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와 함께 『지리산』에 오르다
지리산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 이병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리산’을 실패할 각오로 쓴다. 민족의 거창한 좌절을 실패 없이 묘사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이 내게는 없다. … 최선을 다해 나의 문학적 신념을 지리산에 순교할 각오다."
안녕하세요,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줍니다.
지리산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 이병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리산’을 실패할 각오로 쓴다.
민족의 거창한 좌절을
실패 없이 묘사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이 내게는 없다.
기록이 좌절할 수 있을 수도 있을 법한 일 아닌가.
최선을 다해 나의 문학적 신념을
지리산에 순교할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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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라디오 책 읽는 사람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에 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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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임 헌 영 / 문학평론가
그 동안 많은 작가들이 분단 비교라든가 여러가지를 썼는데
이병주 선생의 입장은 주측이 정치사적인 관점에서
한국현대사를 봤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그런 정치사적인 변을 어떻게 봤느냐 하면
지배하는 쪽의 시선과 억압과 탄압을 당하는 쪽의
두 입장을 병치시켜서 어느 쪽이 옳은가를
독자들에게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에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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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신윤주
“앞서 걷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보고 감격어린 소리로 외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했소.
거산(巨山)의 모습이 강 너머
저 쪽에 나타나 있었다.
가까운 곳은 선명한 푸르름이고, 멀어져 감에 따라
보라색으로 변하고,
아득한 정상은 신비로운 빛깔 속에 안겨 있었다.
달뜨기는 지리산의 초입이다.
남부군은 드디어 그 긴 여로를 겪어 목적한 곳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다.
수백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신비로운 웅봉(雄峯)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아!’하는 탄성이 대열 속에서
바람 소리처럼 일었다.
여순병란 이래의 빨치산들이 마치 고향을 그리듯
입버릇처럼 말하던 달뜨기가 아닌가.
박태영으로서도 감회가 없을 까닭이 없었다.
그는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라고
한 이현상의 말과
‘과연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있을까’라고
쓴 홍행기의 탄식이
뒤범벅 된 감정으로
넋을 잃고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지리산을 찾은 빨치산들은 조개골 등에 숨어
이곳 달뜨기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생각했다.
낡은 총자루를 옆에 두고 구수하게 풍기던
된장냄새와 아내의 젖비린내와
어머니의 말라붙은 가슴팍을 떠올렸을 것이다.
입술을 악 물고, 밤새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에
넋을 놓은 채 달을 보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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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어사전’처럼 드라마가 된 소설도 있지만
‘지리산’을 포함하여 ‘관부연락선’, ‘산하’,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이병주의 문학은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병주는 사관이냐 소설가냐 하는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철저한 사료수집과 취재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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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신윤주
여순반란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던 박태영은
남한에 있어서의 좌익의 장래에 대해
결정적인 절망을 느꼈다.
그 원인은 박태영의 심중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도주의적 양심 때문이었다.
‘왜 무익한 살생을 하는가?
이러한 살생이 거듭되면 설혹 훗날 혁명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진정한 보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통찰이기도 했다.
이쪽저쪽으로 원혼들이 공기를 어둡게 하는 상황에선
활달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증오가 가득 차 있는 땅에서
어떻게 화합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형제들을
학살한 인간들과 어떻게 화합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러한 폭동과 반란이 혁명의 대세를
일보 전진시켰다면 또 모른다.
여순반란 사건은 그렇지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멸의 길을 재촉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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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병주는 말합니다.
어떤 주의를 가지는 것도 좋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주의 그 사상이 남을 강요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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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신 예 선 / 북미주 문학인협회장
이병주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역사와 신화... 정말 이 섬진강
물결이 황금빛으로 변할지... 거기에서 제가 역사를 생각했고
이병주 선생님의 말씀은 한 말씀, 한 말씀이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되어서 우리는 그 열매만 따먹고도
참 행운의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이것이 이병주 선생님의
존재로 인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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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리산에 대한 작자의 자평을 들을 수 없지만
그는 책에서 이런 후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낭독) 신윤주
해방 직후부터 1955년까지 꽉 차게 10년 동안
지리산은 민족의 고민을 집중적으로 고민한 무대이다.
많은 청년들이 공비를 토벌한다면서 죽었고
역시 많은 청년들이 공비라는 누명을 쓰고 죽었다.
그들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두고두고 민족사의 대과제가 될 것이다.
공산당이 범한 최대의 죄악은 순진무구한 청년들을
자기들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그 목적만으로
민족의 적으로 만들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이런 분자들의 선동과 조종을 받아
그 많은 청년들이 공비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야 했다고 생각하면
의분을 억제할 수가 없다.
말하자면 소설 지리산의 주네는 바로 이 ‘의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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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으신 프로그램은 저희 KBS 홈페이지 kbs.co.kr과
온북티브이 홈페이지 onbooktv.co.kr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로 언제든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