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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는 음악을 할 수 없지만 음악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 - 윤이상 ②

예술이란 진실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진실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진실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예술만이 창조적이고 남이 모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술이란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그것을 옹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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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10일 윤이상 선생과의 인터뷰는 막 창간된 <한겨레신문> 1988년 10월 27일자에 전면으로 게재됐다. 세계가 연주하고 연구하는 그의 음악예술이 막상 조국에서 왜곡되고 막힌 상황에서, 그가 사랑하는 민족에게 그의 음악예술을 소개하고자 찾아간 한 출판인에게 선생은 민족과 예술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말씀했다. 다음은 당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동베를린 사건 이후 내 음악이 바뀌었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 당시의 윤이상 선생
“1956년에 선생님이 유럽에 오신 이후 30년이 더 지났습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곡활동을 시작해서 이제 세계 정상을 지키고 계신데, 선생님의 음악이 최근에 들면서 구조가 단순해진다 할까 어떤 격렬함으로부터 조용해진다 할까, 더욱 동양적인 것으로 흐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0월 8일과 9일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연주된 작품 가운데서도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작곡하신 작품은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이는 선생님의 음악세계 또는 사상의 어떤 변화라고 할 수 있나요?”

“1968년 동베를린 사건은 나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동베를린 사건을 소화하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70년대 초반의 작품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습니다. 이 시기의 내 음악에는 격렬한 정신이 표출됐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거침으로써 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에서 통일적인 정신과 논리가 이루어진다고나 할까요. 나이가 차차 들면서 더욱 나의 음악 언어가 간소화되고 직설적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는 7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나타납니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하겠습니다.”

“동베를린 사건이라는, 분단 민족만이 겪을 수 있는 체험을 통해 선생님의 음악 또는 선생님의 삶에 어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겁니까?”

“동베를린 사건 이전에는 나는 동양의 음악가로 동양적 정신, 동양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심미적 작품을 쓴 것이 사실입니다. 지식인적인 예술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나는 해방 전에도 항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적도 있고 해방 직후에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선 바 있습니다. 나는 민족과 나라를 위해 나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동베를린 사건이라는 개인적·집단적 체험은 민족문제·분단문제를 더욱 구조적이고도 깊이, 온몸으로 생각하고 실천하고, 작품으로 그것을 형상화해야 한다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나의 음악예술이 도교 사상 또는 동양정신에 토대를 둔다는 것, 동양인 또는 한국인으로서 생득적으로 지닌 이런 정신적 유산 또는 토대는 오늘의 세계와 인류, 조국과 민족이 당면하는 문제와 결코 유리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한 예술가는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문화권·정치권과 운명적으로 연계되어 있겠습니다만, 동베를린 사건으로 투옥된 그 극악한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작품을 쓰지 않으셨습니까?”

“장자의 꿈을 소재로 한 오페라 ‘나비의 꿈’, 클라리넷 독주곡 ‘율(律)’과 낙랑고분의 사신도를 주제로 한 ‘영상(이마주)’을 만들었지요.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물 사발이 얼어붙는 혹한 속에서 손을 불어가면서 음보를 적어나갔지요. 나의 생명을 유지하는 정신적 위안은 ‘음악’을 생각하고 찾는 것이었습니다. 현실로부터 해방되고 꿈과 환상으로부터 자유를 찾아내고 위안을 얻어내는 것이었지요. 나는 그곳에서 인간 정신의 숭고함과 절대적 순수, 꿈과 이상의 화합을 추구했습니다.”

“나의 예술 나의 삶은 정의에 바탕을 둔다”

“선생님의 음악을 창출해내는 힘이랄까 정신적 유산이 있다면?”

“내 음악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음악은 우주의 큰 힘, 눈에 보이지 않는 큰 힘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주에는 음악이 흐릅니다. 이 흐르는 우주의 음악을 내 예민한 귀를 통해 내놓을 뿐입니다. 동양의 예술가는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은 작품이라고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예술이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상에서 비롯합니다. 서양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붙이지만, 어디 예술이 개인의 것입니까, 이 우주의 흐름이지요. ?는 우리 조상의 이 같은 예술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내가 오늘 국제적으로 이름난 작곡가가 되었지만, 이것은 내가 민족의 뛰어난 예술적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은 훌륭한 예술적 요소를 지녔습니다. 우리 민족은 동양의 그 어느 민족보다도 통할한 도교사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음악은 이 전통을 그대로 지녔고, 바로 이 전통 속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라났기에 오늘의 내 음악이 존재합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뉘른베르크에서 ‘나비의 꿈’이 성황리에 연주되었고 본에서는 연주회에 모여든 사람들이 연주가 끝나고 윤이상을 석방하라면서 횃불행진까지 했다고 해요. 예술가의 책임이랄까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내 나이 이제 일흔하나입니다. 나는 일제를 체험하고 해방과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왔습니다. 민족의 근·현대사와 세계의 돌아감도 봐왔습니다. 또 남과 북도 잘 아는 편입니다. 유럽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기에 나는 이남과 이북을 똑같이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북과 이남은 똑같은 나의 조국입니다. 북쪽에도 남쪽에도 똑같은 민족의 피가 흐릅니다.”

“선생님의 예술은 평화의 예술, 정의의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민족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 통일운동에의 헌신도 바로 이와 같은 평화와 정의의 예술가로서의 당연한 삶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나의 삶과 정신, 나의 예술은 정의에 토대를 두었습니다. 인간과 인류에 대한 신뢰가 바로 평화고 이 평화는 동양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교향곡을 다섯 개 썼는데 지난해 베를린 시 750주년 기념 위촉작품인 ‘교향곡 5번’을 사람들이 ‘평화의 교향곡’이라고 부르지요. 나의 작품에서 시종 흐르는 것은 바로 정의와 평화정신입니다. 가난한 조국에서 태어난 한 예술가로서 조국의 민주화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그리고 분단된 국토와 조국을 통일하는 일에 나서는 것은 한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무척이나 당연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 전 세계, 특히 제3세계의 수난 받는 민중에 대한 관심도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예술이란 진실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진실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진실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예술만이 창조적이고 남이 모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술이란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그것을 옹호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유럽의 수많은 음악예술가가 민족과 조국을 위해 자기를 던졌습니다. 쇼팽이 그러했고 바그너와 베르디가 그러했습니다.”

1974년 도쿄에서 김대중 구출운동의 일환으로 윤이상 음악회를 열 때의 기자회견 모습.
부인 이수자 여사와 함께 있다.

“정치가는 음악을 할 수 없지만 음악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선생님이 제안하신 남북음악제도 민족과 조국에 대한 열정,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한 예술가로서 신념을 표출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통일운동이 고조되는 시기에 선생님이 제안한 휴전선 남북음악제는 참으로 신선한 지혜를 주는 것 같습니다.”

“한 음악예술가로서 민족의 재통일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바로 이 같은 구상을 하게 된 겁니다. 잠재적으로는 이와 비슷한 생각이 늘 있었겠지만, 구체적으로는 3년 전부터입니다. 휴전선은 민족분단의 실체일 뿐 아니라 분단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정치적 대결뿐 아니라 무력대결의 첨예한 현장입니다. 바로 그 대치의 현장에서 남과 북이 만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남북음악제는 그 진전에 따라서 대단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 더 구체적으로는 음악과 음악가가 어떤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지 자못 궁금하기도 합니다.”

“정치가는 음악을 할 수 없지만 음악가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흔히 정치에 비해 예술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하나의 예술작품 또는 예술행위는 참으로 놀라운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족의 혼과 양심을 불러일으키고 민중을 깨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핀란드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관현악 ‘핀란디아’는 핀란드 국민으로 하여금 민족독립운동의 ?을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체코의 스메타나가 지은 ‘나의 조국’은 체코 민중을 순결한 애국심으로 불타게 하지 않았습니까. 휴전선에서 민족의 음악, 민족의 소리를 울려서 민족화해의 광장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한반도의 휴전선이란 우리 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것일 뿐 아니라 평화를 위협하는 인류 공동의 문제입니다.”

“잠자는 민족의 영혼을 깨우치려는 이 음악제에 대비해 어떤 곡을 만드셨습니까?”

“나는 이 음악제를 위해 지난해에 ‘나의 땅 나의 조국이여’라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45분가량 되는 이 교성곡은 남한의 양심적인 민족시인들의 작품으로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민족과 조국의 영원함을 노래하면서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애국적인 혼을 담았습니다.”

“선생님은 유럽에 계시지만 한국의 상황에 대해 늘 관심을 두고 계시고,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작곡까지 하셨습니다.”

“80년 광주민중항쟁 진압 소식을 접한 나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할 비극이 내 조국에서 일어나고 있음에 정신을 잃을 뻔했어요.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했습니다. 민족에게 새로운 정의와 평화가 도래할 것을 기원하는 심정으로 나는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철저한 사형폐지론자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예술사상으로 보아도 무척이나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입니까? 지상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은 참으로 큰 죄악입니다. 폭력범·살인범이라도 활동을 못 하게 하면 되지 죽이면 안 됩니다. 고깃대가리를 자르는 것이나 황소 머리에 징을 박는 것과 똑같은 짓을 어떻게 인간에게 합니까? 사형제도는 ‘눈에는 눈’ 식으로 하는 야만시대의 보복행위입니다. 법과 국가는 국민의 보호자여야 합니다. 보복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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