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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에게』 두 번째 이야기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 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란 신데요, 시인은 시집 ‘돼지들에게’에서 선운사의 후편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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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영웅으로 불리는 축구황제 펠레, 그 펠레가 수많은 축구 경기를 하면서 받은 옐로 카드가 단 한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최영미 시인은 말합니다.

‘세상에는 펠레 아닌 사람의 거의 전부다. 전에는 소소하게 반칙하는 걸 싫어했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반칙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보니 반칙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멀쑥해지는 사회, 시인은 그런 사회를 비틀어 이야기합니다.

안녕하세요,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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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읽어요 / 날마다 읽어요
좋아하는 책을 읽어요 / 그냥 읽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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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 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란 신데요, 시인은 시집 ‘돼지들에게’에서 선운사의 후편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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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신 윤 주

알겠니? - 4. 다시 선운사에서

옛 사랑을 묻은 곳에 새 사랑을 묻으러 왔네
동백은 없고 노래방과 여관들이 나를 맞네
나이트클럽과 식당 사이를 소독차가 누비고
안개처럼 번지는 하얀 가스.... 산의 윤곽이 흐려진다

神이 있던 자리에 커피자판기 들어서고
쩔렁거리는 동전 소리가 새 울음과 섞인다

콘크리트 바닥에 으깨진,
버찌의 검은 피를 밟고 나는 걸었네
산사의 주름진 기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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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은 소문난 축구광입니다. 지금도 국내에 중계되는 유럽축구는 거의 다 본다고 하는데요, 가장 원시적인 스포츠라는 축구가 가식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는 시인의 취향과 맞아떨어졌을까요.

-------------------------------------------------- 낭독) 최 영 미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컴퓨터를 끄고 냄비를 불에서 내리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내가 텔레비전 앞에 앉을 때,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우리의 몸은 움직이고 뛰고 환호하기 위한 것.
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최선을 다한 패배는 승리만큼 아름다우며
최고의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고
반칙도 게임의 일부임을 그대들은 보여주었지.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
위선은 숨을 곳이 없다.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 강인한
그대들의 땀은 헛되지 않을지니,
하늘이 내려다보는 여기 이 푸른 잔디 위에
순간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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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돼지들에게’에서 최영미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설파합니다. 시집의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눈감고 헤엄치기’는 최영미 시인의 시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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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신 윤 주

눈감고 헤엄치기

세상이 아름답다 말한다고
지구가 더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간판들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큰 글씨로
꽃과 나무와 더불어 숲을, 숲에 묻혀 사는 낭만을
예쁘게 찬미할 수 없는 나는 -

밖에서 더 잘 보이게 만들어진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눈을 감고 헤엄치는 나의 언어들은 -
요리사 마음대로 요리하기 쉬운, 도마 위에 오른 생선.
솜씨 없이 무딘 칼에도 무방비일지언정
내 시에 향수와 방부제를 뿌리지는 않겠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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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최 영 미 / 시집 '돼지들에게' 시인

'눈감고 헤엄치기'라는 시 마지막 행엔 원래 이렇게 썼어요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원래는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시를 고치면서 사람 대신 시로 바꿨어요. 제 시집 마지막에 수록된 이 시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문단에 대한 비판이었어요 더 가까이 말하자면 시단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어떤 시를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시들이 많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인 자신도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쓴 시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그런 시들은 대부분 어려운 단어가 많고 많이 꼬았어요.

보통 시에 무지한 독자들, 그리고 시를 잘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이 보면 굉장히 근사해 보여요. 그런 시들이... 어렵고 뭔가 심오해 보이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쉬운 것을 어렵게 꼬는 것은 재능이 아니고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것이 재능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글이라는 것은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인데 자기만 아는 시를 써서 무슨 의미가 있나... 근데 또 그런 시들을 일부 평론가들은 원래 글보다 더 휘황찬란한 분석을 덧붙여서 그걸 포장해서 밖에 내놓거든요. 그것이 한국문단의 전반적인 풍토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이 한국문학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을 해서 제가 한번 시로 비판해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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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알기 쉽게 써주셔서 감사하고 소통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시인은 책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나의 선택이 항상 옳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내 운명을 마흔이 넘어 이해했다. 너무 늦기 전에 깨달음을 내려주신 신에게 감사하며 내일도 나는 광야에 홀로 서 있을 것이다.’

오늘 들으신 프로그램은 저희 KBS 홈페이지 kbs.co.kr과 온북티브이 홈페이지 onbooktv.co.kr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로 언제든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주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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