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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고두심의 <친정엄마>

‘어버이날’ 볼만한 공연을 찾다 보니, 단연 눈에 띄는 연극이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어머니’가 김혜자 씨라면 ‘대표 엄마’는 바로 고두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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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볼만한 공연을 찾다 보니, 단연 눈에 띄는 연극이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어머니’가 김혜자 씨라면 ‘대표 엄마’는 바로 고두심 씨. 고두심이 <친정엄마>라는 작품으로 7년 만에 연극무대에 선 것이다. 연극 <친정엄마>는 애초 5월 6일까지만 상연될 예정이었으나, 관객들의 큰 호응으로 연장공연이 확정됐다. 얼마나 감동적인지 직접 보지 않을 수 없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녀 이야기

‘친정엄마’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극의 줄거리는 딸과 엄마를 놓고 그려내는 평범한 내용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딸. 그녀는 서울로 대학을 가고 방송작가가 돼서 집안 살림도 보태고 동생 유학자금까지 대며 엄마의 든든한 자랑이 된다. 그러나 결혼 상견례 자리에서 집안이 기운다는 이유로 반대를 겪자, 엄마는 ‘에미가 딸 앞길을 막게 생겼다’며 대성통곡한다. 우여곡절 끝에 혼인은 성사됐지만 시집살이가 오죽할까? 딸 가진 죄인이라고 엄마는 딸 산후조리에, 시시때때로 김치며 반찬 만들어 보내는 것도 모자라, 결국 바깥사돈 생일상까지 차리게 된다.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말이다.

엄마와 딸은 서로 마음을 제일 잘 이해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빤히 아는 패로 가장 날카롭게 가슴 깊은 곳을 후벼 파는 사이가 아니던가? 따라서 모녀는 해사하게 웃다, 어느 틈에 모질게 찍는 소리를 내뱉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나 모녀의 이 같은 애증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삶의 상대적 시간 구간이 서로 다른 만큼, 한쪽이 사랑을 줄 때 다른 한쪽은 상처를 주게 되고, 한쪽이 죽음으로 사랑을 마무리할 때 다른 한쪽은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안게 된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고생도 심했던 엄마에게는 남모를 병이 있었으며, 결국 엄마가 훌쩍 떠난 자리에서 딸은 속절없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는 것이다.

자식 전화에 마냥 좋은 엄마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한 작품으로 만든 명품 연기

그렇다, 내용은 신파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에 관객은 왜 이렇게 감동하는가? 바로 우리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또한 애써 외면하지만 이렇게도 매몰차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인가? 실제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객 대부분이 눈시울을 적신다. 특히 연극이 끝나고 몇몇 모녀 관객과 인터뷰를 했는데, 엄마는 딸에 대한 사랑이 충만해서, 딸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가장 훌륭한 작품은 가장 평범한 이야기며, 제일 뛰어난 감동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제일 흔해 빠진 감성을 끌어올리면 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물론 이처럼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한 작품으로 승화한 데는 고두심의 명품 연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작품에서 고두심은 평소 TV에서 보는 것보다 더 못 배우고 촌스러우며 능력도 없다. 자상하지만 억척스럽고, 잘 웃지만 소리 높여 욕하고 울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말 ‘엄마’ 같다. 동네 슈퍼에 널린 걸 알면서도 자식 먹을 것은 죄다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애틋함, 한 끼 먹지 않아도 아무 탈 없건만 지치지도 않는 끼니 걱정,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더도 말고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 쏟아내는 투정, 안 좋은 일에는 당사자인 딸보다 더 욕하고 화내다 도리어 화를 뒤집어쓰는 서글픔까지, 준 것에 절반도 돌려받지 못하는 그 부당함 속에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 ‘모정’을 ‘정말 울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연기한 것이다.

딸 먹이려고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온 엄마

공감, 그리고 반성

엄마는 죽음이 눈앞에 오자 자신을 데리러 온 친정엄마에게 말한다. “어메요, 나 아직은 안 갈라네. 내가 지금 가면 우리 딸은 어쩌고. 보잘 것 없는 에미지만 우리 딸 힘들지 않게 김치랑 밑반찬도 만들어줘야 하고, 내가 만만해서 부리는 투정도 받아줘야 하고, 또 살다가 힘들 때 ‘어메요’ 하고 찾아오면 ‘오야, 내 새끼’하고 받아줘야재. 나 지금은 안 갈라네.” 딸은 엄마가 떠난 자리에서 흐느낀다. “엄마 미안해.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였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그렇다, 그 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의 자식이 있다.

훌쩍훌쩍. 연극은 끝났지만 무대 위 배우도, 무대 밖 관객도 모두 숙연하다. 더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식은 가슴 한구석에 밀어둔 엄마의 사랑을 그제야 겨우 들여다보고 인정한다. 자신의 위선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뻔뻔스러움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모두가 깊게 반성하고, ‘좋은 딸이 되겠다, 아니 적어도 못된 딸은 되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래, 엄마한테 잘하자!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염치없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고자 다짐마저 지운다. 그 언젠가 분명히 후회할 텐데….

가슴을 저미는 고두심의 열연

‘다음에는 내 딸로 태어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그 사랑의 측정할 수 없는 무게를 느낀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그것은 자식이 아무리 다짐을 하고 설령 실행에 옮긴다 해도, 결국 되돌려 보낼 수 없는 것. 어쩌면 구조 자체가 그렇게 짜여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라도 하자. 그리고 정말 다음 세상이 있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나의 엄마가 나의 딸로 태어나길, 그래서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길 바라보자.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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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친정엄마>
2007년 5월 10일 ~ 6월 3일
평일 오후 8:00 / 금 오후 4:00, 8:00 / 토 오후 4:00, 7:00 / 일,공휴일 오후 3:00, 18:00 / 월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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