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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몇 달 전 한 강좌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는데 그때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어요. 그 강좌의 이름이 ‘주제와 변주’였는데 놀랍게도 그 강좌를 주최하는 곳은 부산의 한 작은 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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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한 강좌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는데 그때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어요. 그 강좌의 이름이 ‘주제와 변주’였는데 놀랍게도 그 강좌를 주최하는 곳은 부산의 한 작은 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서점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어요. ‘인디고 서원’, 한참을 홈페이지 여기저기에서 글을 읽어 보고 나서 ‘여기라면 아이들과 부산에 가게 되면 꼭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까닭은 홈페이지에 소개된 ‘인디고 서원’에 대한 글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저 거대하고 오만한 서울의 문화인들에게 인디고의 이름으로 초대를 할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동네마다 빼곡히 들어선 학원과 교습소 자리에 도서관과 작은 책방들이 세워져서 학교를 마친 이 땅의 청소년들이 도서관과 작은 책방으로 몰려와 옹기종기 모여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나무그늘 아래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하고 늦은 밤 별에게, 달에게 자신의 꿈을 새겨 넣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서울서 부산까지 나들이가 그리 쉽지 않아서 그저 방문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는 타이틀로 인디고 서원이 자주 언론에 소개되더군요. 독서와 논술이 또 다른 입시 사교육의 대세가 되면서부터 뭔가 색다르고 특별한 교육방법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인디고 서원도 그런 세상의 관심을 피해갈 수는 없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만 알던 소중한 어떤 것을 들켜 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답니다. 지난주 아이들과 부산에 갈 일이 있어서 친구와 아이들과 함께 드디어 인디고 서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인디고 서원 앞에서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인디고 서원을 찾아가는 길, 몇 번을 전화로 묻고 나서야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엄마, 저기 있다!” 눈 밝은 아이들이 먼저 찾아 낸 인디고 서원 앞에서 일행은 잠깐 멈추어 섰습니다. 왠지 여느 서점처럼 당장에 문을 열고 들어서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거든요.

“엄마 여기 정말 예쁘다.” 서점 앞에 쪼르륵 줄지어 있는 허브 화분과 그 옆에 조용히 세워둔 누군가의 하얀 자전거, 이곳이 인디고 서원임을 알려주는 각종 포스터가 창문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맑은 햇살 아래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았어요.

“얘들아, 너희에게 미션을 하나 줄게. 이곳의 이름이 인디고 서원인데 도대체 인디고의 뜻이 뭔지 한 번 가서 알아볼래?”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서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용한 오전의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작은 도서관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것저것 책을 구경하다가 한쪽에서 마침 서점 일을 보던 천소희 실장을 발견하고는 냉큼 달려가 물었습니다. “인디고의 뜻이 뭐에요?”

쪼르륵 달려와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아이들이 재미있었는지, 천 소장은 미소를 지으며 “그건 쪽빛이라는 뜻이에요. 여기 꼬마 학생이 입은 옷 색깔처럼 푸른 색을 말하죠”라고 대답해주더군요. 아이들은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거참, 이름 한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쪽빛이야말로 청소년기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하고요.^^

"이 색깔이 쪽빛이래요."

자습서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도 찾아 볼 수 없는 인디고 서원만의 독특한 서가에는 문학, 역사, 사회, 철학, 교육, 예술, 생태, 환경 등 상위 항목과 그에 따라 하위 항목을 기준으로 분류된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 이거 우리가 전에 만났던 아저씨다! 엄마, 이 책 읽었지요?” 예전 독서 토론 시간에 함께 갔었던 둘째가 인디고 서원에서 찾아낸 책은 무하마드 유누스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였어요. 아이는 자기도 아는 책이 있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서점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한쪽에는 인디고에서 만들어 내는 격 월간지 <인디?잉 INDIGO+ing>이 있었습니다. 도저히 청소년이 만들어 내는 잡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멋진 글과 생각이 가득 찬 잡지였어요.

무하마드 유누스의 책을 들고 반가워하는 아이
인디고 서원에서 만든 노트와 다이어리

‘국내 최초의 청소년 인문 교양지’라는 꼬리표를 달고 태어난 이 잡지에 무하마드 유누스, 사이먼 블랙번, 슬라보예 지젝 등 서구의 지성이 무료로 글을 기재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책까지 척척 읽어 내며 토론도 하고 고민도 나누는 인디고 아이들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요즘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을 위한 논술 잡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어른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입시 위주의 주입식 내용에 이름만 ‘청소년 잡지’를 단 책이 아닌 <인디고잉>이야말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의 잡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교양잡지 <인디고잉>을 들고

“여기 옆에 가시면 ‘인디고 아이들’이란 초등생과 유아를 위한 공간이 또 있어요.” 천소희 실장의 이야기에 인디고 서원을 나와서 골목 하나를 돌아가니 그곳에는 또 다른 인디고의 문화공간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인디고 아이들’이었죠.

'인디고 아이들' 앞에서

“야, 여기는 읽을 책이 많다!” 어려운 철학책과 문학책에 기죽어 있던 둘째는 ‘인디고 아이들’에 들어서자마자 책 한 권을 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서점 안에는 책 외에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멋진 디자인의 상품도 있어서 큰아이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인디고 서원과 ‘인디고 아이들’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두 곳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둘 다 초록색이 많았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정말 서점의 구석구석 놓인 초록의 식물이 어찌나 책과 잘 어울리는지…. 책 읽는 사람의 마음을 오감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 바로 인디고 서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디고 아이들'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
'인디고 아이들'에서 판매하는 여러 가지 상품

다시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길… “어? 저기 좀 봐봐” 하고 아이들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인디고 서원의 주인 ‘아람샘’의 이름이 적힌 작은 간판이 걸린 유리창이었는데요.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었답니다. “아람샘 – 소혹성 B612호” 이보다 더 그녀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아이들과 돌아오는 길,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어쩌면 인디고 서원의 주인은 자신의 소중한 장미와 함께 사막에서 우물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만 봐야 하는 그런 우물 말이에요.

[TIP]
인디고 서원(//www.indigoground.net/index.html)
* 26회 ‘주제와 변주’ - 『과학으로 생각한다』의 저자 이상욱님과 함께 (5월 24일 저녁 7시)
                                 참가신청: 인디고 서원에서 저자의 책을 사고 초청장을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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