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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꼴이 추레하고 처량한 날 읽는 책

쥐도 새도 모르게 감성적이고 우아한 슬픔 모드로 전환하고자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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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꽃피는 계절인데 너무 추워 속상하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다” 이 말을 꽃나무 밑에서 봄꽃에 바치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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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도 새도 모르게 감성적이고 우아한 슬픔 모드로 전환하고자 읽는 책


한편으로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던 그 앳된 날의 충격이란? 공산주의란 망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문장에서 조르바의 이 문장, “결혼이야기는 맛대가리가 없어요. 나는 가위를 들고 다니며 치모를 수집했어요. 검은 털, 금빛 털, 붉은 털, 심지어는 흰털도 더러는 있었지요. 꽤 많이 모아 그걸로 베갯속을 채웠지요. 나는 이걸 베고 잤지요. 하지만 겨울에만. 여름에는 이걸 베고 자려면 너무 더워요, 그런데 좀 지나고 나니까 그 짓도 심드렁해졌는데, 아시겠지만 냄새도 나고 해서 그만 태워버렸지요. 히히히. 그게 내 장부였던 셈이죠”로 넘어가는 순간, 나는 머릿속을 궁금해 하던 애송이에서 베갯속이란 베갯속은 다 의심해 보고야 마는 여자애가 돼버렸던 것이니, 그때의 감정은 ‘내가 모르는 세계는 아직도 많구나! 아, 역시 인간은 끝도 없이 배워!야 하는구나!’ 하는 한숨 섞인, 그러나 의욕적인 슬픔이었다.

영화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 1964>의 한 장면

“크레타 섬의 큰 마을에 사시던 나의 외조부에겐 매일 저녁 등불을 들고 거리를 다니면서 혹 갓 도착한 나그네가 없나 찾아보는 버릇이 있었다.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는 안락의자에 앉아 길쭉한 터키식 장죽에 불을 붙이고는 나그네에게 지엄한 분부를 내렸다.

-말하소!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요?
-자네 직업이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자네가 본 도시와 마을이 무엇 무엇인지 깡그리.

이렇게 되면 나그네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주섬주섬 주워섬겼고 우리 외조부는 안락의자에 앉아 귀를 기울이며 이 나그네를 따라 여행길을 나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 크레타 해안에서 나도 외조부의 그런 기벽을 완성하고 있다. 나 역시 등불을 들고나가 나그네 하나를 발견한 셈이다.

-이야기하세요, 조르바.

조르바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산이, 숲이, 냇물이, 게릴라가, 부지런한 여자들과 건강한 사내들이, 스물한 개의 수도원과 아토스 산이, 무기창고가, 엉덩이가 펑퍼짐한 그 지방 게으름뱅이도 나타난다.”


이건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명백하게 우리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점잖고 조용한 나의 아버지는 딱 한 가지, 술버릇만큼은 어울리지 않게 사교적이어서 이미 얼큰해질 대로 얼큰해진 사람들을 밀고 끌고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주정뱅이의 어린 딸인 나는 그에 걸맞게 포도주 주전자 속의 쭈글쭈글한 포도를 집어먹어가며 잠기운인지 술기운인지 모를 몽롱한 힘과 싸우며 그 자리에 끝까지 앉아 있곤 했다. 그런 밤이면 종종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술자리 끝에 만약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고 일어설라치면 나의 고매한 내성적인 아버지는 쏜살같이 벌떡 일어나서는 그 사람의 손목을 있는 힘껏 비트는 것이었다. 그 손목 힘이 어찌나 센지 사람들은 모두 손목을 비비며 주저앉고 말았고! 그러면 이야기는 또 한없이 이어졌다. 그 한없는 이야기를 우리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도 없이 참으로 고요하게 듣고만 있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 구절을 읽다 보면 당시의 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방앗간이, 정미소가, 벼멸구가, 만경강 망둥이가, 주인이 죽던 날 집을 나? 진돗개가,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백발인 아이가, 트럭을 몰러 전국을 돌아다니던 옆집 아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던 우리 아버지의 옆모습이 의미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몹시 열중하다 보면 우리에게 버릇 들게 한 것, 예사로 보아 넘겼던 것이 무서운 수수께끼로 떠오를 수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인생은 태초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다시 던져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못했고, 매일 같은 직장에 출근했던 성실한 가장이던 우리 아빠가 자기 인생에 대해 지루하다거나 환멸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을 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 역시 이야기가 풍성한 나그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손목을 비틀며 이야기를 요구하는 것이 일상을 견디고 세상을 상상하는 그만의 방식 아니었을까? 그 많은 밤의 냄새 나는 곤드레만드레 술자리야말로 이야기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궁금하게 하는 마술적인 자리가 아니었을까?

성탄절 날 조르바와 오르탕스 부인을 널찍한 침대가 있는 조그만 방에다 몰아넣고 바닷가를 산책하던 두목은 파도를 희롱하며 행복에 겨운 나머지 이렇게 중얼거린다.

“진정한 행복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이 모든 것이 기적적으로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이 문장은 제목이 행복과는 완전히 반대인 또 다른 글을 연상케 한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그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글이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우리에게 손을 내밀기는 하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 때,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회색의 빛깔,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있는 비둘기의 깃,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 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공감해마지 않는 나머지, 읽는 순간 저마다 애수로 눈물을 글썽일 수도 있는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모든 요소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바뀔 수도 있는 셈인데 그 조건은 단 하나! 모든 것이 기적적으로 하나로 동화되기만 한다면.

성탄절 날 모두 잠든 바닷가를 홀로 걸으며 나는 외롭다거나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대신, ‘진정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하는 힘이란, 돌려 말하면 객관적으로 초라한 날, 주관적으로 감성적이고 우아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힘과도 같은 것이니, 그 순간의 힌트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만물이 기적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 (현실적으로는 관심이 내 몸을 떠나는 것부터. 내 슬픔이 남의 슬픔과 조화를 이루는 것.) 그리하여 인간이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되나니 그것은 바로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인 것이다(남들이 뭐라 하든 자유롭다는 의미다.)

어느 날 조르바는 탄광사업에 진척이 없자 풀이 죽어서는 두목에게 용기를 달라고 말을 한다.

“그저 해나가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남들은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지만 그저 그건 남의 일을 꼬치꼬치 캐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토마토나 집어던지며 손가락질하지 않기 위해 하는 말인 거죠.”

기죽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위로의 말은 ‘그저 지금처럼 해나가라!’라는 걸 난 바로 이 책에서 배웠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건 그렇고 꽃피는 계절인데 너무 추워 속상하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다” 이 말을 꽃나무 밑에서 봄꽃에 바치고 싶었는데.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시간에 비가 내부의 슬픔을 일깨운다는 것은 얼마나 관능적으로 즐거운 일인가? 나는 이 말을 어렴풋이 몸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말을 이렇게 바꿀 줄도 안다. 부드럽게 벚꽃 날리는 시간에 벚꽃이 내부의 슬픔을 일깨운다는 것은 얼마나 관능적으로 즐거운 일인가? 올해의 벚꽃이 지난해의 벚꽃만 못한 것은 봄날 공기가 덜 달콤해서인가? 내가 덜 관능적이어서인가?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이 순간 자네 뭐하나?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시게.” 이렇게 말하는 조르바의 눈과 단단한 몸으로 열렬히 봄을 기다린다. 꽃과 나밖에 없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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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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