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고비로 극장 출입이 뜸한 편이다. 개봉영화를 1년에 한 편 볼까 말까 하던 것이 그나마 최근에는 두 편으로 늘었다. 주로 명절 연휴에 우리 형님, 조카 녀석과 함께 극장을 찾는다. 2004년 추석 때 장이모우 감독의 <연인>과 우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았고, 2005년 섣달그믐엔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을 보았다.
지난해와 올해는 섣달그믐의 가족 ‘단체관람’에다 혼자서 일부러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아가 관람한 작품이 한 편씩 있다.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김명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가 그것이다. 작년 설에 ‘단체관람’한 <왕의 남자>는 내가 본 영화 가운데 최대 흥행작이다. 형님 댁 인근의 복합 영화상영관에 가서야 올해의 ‘단체관람’ 영화로 결정된 <록키 발보아>는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학교>
다큐 영화 <우리학교>는 내 기대치와 상상을 훨씬 웃돌았다. 일본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1년 5개월을 필름에 담은 <우리학교>는 인간미 넘치는 건강한 영화다. 나는 학교 자체에 심한 거부감이 있지만, 이런 학교라면 한번 다녀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런 선생님들께 배워보고도 싶다. 무엇보다 나는 <우리학교>를 통해 내 정서가 ‘조선인’의 그것임을 깨닫고, ‘재일조선인’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들어와 70여 명을 수용하는 객석의 점유율도 생각보다 약간 높았다. 내 좌석은 아주머니들 사이에 낀 자리다. 왼편에 앉은, 나보다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은 연방 손을 눈자위로 가져간다. 그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오른편의 두 분 중 한 분은 신호음을 꺼놓지 않은 휴대전화를 받기에 바쁘다.
나는 왼편에 앉은 분보다는 덜해도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군 복무 시절 첫 휴가길에 특이한 경험을 했다. 부대가 있는 강원도 철원에서 버스 타고 오는 동안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좀 더 집에 빨리 가고 싶어 의정부에서 내려 수도권 1호선 전철을 갈아탔는데, 전동차 안은 반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다. 사람들이 다 잘나 보이고, 아주 낯설다. 목적지인 부평역까지 말이다.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영화관 밖으로 나오자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이상하게 다가왔다. <우리학교>의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여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감상평을 읽고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그 감상평은 ‘무섭다’를 되뇌는데, 나는 뭐가 무서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학교>에서 내가 아쉬웠던 장면은 남북통일에 관한 두 개의 에피소드 정도다. 이 깃발 아래 통일이 되면 좋겠다며 운동회 준비를 하는 고3 남학생의 목소리 뒤로, 나는 한반도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다음 장면은 ‘인공기’가 만국기 줄에 달려 나부꼈다. 태극기든, ‘인공기’든, 한반도기든 어떤 특정한 깃발 아래 뭉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힘주어 말하는 통일이 필요한 까닭 또한 마찬가지다. 하나로 합치면 강해질 것이기에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적절하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우리학교>에서 무섭다기보다는 몹시 불쾌한 장면이 딱 하나 있다.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걸려온 덜떨어진 일본인의 협박전화다. 그들은 병적인 목소리로 지랄염병을 떨었다.
‘진짜’ 경계인
이제 내가 <우리학교>에서 받은 감동에 치우침은 없는지 살필 순서다. 신숙옥(辛淑玉, 1959- )은 ‘자이니치(在日)’다. 재일동포 3세 인권운동가인 그는 ‘진짜’ 경계인이며 마이너리티다. 몇 년 전 한국방송의 <한민족 리포트>라는 프로그램에 비친 그는 강한 모습이었다. 특히, 거침없는 언행이 인상적이었다.
신숙옥은 일본의 보수진영에 당당히 맞서는 논객이다. 얼마 전 치러진 일본 지방선거에서 도쿄도지사 3선 연임에 성공한 ‘보수 꼴통’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와 ‘맞장’을 뜰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신숙옥은 학창 시절부터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경계에 있었다. 조선인 민족학교에서는 ‘왕따’였고, 일본학교는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신숙옥은 ‘자이니치’ 지식인 서경식과 여러모로 대조를 이룬다. 우선, 성별이 다르다. ‘가방끈’이 짧고 길다. 두 사람의 가족은 남과 북에서 커다란 희생을 치른다. 서경식은 서울대에 유학 온 두 형이 간첩으로 몰려 20년 가까이 감옥을 살았다. 신숙옥은 북송을 ‘자원한’ 혈육-외할아버지, 외삼촌 둘, 외사촌-이 모두 북녘에서 숨을 거뒀다.
지금까지 번역된 신숙옥의 책은 네 권이고, 두 장르로 나눌 수 있다. 일본 사회와 재일동포사회를 비판하는 책과 실용성이 짙은 책이다. 네 권 가운데 두 권은 절판되거나 품절돼 책을 구하기 어렵지만, 리뷰 하는 데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사회비판서와 실용서가 각기 하나씩 살아있어서다.
『재일조선인의 가슴속』(배지원 옮김, 십년후, 2003)은 재일조선인 1세 소설가 김석범의 표현을 빌리면,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한 논(論)집일 뿐만 아니라 문학적 향기가 풍기는 잠언(箴言)집”이다. 신숙옥이 누군가에게 들은 말에 대해 코멘트 하는 형식이다. 이 책은 절판되어 손에 넣기 어렵다. 중간 제목 두 개에다 책 내용 일부를 인용한다.
나를 황당하게 하는 말들, 화나게 하는 말들“일본어 아주 잘하시네요.”(여기저기서)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면 종종 ‘당신보다 오래 일본에 살았으니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어차피 결혼한다면 미인이 좋은 게 당연하지.”(한국주재 일본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성형수술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일본보다 적다. 대학에 들어가면 쌍꺼풀 수술을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남성들의 의견을 물어봤을 때 나온 말. ‘왜 그런 질문을 하지?’ 하는 투였다.
“돌아가라!”(여기저기서)
어디로? 태어난 곳으로요? 그렇다면 도쿄 시부야인데. 조선인은 조상의 땅,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당신도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 주시죠.
“한국말 어디서 배웠어요?”(여기저기서)
한 번은 ‘조선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더니, 바로 눈앞에서 상대방 안색이 싹 변하더니 이후 연락이 두절된 적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런 사람일수록 또 한국어를 못하는 재일조선인을 바보 취급한다.
“당신은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지요?” “당신은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지요?”(동포 지식인들)
예, 그렇습니다. 인생 대부분을 끼니를 위해 일했습니다. 체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디 선생님들과 같이 체계적으로 제대로 공부하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이 목소리 드높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주시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조선학교와 일본학교그동안 한국은 재일동포 자제들의 교육에 관심을 두기는커녕, 오히려 재일동포를 간첩취급하고 탄압의 대상으로 보았다. 반대로, 북은 재일동포 아이들의 교육에 열의를 다했다. 그 결과 일본 사회의 차별과 억압 속에 놓여있던 조선학교의 교육은 자연스럽게 북조선 쪽에 치우쳐갔다. 이런 이유로 예전의 조선학교는, 지금의 조선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김일성 원수’ 일색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도자이며,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며, 4천만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조선초급학교에 입학한 후 가장 먼저 암기해야 했던 문장)
맨 뒤에 김일성 원수님이 붙는다. 모든 문장에 이 이상의 형용사가 없으면 탈락되었다.
내가 조선학교로 전입했을 즈음에는 불행히도 총련 내부에서 파벌싸움이 일어났다. 그 풍파는 학교까지 덮쳐 배움의 터까지 폭력이 동반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지금도 조선인들에게 있어 기억하기 싫을 만큼의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나는 당시의 폭력적인 체벌에 견디지 못해 전입한 지 5년 만에 도망치듯 학교를 나오고 말았다.
“6시간 걸려 그릴 것을 2시간 만에 그리고, 게다가 3배는 훌륭하다.”(중학교 미술 선생님)
조선학교에서는 빵점이었던 미술 성적이 눈 깜짝할 사이에 1등으로 올랐다. 천국과 지옥은 종이 한 장 차이.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실감했다.
“선생님도 노동자라고.”(고등학교 수학 선생님)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가끔 쉬는 시간에 질문하러 갔다. 그때 교사가 한 말. 쉬는 시간에 학생이 질문하러 오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뺏는다는 말이었다. 그 과목은 항상 1등을 했었는데 1년이 지나면서 5단계 중 3급으로 떨어졌다. 학교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동포의 피땀과 눈물이 서린 민족학교『자이니치,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강혜정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6)는 그의 가족사를 다룬 자전적 에세이다. 하여 학교생활을 돌아본 대목은 『재일조선인의 가슴속』과 일부 내용이 겹친다. 조선 총련이 주도한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의 실태와 탈북 난민을 취재한 중국 현지르포도 실려 있다.
신숙옥은 민족학교의 역사가 동포의 피와 땀과 눈물로 점철되었다고 말한다. “1957년 이후부터 북한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왔다고 하지만, 실제 비용은 재일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학교건설을 위해 사재를 털어서, 각자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져오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체력이 있는 사람은 몸으로라도 때우는 식으로 교육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 이름 없는 동포의 희생 위에 조직이 군림한 셈이다.”
신숙옥이 겪은 조선학교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지역에 따라 조선학교의 상황과 양상은 많이 달랐다고 말한다. “세대에 따라서도 다르고, 정치도시 도쿄 안에서 일어난 폭풍과 지방에서 일어난 폭풍이라는 면에서도 달랐으며, 현재와 당시의 교육 내용 또한 전혀 다르다는 점도 덧붙여두고 싶다. 지금은 초상화는 걸지 않는다고 들었다.”
『자이니치, 당신은…』의 한국어판에 부치는 신숙옥 글의 맺음이 낯설다. “끝으로 나는 이 책의 출판에 따르는 한국에서의 모든 비난을 나 개인으로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건 기우다, 군걱정이다.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마땅하나, 적어도 우리는 그를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그가 일본인 의사에게 몹쓸 짓을 당한 여자 아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비난거리도 잘 안 보인다.
하룻밤 동안 화를 삭여라『화내는 법』(서금석 옮김, 푸른길, 2005)은 여느 화풀이 실용서와 다르다. 아주 솔직하다. 프롤로그 격의 1장에선 예의 그의 강함이 느껴진다. 남북이 다 마땅치 않다. “가스실 없는 대학살. 그것이 북조선의 실상이었다.” 남한을 보는 눈길도 싸늘하다. 돈을 많이 기부한 순서대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서론의 분위기는 강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는 2장부터는 유연성을 보인다. 신숙옥은 몹시 화가 나더라도 그것을 바로 표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분노를 하룻밤 삭인 다음, 행동으로 옮기라고 충고한다. 화를 내는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간단명료하고 직설적인 표현, 반복, 상대방 직시하기와 목표 정하기 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테크닉은 화를 내는 목적과 관련이 깊다. 그것은 인연을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함이다. 따라서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남이 나에게 화를 내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화내지 못하게 막으려는 사람에는 세 부류가 있다.” 이를 신숙옥은 교훈과 함께 제시한다.
1. 화를 내게 한 원인제공자다. 정치인 같은 힘센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교훈 1_차별하고 때리는 사람일수록 도(道)를 앞세운다.”
2. 일반대중이다. 배출구를 찾는 대중의 분노는 권력에 의해 방치되거나 소수자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묵살하는 입마개로 이용당한다. “교훈 2_목소리를 내면 무지한 대중이 적으로 변한다.”
3. 휘말려 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엔 응원단이나 지원자인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훈 3_‘힘내세요’는 불똥 튀는 것을 피하려는 보험 아닐까?”
‘화를 피하는 방법’ 세 가지도 흥미롭다. 첫째,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상대가 이유 없이 화를 낼 적에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 둘째, 큰 소리로 맞대응하기다. 용기가 있어야 하고, 위험부담이 따르는 방법이다. 셋째, 같은 말을 반복하기다. 그런 다음, 상대가 잠시 정신 차린 틈을 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는 잽싸게 자리를 뜬다.
사회적 분노의 표출을 다룬 6장에 이르면 신숙옥은 한결 유연해진다. “‘우’냐 ‘좌’냐 하는 과거의 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쌈박한 이벤트와 언론 플레이에 치우친 운동방식이나 언론보도를 잣대로 대중운동의 성패를 가늠하려는 태도는 좀 아쉽다. “‘화내는 것’은 인간성의 발로”다.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증거다. 완벽한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이니치가 뭘 어쨌기에『유쾌하지 못한 남자들』(최윤희 옮김, 투영미디어, 2003)은 품절 상태다. 예스24 콘텐츠가 보여주는 이 책의 차례는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 남자의 논리는 언제나 독선적이며, 그의 무신경함은 여자에게 민폐를 끼친다. 몸은 어른이나 정신연령은 어린애 수준이고, 차별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져있다.
신숙옥은 일본인의 어리석은 사고와 행동도 예리하게 간파한다.
『자이니치, 당신은…』의 후미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일본인은 북한과 관련 있는 문제만 나오면 냉정함을 잃는 것일까?” 이를 그는 심각한 공황장애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가 보는 일본인에게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식민지 정책에 의해 주입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다. 그 차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에 공포심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언젠가 당한다.’ 그 공포심이 공황 상태를 만든다.”
다른 하나는 북한체제가 일본인이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밀쳐둔 추한 과거를 상기시켜서다. “인간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게 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진다. 차별의식과 표리관계에 있는 공포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이 보란 듯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혐오감. 이 두 가지가 겹쳐, 상대를 공격한다.”
이어지는 신숙옥의 물음. “자이니치가 뭘 어쨌단 말인가?”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가해자를 상대로 하는 게 옳다는 얘기다. “너, 그런 짓 하지 마!”라고. 또한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국가범죄를 규탄하는 일이다.
“지금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는 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뒤덮인 인생을 발판삼아 그 위를 딛고 서 있다. 그렇다면 거기까지 오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재일동포사회의 버팀목마침, 서울방송이 방영한 ‘도쿄 조선 제2초급학교’ 밀착취재기(「도쿄, 제2학교의 봄」, 〈SBS 스페셜〉 , 2007년 4월 29일 밤 11시 5분~12시 5분)를 보았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지사로 있는 도쿄도 정부와의 학교 운동장 반환소송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우리학교’는 규모가 작고 학교건물도 낡았다. 교실에는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문제 될 게 없었다. 도쿄의 ‘우리학교’ 역시 홋카이도의 ‘우리학교’처럼 우애와 사랑이 가득하다. 또한 ‘우리학교’는 재일동포사룈의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신숙옥에겐 조선 민족학교에서의 좋은 기억이 단 하나도 없다. 그의 남동생은 민족학교 교사들에게 초죽음이 되도록 얻어맞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재일조선인이 민족교육을 받을 권리를 옹호한다. 신숙옥이 생각하는 민족교육의 내용은 이렇다.
“자이니치에게 있어서 진정한 민족교육이란 자이니치의 역사를 배우는 것 외에는 없다고 본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것을 배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자이니치의 민족교육이 일본의 공교육 속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졸업식에서 ‘우리학교’는 동포 1세와 2세가 터를 일구고, 부모님과 선배들이 다녀갔으며, 졸업생 여러분이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영원한 모교라고 울먹이는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고급반 담임 박대우 선생님의 생각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