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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뮤지컬 <첫사랑>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게도 틈틈이 과거에 ‘만약’을 끼워 넣고 생각을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그 생각 안에는 누구보다 첫사랑의 그(그녀)를 자주 대입한다. ‘어쩌다 헤어졌을까?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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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후미오가 쓴 『연애중독』이라는 책이 있다.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참으로 조용히 숨죽여 살아가는 미나즈키와, 그런 그녀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결코 마음을 내려놓을 자리는 허용하지 않는, 세상 모든 여자를 사랑하는 이츠지 고지로가 나오는 작품이다. 어느 날, 이츠지가 미나즈키에게 묻는다. “생각해본 적 있어? 어째서 결혼까지 한 남자하고 헤어지게 되었는지?” “항상 생각해요. 그렇지만 모르겠어요….” “그럼, 이제 그만 생각해라. 과거에 ‘만약’이라는 말을 끼워 넣지 마.”

그렇구나. 그만 생각해야 하는구나. 세상 모든 일을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게도 틈틈이 과거에 ‘만약’을 끼워 넣고 생각을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그 생각 안에는 누구보다 첫사랑의 그(그녀)를 자주 대입한다. ‘어쩌다 헤어졌을까?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탄탄한 스토리로 엮인 뮤지컬 <첫사랑>

한적한 바닷가.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란 해수(조정석)와 선이(해이)는 자연스레 연인이 된다. 편안하게 사랑을 키워가고픈 선이와 달리 해수는 바다에 대한 열망이 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지만, 결국 운명은 해수를 바다로 끌어들이고 두 사람의 거리는 애틋한 사랑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시는 닿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선이는 기다린다. 해수가 바다에서 숨을 거두고 해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인석이 해수만큼 자란 지금도, 예전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놓치고 괴로워하는 선이와 해수

2007년 기대를 모은 창작뮤지컬 가운데 하나인 <첫사랑>이 막을 열었다. ‘조정석’이라는 신예 스타를 앞세운 보송보송한 멜로드라마일 줄 알았더니, 웬걸? 애써 묻어둔 첫사랑의 만남과 헤어짐, 후회와 풀리지 않는 의문의 조합을 들쑤시며 끝끝내 닭똥 같은 눈물을 거둬가고 말았다. 영화든 드라마든 제아무리 잘 나가는 톱스타를 내세워도 스토리가 부실하면 허술함을 감출 수 없는 법. <첫사랑>은 창작뮤지컬의 맹점인 스토리의 기초공사를 기대 이상으로 꼼꼼히 처리해 감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빈약한 무대를 무마하는 배우들의 멋진 연기

이 미소년에게 이런 멋이 있을 줄이야! 해수 역의 조정석. 올해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 배우라고 하더니, 일단 곱상한 얼굴에 미끈한 몸매로 객석(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다)의 불타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뭐랄까? 그의 반짝거리는 눈처럼 몸에서 빛이 난다고 할까? 쳐다보기만 해도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노래는 왜 이렇게 잘 부르는가! 우렁차면서도 호소력 있는 가창력에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풋풋하고 다정다감한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다.

떠오르는 뮤지컬 스타, 해수 역의 조정석

많은 가수가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지만, 더블 캐스팅이라면 뮤지컬 배우의 공연을 보는 편이다. 연기는 물론이고 무대에서의 동작이나 창법 면에서 스케일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해이 역시 연기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해이의 고운 음색이 선이와는 잘 어울렸다. 1막보다는 2막에서, 그러니까 해수와 선이가 함께 사랑할 때보다는 헤어져 다시는 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시린 사랑을 노래하는 해이의 감성은 역시 가수로서 진가를 보여줬다. 막판, 소극장 안이 훌쩍훌쩍 눈물 훔치는 소리로 가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해수 아빠(김인수)와 선이 엄마(홍성경) 등을 맡은 중견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도 일품이다.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해온 이들은 억척스러움, 능청스러움, 무뚝뚝함 등 각각의 캐릭터를 확실히 살리며 연기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최 사장 역의 김성기는 느물느물한 코믹연기로, 마지막 무대 인사 때 오히려 주인공들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덕분에 무대 전환이 거의 없었던 빈약한 소극장 무대는 배우들의 호연과 화려한 하모니로 충분히 가려졌다.

느물느물한 연기로 좌중을 압도한 김성기

시간을 되돌리면… 첫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뮤지컬 <첫사랑>을 보고 나면 다들 자신의 첫사랑을 되돌아 볼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문제의 결정적 순간에 ‘만약’을 끼워 넣고 되물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사람을 놓치지 않았을까? 그러나 시간을 늦출 수는 있을망정 결과는 같지 않을까? 흔한 말로 어차피 인연이 거기까지라면 말이다.

그래도 첫사랑의 그 시절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래, 만약 첫사랑의 마지막 날로 되돌아간다면,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처럼 원망 가득한 눈으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지 말고 <첫사랑>의 선이처럼 무조건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무슨 말을 하든 말이다.

앗, 그러고 보니 과거에 ‘만약’을 끼워 넣는 오류를 또 범하고 말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첫사랑은 꿈처럼 이룰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너만을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같은 말은 어느 순간부터 멀게만 느껴지지 않던가. ‘너만을 사랑해, 예전보다 더 아프게. 너만을 사랑해, 언제까지나’ 해수와 선이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메아리친다. 아련한 첫사랑의 시린 추억, 창작뮤지컬 <첫사랑>의 일등 성공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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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첫사랑>
2007년 3월 27일 ~ 6월 17일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1관(구 신시뮤지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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