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아무 이유 없어!"라는 말의 의미

“아~~무 이유 없어!”라는 죄민수의 유행어를 들으면 맥이 풀립니다. 벌써 저 소리가 클리셰가 되어 버렸구나. 전 사람들이 혁명가적인 뜨거운 감정을 담아 ‘아무 이유 없어’를 외쳐댔던 당시를 기억합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아~~무 이유 없어!”라는 죄민수의 유행어를 들으면 맥이 풀립니다. 벌써 저 소리가 클리셰가 되어 버렸구나. 전 사람들이 혁명가적인 뜨거운 감정을 담아 ‘아무 이유 없어’를 외쳐댔던 당시를 기억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무 이유 없어’ 또는 ‘아무 의미 없어’는 꽤 의미 있는 선언이었어요. 유익한 선언이기도 했고요.

수많은 예술가에게 그건 정말로 진실을 담은 설명이었습니다. 잭슨 폴락에게 “당신 그림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답변은 “아무 의미 없어!”일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예술작품은 문장으로 완성할 만한 의미가 없습니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라는 의미를 위해 만들어졌나요? 그 작품이 과연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미를 캤습니다.

안전한 구상화의 영역을 떠난 20세기 미술가들은 툭하면 그런 질문을 받았죠.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요?” 역시 의미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 코로의 풍경화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면서는 작품의 의미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미술가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솔직한 사람들은 “아무 의미 없어!”라고 외쳤고 교활하고 장삿속이 밝은 예술가들은 거기에 마치 무슨 의미가 있는 양 요란한 장광설을 쏟아 부었지요.

“아무 이유 없어!”는 “아무 의미 없어!”보다 조금 더 급진적이었지만 역시 같은 부류의 선언이었습니다. 하긴 “이 작품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는 쉽게 따분해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물론 많은 예술가가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파시즘을 공격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성적 욕망을 만족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믿음을 설파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돈 때문에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욱 많을 거고요.

하지만 그건 의무가 아닙니다. 세상엔 ‘목표’와 ‘이유’ 없이 태어난 수많은 예술작품이 있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나머지 이유는 그냥 부차적이죠. 너무나도 당연한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은 여전히 그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요구했습니다.

MBC <개그야(夜)>의 죄민수

사실 죄민수의 ‘아무 이유 없어!’나 ‘아무 의미 없어!’는 의미만 따진다면 모두 상당히 진지하고 성실한 답변입니다. 정말 그의 그런 행동은 의미가 없으니까요. 물론 여기엔 그 근본적인 의미를 덮는 얇은 층이 몇 겹 있습니다. 죄민수는 그런 초월적인 답변을 하면 자신이 쿨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고, 죄민수를 연기하는 코미디언 조원석은 그런 식으로 쿨해 보이려는 행동이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의 캐릭터에게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조원석에게는, 죄민수의 ‘아무 이유 없어!’나 ‘아무 의미 없어’는 분명한 예술적인 목적을 위해 계산되고 통제된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거죠.

얼마 전, 길가는 사람들에게 BB탄을 쏘다 상해를 입힌 남자가 1년 만에 체포되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무 이유도 없어’라는군요. 나름대로 솔직한 답변이겠죠. 정말 그 남자는 순전히 재미있어서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겁니다. 그것도 분명히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는 그게 이유라는 걸 모르고 있을 테니 여전히 정직한 답변인 거죠.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비슷하지만 더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같은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더 많으면 그 의미는 더 커지죠. 그건 타인의 감정과 입장에 무감각하고 사회적으로… 아니, 뭐 하러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놔야 하죠? 한마디로 위험한 사이코패스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아무 이유 없어’는 더 이상 진지한 예술가의 정직한 답변이 아닙니다. 뇌의 나사가 몇 개 빠졌는지 보여주는 증세인 거죠.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