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4월 12일, 전국 240여 개 스크린에서 한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한때 투자사에서 일방적으로 투자를 중단해서 완성조차 되지 못할 뻔했습니다. 거대 자본이 외면한 그 영화는, 지금은 폐간된 어느 영화 월간지 편집장과 그 잡지를 창간했던 영화평론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영화사를 세운 끝에 간신히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전편 격인 영화는 지난 1993년, 서울에서 단관 개봉만으로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사에 기록을 새로 쓴 바 있습니다. 소설가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 연작을 원작으로, 눈먼 소리꾼 송화와 배다른 남동생 동호 간의 연정이 근 30여 년의 세월을 타고 흐르는 동안의 사연이 굽이굽이 수놓은 이 영화의 제목은 <천년학>입니다. 이 영화는 올해 일흔두 살의 거장 임권택의 100번째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개봉에 앞서 마련된 행사 ‘<천년학>의 밤’에선 수많은 문화계 인사는 물론 정치인까지 참여해서 거장의 100번째 영화에 축하와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만에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에서는 이 영화의 교차상영을 결정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에 대해서 쓰려고 <천년학>을 보고 돌아오던 제가 전해들은 이 비보는 솔직히 오래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쾌했습니다. 멀티플렉스의 존재 이유는 좀 더 많은 영화를 상영해서 관객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아는 멀티플렉스는 장사가 잘될 법한 영화에 복수(複數)의 스크린을 제공하려고, 흥행이 잘 안 될 것 같은 영화를 빨리 내려 버립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업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할 가치고, 어떻게 영업할 것인가 하는 건 극장이 알아서 할 문제지만, 열 개 스크린에 달랑 두 편의 영화가 걸리는 일이 여름이면 비일비재한 수준이 되면, 이건 윤리 이전에 교양의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야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고, 영화를 보려면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요즘 관객은 극장을 먼저 정한 다음에 영화를 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었더군요. 그렇다면 극장이 자의적으로 어떤 영화를 더 많이 걸고 어떤 영화를 더 적게 걸 것인가를 결정해버리는 순간, 관객의 선택권 역시 극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겁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듯이, 극장은 점점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테마파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늘씬한 실루엣의 선남선녀가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 폼 나게 달려가서 콜라를 빨면서 자리에 앉으면, 여자가 얌전히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가운데 흩날리는 팝콘이 화면을 뒤덮는, 어느 멀티플렉스 극장의 로고 영상이 이를 멋지게 증명하죠. 그런 덕분에 ‘칙칙한’ 가족의 해체를 역설하는 <가족의 탄생>이나 <좋지 아니한가> 같은 영화는 개봉 한 달을 못 버티고 대부분의 스크린에서 내려갔습니다. 테마파크는 즐겁거나, 신나거나, 심지어 무서워도 되는데 진지한 사유는 환영받지 못하거든요.
제가 이 글을 쓰는 22일 오후 3시 기준으로 CGV 구로에서 상영하는 <천년학>을 보려면 새벽 2시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CGV 구로를 찾은 관객이 오로지 <천년학>을 보려고 간 것이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다른 영화를 선택하게 되겠죠. 뭐, 이야기하면 할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문제입니다. 제가 영화 산업 일선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들을 싸잡아서 욕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사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에는 저를 비롯한 영화 소비자의 책임도 만만치 않아요. 당장 보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사탕 같은 영화만 사랑한 우리 책임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이 칼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천년학>이 얼마나 좋은 영화인가에 대해서 간절하게 호소하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가장 가까운 <천년학> 개봉관을 찾아가시길 부추기는 것뿐입니다. 설령 제 비루한 글이 임권택 감독님께 바치는 찬사가 아니라 도리어 누를 끼치는 일밖에 안 된다 할지라도, 전 항상 그랬듯 제가 사랑하는 대상을 변호하고 찬미하고자 온 힘을 다할 따름입니다.
<천년학>이 있는 데/을 읽는 데 필수 불가결한 영화, <하류인생>
많은 분이
<천년학>을 읽어내고자 그 쌍둥이 형 격인
<서편제>를 복습하셨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저는 도리어 임권택의 아흔아홉 번째 영화,
<하류인생>에 주목했습니다.
<하류인생>은, 임권택이 작정하고
<장군의 아들> 연작에서 보여줬던 ‘다찌마리’ 액션을 선보이며 흥행에 대한 욕심까지 숨기지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아흔여덟 번째 영화
<취화선>으로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아 대내외로 임권택의 위상이 가장 높아졌던 시기에 나온 이 영화는 극장 흥행에서 참패했습니다. 청춘스타 조승우와 김민선을 데리고 찍은 이 영화가 왜 참패했는지… 분석은 많습니다. 감히 제가 왜일까 짚어본다면, 아마 ‘승리의 쾌감이 없는 영화’기 때문일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하류인생>은 알려진 것처럼 ‘원래 착한 놈’이었던 녀석이 세파에 휩쓸려서 나쁜 놈이 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작은 나쁜 놈이 나쁜 세월에 휘말려 큰 나쁜 놈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예요. 그 과정을, 임권택은 밀려오는 연민을 계속 걷어내며 냉정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말해봐야 뻔한 일은 더 보여줄 필요도 없다는 듯, 관객이 감흥에 젖을라치면 냉정하게 바로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지요. 감정이입할 시간조차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에게 도대체 감정이입을 할 수도 없거니와, 감정이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번번이 더러워지고 좌절해가는 과정을 간접 체험하는 일이니, 즐거움을 바라고 영화관에 들어온 관객에게 사랑받는 건 요원한 일이지요. 주인공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매력적인 안티 히어로도 아닌 이 이상한 영화에 관객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좀 오래 흘렀군요. 제가
<하류인생>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송화와 동호의 관계를 바라보는 임권택의 시선이 변화했다는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2003년에 출간된 정성일의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서, 임권택은 송화와 동호의 사랑하는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차마 그 관계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음을 시인합니다. 원작에서는 잠까지 함께 자는 사이인 송화와 동호는
<서편제>에서 서로 연정을 제대로 한 번 표현해보지도 못합니다.
<서편제>에서 남매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연습하는 것이 춘향가의 ‘작은 이 도령 섰는디’ 대목이라는 점을 두고, 정성일은 ‘두 사람이 어떤 점에선 아무 관계도 아니지만 동시에 근친상간으로도 보일 수 있는 우려가 있었을 텐데 균형을 어떻게 잡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임권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근데 이거는 유교적인 어떤 윤리관이 나한테 배어 있는 것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오. 물론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한 가족으로서, 우리가 양자를 들이더라도 이미 한 가족, 딸만 있는 집은 양자를 들일 것 아니오. 그러면 이미 가족으로 굳어지는 거요.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한 거지.”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권, 289페이지, 현문서가)또, 임권택은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유봉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한 것이 어쩌면 실제로 육체를 취하진 않았더라도, 송화를 이성으로 바라보진 않았을까, 송화를 이성으로 보고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화 속에서 확답을 피합니다. 영화의 창조주인 감독조차 과연 유봉이 송화를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임권택은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피합니다. 단지 어슴푸레한 느낌으로 넌지시 단서만 던져주고 말지요. 유봉이 송화의 머리를 올려주는 장면 하나만 넣어둔 임권택의 말을 다시 인용해 봅니다.
“이성으로서 송화를 느끼는 거를 찍었을 때에는 이게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추해질 것 같애, 이 느낌이. 그러니까 자꾸 어슴푸레한 느낌으로, 그것도 딱 한 번 나온다고, 머리 해주고 하는 것 말고는 거기는 너무 위험한 곳이 되어가지고 내가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이고.” (같은 책, 301페이지)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도달하고 싶어하는 어떤 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 끝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이냐 라는 것을 통해서 그 사람들의 입지를 높여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같은 책, 270페이지)에서 만들어진
<서편제>에서, 이런 관계에 대해 깊게 다룰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그것을 감당해 낼 수 없다고 판단했던 임권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천년학>에서는 얘기가 한참 달라집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10분이나 지났을까, 대뜸 송화를 두고 어린 동호와 용택이 주먹다짐을 하는 이 영화는 송화와 동호가 서로 그리는 감정이 ‘가족 간의 정’ 정도로 나이브하게 오독될 여지를 없애버립니다.
동호는 내내 송화를 생각하며 탄피로 반지를 만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쌀엿을 사며, 언젠가 송화의 소리에 길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빼어난 고수가 되고자 북채를 놓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화 중반, 중동 공사현장에 가려는 동호에게 송화가 ‘거긴 왜 가니’라고 묻자 ‘돈 벌어서 누나 소리 공부할 집 한 칸 지어주려고’라고 아무렇지 않게 답합니다. 그리고 동호는 대놓고 자신과 송화를 오누이로 맺어준 양아버지 유봉을 증오합니다. 임권택은 제대한 동호로 하여금 혁필을 하는 낙산거사를 찾아가서 울분에 찬 목소리로 ‘오랫동안 홀아비로 살아온 남자가 품을 법한 마음’이라며 유봉이 필시 송화의 눈을 고의로 멀게 해서 자기 품에 갇혀 있도록 했을 거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동호는 송화를 사랑합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과의 인터뷰에서도 임권택은 이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서편제>의 가장 큰 목적은 영상을 통해 소리가 보이게 하고, 소리를 귀로 듣게 함으로써 우리가 정말 소리의 감흥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잊혀져 가는 것을 우리 곁에 끌어다 놓자는 데 그 목표가 있었어요. 그런데 <천년학>은 소리를 오누이 사랑 이야기 안에다가 넣는 게 목표였죠. 오누이 간의 사랑 얘기에 딱 달라붙는 소리, 가사조차 달라붙는 소리를 같이 녹여서 아까 얘기했던 ‘극성(劇性)’을 높이는 쪽으로 사용한 것이죠. (중략) <서편제>는 그런 게 전혀 없었고, <천년학>에서는 그 문제(욕망의 문제, 정념의 문제)를 다루고 있죠. 제주도에서 만났을 때나 방 안에서의 장면이나 두 사람이 산하를 보고 다닐 때나 드러내놓고 강조한 건 아니지만, 정념의 문제, 욕망의 문제를 알게 모르게 넣었죠.” (<씨네21> 제598호, 84페이지)
배다른 오누이 간의 욕망의 문제, 정념의 문제를 다루기가 부담스러웠기에 의도적으로 피했던 임권택이
<천년학>에서는 정색을 하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원하고 그리워한 과정을 좇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저는 다시
<하류인생>을 생각합니다. 태웅은 승문의 아버지 일원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일원이 따라주는 차를 받으며 유사 가족으로 편입됩니다. ‘(이제부터) 혜옥이는 태웅이 누나야’라는 일원의 말에 ‘누님, 인사드리겠습니다’하며 넙죽 절하던 태웅은, 그러나 이내 혜옥에게 반지를 주면서 자신을 남자로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통금을 피해 들어간 여관방에서 혜옥을 불쑥 덮치는 태웅에게 혜옥은 큰 저항도 하지 않습니다. 태웅의 손이 치마를 걷어 올리려 하자 그제야 간신히 태웅을 뿌리치며 ‘너, 누나한테 뭐 하는 짓이야?’라고 말해 유사 남매의 도의를 지켜보려고 할 뿐, 결국은 태웅을 받아줍니다.
‘너, 누나한테 뭐 하는 짓이야?’라고 말해 봐도 소용없는 연정. 결국은 살을 붙이고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되는 그 욕망에 대해 임권택은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듯한 태도로 인정합니다. 욕망만을 원동력으로 삼고 질주해 온 야수 같은 사내 태웅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비로소 임권택은 ‘넘어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한 오누이 간의 정념을 긍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마음속 금기를 넘어, 역시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 송화와 동호의 욕망과 정념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전
<하류인생>과
<천년학>이 각기 아흔아홉 번째와 백 번째 영화로 맞붙어 있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리와 영상과 메시지의 삼위일체저는
<천년학>이 ‘임권택의 첫 번째 멜로’라고 말하는 혹자의 언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문법을 소리에 맞춰서 편집해내는 혁명적 시도를 감행했던
<춘향뎐>에서 임권택은 이미 남녀 간의 사랑을 진하게 다룬 바 있습니다. 아무리
<춘향뎐>의 주목적이 판소리 춘향가 소리의 제 맛을 극도로 살려 내고자 함이었다 해도, 다른 것도 아니고 춘향가를 원전으로 삼은 이 영화가 멜로영화가 아니라고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천년학>이 임권택의 첫 번째 멜로 영화인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은 - 어떤 면에선 불과 몇 년 전 과거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단기 기억상실증 탓도 있겠지만 -
<천년학>이 오누이 간의 사랑을 다루는 태도 때문입니다.
임권택은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송화와 동호가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차마 대놓고 표현할 수는 없었던 연정을 바라봅니다. 서로 간절하게 원하지만, 양아버지 유봉이 묶어놓은 오누이라는 윤리의 틀 안에서 주춤거리며 상대를 취할 수 없는 그 애절한 연정 말입니다. 두 사람은 평생을 서로 갈구하며 살아왔음에도, 그래서 북소리만 들어도 금세 상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원했음에도 한 번도 제대로 상대를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늘 다가서고 물러서길 반복하면서 바라만 봐야 하는 그 절절한 연정은
<천년학>을 임권택의 첫 번째 멜로인 것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강렬합니다. 솔직히 파릇파릇한 10대 아이들이 눈 맞아서 서로 육체를 탐하며 사랑놀음 하는 걸 보는 것보단, 원하면서도 가질 수 없는 욕망을 바라보는 것이 더 절절한 법이지요.
<천년학>은 거장의 100번째 작품이라서 위대하기 이전에, 쉽사리 누릴 수 없는 눈의 호사이기에 위대합니다. 단순히 화려한 화면이기에 눈의 호사가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화면에 수놓았기에 눈의 호사라는 것이요, 판소리가 지닌 감흥을 그대로 화면 위에 옮겨 놓는 데 성공했기에 눈의 호사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동호는 30여 년 만에 선학동 주막에 와서 잠을 청합니다. 그러면서 같은 방에서 잠을 청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지요. 회상 속에서 유봉과 어린 송화, 동호는 함께 한 이불 아래 누워 잠을 청합니다. 유봉과 함께 사이좋게 새타령을 부르는 송화와는 달리 등을 돌리고 누운 동호는 이불 속에서 발을 움직이죠. 동호의 맨발이 서서히 움직여, 송화의 여린 맨발에 살짝 닿는 순간, 그 살과 살의 맞부딪힘,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는 동호의 얼굴 클로즈업. 이 촉각의 기억은 모자람 없이 시각적 정보로 고스란히 번역됩니다.
이 비밀스러운 접촉의 기억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동호가 1978년 제주 애월로 송화를 찾아갔을 때 다시 한 번 상기됩니다. 난생처음으로, 두 사람을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단둘이 앉게 된 그 순간 말입니다. 송화가 끓여 준 라면을 먹으면서 동호는 송화를 바라봅니다. 카메라는 동호의 시선이 되어 송화의 목을 숨죽이고 바라보죠. 바로 다음 순간, 송화는 치맛자락을 내려 버선발을 슬쩍 감춥니다. 보통의 오누이라면, 치마 밑으로 드러난 버선발을 부끄러워 감출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 송화는 자신을 바라보는 동호의 시선을 느끼며 치마로 발을 감춥니다. 이 순간 송화는 어린 시절 자신의 발에 와 닿았던 동호의 발을, 자신의 살과 동호의 살이 부대꼈던 순간을 상기하는 겁니다.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동호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송화의 육체 역시 반사적으로 동호를 남자로 느끼는 거지요. 그리고 임권택은 그런 송화의 욕망을, 동시에 그 욕망을 눌러야 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그저 버선발을 치마로 감추는 그 단 한 장면으로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이어서, 동호가 중동으로 떠난다고 말하고는, 자신을 위해 점자 공부도 하고 라디오 드라마도 녹음하고 읽어줄 책도 구했노라고 하는 고백을 들은 송화는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지요. 이때 이 눈물은 송화가 동호에게 가진 욕망이 일순간 오누이라는 윤리의 벽을 무너뜨렸다는 징후입니다. 동호는 그 순간 망설입니다. 누이의 눈물, 누이의 손에 끼워진 ? 자신이 만들어 준 ? 반지, 이 순간 동호는 벌떡 일어나 신발을 신고 송화의 집을 떠납니다.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을 것이란 걸 동호는 알았던 거죠. 다음 날 둘은 오누이처럼, 하지만 한편으론 사랑하는 연인처럼 손을 잡고 제주의 오름을 오르내립니다. 동호는 송화의 눈이 되어 그 풍경을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송화를 안아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오는 것을 도와줍니다. 이 순간의 스침에도 두 사람은 떨려 합니다. 그리곤 송화가 동호에게 묻지요. ‘안 가면 안 되겠냐’라고 말입니다.
굳이 가겠노라는 동호의 대답을 들은 송화는, 들판에 앉아서 춘향가의 ‘갈까부다’를 부릅니다. 이제 곧 멀리 떠날 동호에게, 사랑하는 임이 가시는 곳이 그 어디든, 천 리라도 만 리라도 따라가고 싶어하는 춘향의 마음이 절절한 이 대목을 불러주죠. 분명히 송화의 ‘안 가면 안 되겠냐’라는 말은 동생을 걱정하는 누이의 말이 아니라,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연인의 말이었던 겁니다. 마음을 확인한 순간 떠나보내야 하는 무심한 상황, 하지만 이 조심스러운 누이는 그 마음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그저 소리로 대신할 따름이지요. 제주의 절경은 무심하게도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다가올 헤어짐 때문에 더욱 무상합니다. 판소리의 가사와, 주인공들이 처한 서사의 맥락, 그리고 무참하리만큼 아름다운 절경이 만나 삼위일체를 이루는 그 마법의 순간은 거장이 아니고선, 동시에 영화 인생을 걸고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진한 사람이 아니고선 쉽게 보여줄 수 없는 경지입니다.
그리고 간곡히 드리는 말씀전 이 글을 쓰면서 임권택 개인이 걸어온 길이라거나 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피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세월의 세 곱절을 살아온 한국 영화의 산 증인에 대해서 저 같은 어린애가 쉽게 말하는 건 사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요. 임권택에 대해서 깊이 있게 말하고자 정성일은 현존하는 임권택의 영화 전 편을 봤고,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영화는 그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아흔여덟 편의 영화를 모두 접했죠. 그런데 제가 겨우 영화 몇 편 본 것으로 임권택에 대해서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분명히 오만일 겁니다. 그래서 전 되도록
<천년학>에 한정하여 이 글을 쓰려고 노력했지요.
하지만 사실
<천년학>이 이룬 경지에 대해서도, 제가 이루 다 설명할 재간은 없습니다. 이미 많은 평론가와 기자가 저보다 먼저
<천년학>이 100번째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걸작이기에 꼭 봐야 한다면서 상세한 설명을 한 바 있지요. 그 까닭도 만만치 않지만, 더 큰 이유는 제가
<천년학>에 대해서 백 번을 거푸 이야기해 봐야 단 한 번의 관람이 주는 감흥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어떤 의미에선 역대 최고로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글입니다. 전 지금 독자 여러분께 여러분의 시간을 쪼개서, 발품을 팔아서
<천년학>을 보시라고 간곡하게 부추기는 겁니다.
물론 수많은 멀티플렉스가 편법으로 교차상영을 걸어놓고는 스크린쿼터를 채웠다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작금에,
<천년학>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좀 더 먼 길을 나서야 하실 테죠. 하지만 전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거장의 100번째 작품을 이렇게 푸대접하는 시대에 순응하지 말자고, 채 접해보지도 못한 채 또 한 편의 영화가 스크린에서 소리 소문 없이 무력하게 내려가는 것을 바라만 보지 말자고 말입니다. 임권택의 작품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혹은
<천년학>을 기대하지 않는 관객 여러분께도 마찬가지로 말씀드립니다. 임권택은 작품마다 매번 새롭게 변하는 감독입니다.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입을 빌려 고백했던 것처럼, 그는 늘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앞서 찍은 영화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예술가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비판하려면 먼저 그의 작품을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의 예전 영화의 특징을 집어서 비판하는 순간 임권택은 그것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칼럼의 제목 <땡땡의 요주의 인물>에서 ‘요주의’라는 단어를 한문으로 풀어보면 要注意, 즉 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도 관객을 만나서 소통을 이루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입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영화
<천년학>에, 임권택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차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상품으로만 소비되는 시대에, 그의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여서 그것이 하나의 의미가 되고 사유의 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번 <땡땡의 요주의 인물>은 100번째 영화를 완성하고도 101번째를 향해서 전진하는, 늘 새로워지기에 가장 젊은 감독 임권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