터 기획되었지만, 문공부 당국이 우리의 기획을 어떻게 알고 계속 ‘보류’를 요구하는 바람에 1985년 10월에야 출간되었다.

제2권부터는 제1권의 독자들이 성장하여 대거 필자로 참여하게 되는데, 박 선생은 제2권에서 「남북분단의 민족경제사적 위치」를 발표하고 제3권(87년 12월)에 「해방후 정치사회 운동을 보는 시각」을 발표한다.

한길역사강좌에서 ‘민족경제론’ 특강을 하다

한길사는 8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강좌의 기획을 통해 저자와 독자를 한마당에 모아 지적 연찬을 펼치는 또 하나의 열린학교를 시도한다. 1984년 여름에는 해인사 홍제암에서 2박3일로 저자·독자·출판인이 함께하는 '연찬회'를 가진 바 있고 85년 여름부터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한길사회과학강좌를 시작했다.

마포경찰서 뒤쪽에 있는 한 인쇄소 건물을 빌려 쓰던 한길사는 1982년 고대 앞 안암동의 가정집으로 사무실을 옮기는데 나는 이 가정집의 부엌과 큰방을 터서 하나의 강의실을 만들었다.

출판사는 저자와 독자를 만나게 하고 대화하게 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학생과 교수가 퇴학당하고 해직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열린학교를 우리 출판사가 해볼 수 있지 않나 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우리가 펴내는 많은 책의 저자·필자고 이들이 직접 강의를 한다면 그만큼 더 의미 있다고 보았다.

나는 아울러 교실과 책상에서만의 강의와 강좌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역사의 현장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우리 민족사를 온몸으로 체험해보자는 ‘역사기행’을 ‘역사강좌’와 함께 진행하는 새로운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박태순의 『국토와 민중』을 펴낼 무렵이었고, 저자 박태순 선생과 나는 글로 국토기행을 할 것이 아니라 몸과 발로 국토운동을 해보자고 했다.

박현채 선생은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에 늘 동참하는 강사였다. 한길역사강좌는 한 주제에 2~3개월에 걸쳐 보통 10여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역사강좌는 쉼 없이 기획되어 1990년 우리 회사가 강남 신사동으로 이사 올 때까지 안암동 그곳의 작은 강의실에서 계속되었다.

물론 강남에 와서도 이런저런 강좌는 계속되었다. 이들 강의는 녹취되고 정리되어 책으로 계속 간행되었는데, 박 선생은 『한국민족운동의 이념과 역사』『한국의 사회경제사』『일제식민지시대의 민족운동』 등의 강좌에 참여했다.

박현채 선생 말고도 한길역사강좌와 한길역사기행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송건호, 이우성, 리영희, 강만길, 이효재, 임헌영, 고은, 박태순, 박석무, 김용운, 김진균, 이이화, 차기벽, 송기숙, 김태영, 김남식, 이호철, 이영훈, 유인호, 이대근, 조동걸, 윤병석, 임종국, 이만열, 진덕규, 전철환, 신용하, 김윤식, 송기숙, 양호민, 김동욱, 신영훈, 윤서석, 채희완 등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학자들이었다.

새 강좌가 개설되고, 또 강사들과 역사기행을 떠나는 날은 시대의 우울도 청명해지는 것 같았다.

늘 청년 같던 ‘낭만주의자’ 박현채

1987년 5월 지리산 역사기행에 참가해 ‘지리산과 민족운동사’를 주제로 강의를 한 박현채 교수가 노고단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1986년 5월 ‘지리산과 민족사’를 주제로 삼은 2박3일의 제7회 한길역사기행에서 박현채 선생은 실증적인 자료를 토대로 ‘지리산과 민족운동사’를 강의했다.

“산으로서의 지리산은 우리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속에 우리들 그 자체로 있다. 지리산은 우리 역사에서 민족 그 자체가 된다.”

북쪽의 휴전선부터 저 마라도까지 국토와 역사의 현장을 탐험하고 다니는 우리의 역사기행에 박 선생은 늘 참여하여 때로는 강의하고 때로는 토론에 참여하는 늘 청년 같은, 참으로 대단한 낭만주의자였다.

역사강좌와 역사기행의 성과에 힘을 얻은 우리는 한길사회과학강좌를 개설했다. 역사강좌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열렸고, 사회과학강좌는 매주 화요일에 열렸다. 80년대 후반 서울대의 정치경제학 설강의 한 계기가 되기도 한 김수행 교수의 ‘정치경제학 특강’도 한길사회과학강좌의 일환으로 안암동의 그 작은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는데, 박현채 선생이 드디어 ‘민족경제론 특강’을 이 강좌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1986년부터 시작된 선생의 강의는 그 후 정리되어 1986년 7월 <한국사회연구> 제4집과 1987년 8월의 제5집에 「민족경제의 이론구조」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민족경제론』과 그 이후 일련의 강의와 논문은 80년대 진보적 사회과학에 논쟁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런 강좌와 기행을 실험하면서 한길사는 전 27권으로 구성되는 『한국사』를 1986년에 착수해 8년 만인 1994년에 일괄 출간한다. 민간에서 만든 ‘한국사’로는 가장 큰 기획이었다. 나는 이 ‘한국사’를 ‘민찬한국사’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박현채 선생은 ‘한국사’의 편집위원 가운데 한 분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오면서 우리 사회는 ‘민주화운동’으로 더욱 격동하고, 한길사는 1988년 9월 <사회와 사상>을 창간하면서 현실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규명하고 논의하는 장을 마련한다. 박현채 선생은 저간의 사회운동의 성과와 성격 등에 대한 성찰을 늦추지 않았다. 「80년대의 민족운동사적 의미」「변혁시대의 지식인과 역사의식」「남북 경제교류의 이념과 방향」 등이 그런 성찰이다.

1986년 8월 한길사는 저 풍광 좋은 안동의 병산서원에서 ‘학문과 사상의 민족화 문제’를 내걸고 지식인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길사 창립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오늘의 사상신서’가 101권을 돌파하는 것을 계기로 삼아 열린 이 지식인 대토론회는 전국에서 100여 명이 모이는 ‘전무후무’한 일대사건이었다. 강만길, 김진균, 유초하 교수가 발제했는데, 박현채 선생은 우렁찬 논리로 토론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선생님, 글 좀 쉽게 쓰면 안 되나요?”

박현채 선생에게 나는 물었다. 글 좀 쉽게 쓸 수 없느냐고. 선생은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에 글이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조선대학교 교수가 되기 전까지 자신의 직업을 ‘강사업’이라고 적기도 했던 선생. 나는 선생의 강의를 좋아했다. 그 치열함과 열정으로 안암동 그 작은 강의실은 후끈 달아오르곤 했다.

역사의 현장을 가는 한길역사기행의 참여자들은 박현채 선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신나했다. 늘 강건한 모습을 보여주던 선생은 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을 찾아갈 때도, 지리산을 오를 때도, 강진의 다산초당을 갈 때도 늘 앞서 걸어갔다. 말술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주사 없이 통쾌했다.

역사에 대해 신뢰하고 역사발전을 낙관하던 선생의 삶을 이 땅의 젊은이들은 큰 형님의 그것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1934년에 태어난 선생은 1995년에 별세했다.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선생이 10년만 더 연구하고 강의했다면 우리 사회과학의 이론과 사상은 더욱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이론가가 한 시대 한 국가사회의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론이 오늘에 여전히 적실하느냐는, 흑백의 논리로 말할 수는 더욱 없을 것이다. 박현채라는 한 사회과학자가 창출해낸 이론과 사상과 정신은 분명 우리 현대사의 한 시기에 창출된 역사의 소산일 것이다. 우리 시대가 창출해낸 그 학문과 이론은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의미가 있을 터이고, 선생의 학문과 사상, 이론과 정신은 여전히 논구되어야 할 살아 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박현채 선생과 참 많이도 만났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의 우렁찬 청년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그는 영원한 청년으로 나에게 남아 있다. 이 FTA 시대에 ‘민족경제론’의 박현채 선생이 더욱 그리워진다. 박현채 선생은 지금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FTA 시대를 어떻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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