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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기다린 감동의 무대, 뉴 트롤즈 첫 내한공연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됐던 두 세계, 바로 클래식과 록을 멋들어지게 접목한 뉴 트롤즈(New Trolls). 그들이 드디어 국내 무대에 올랐다. 다행히 무대는 체육관이 아닌 LG아트센터에 마련돼 사운드 면에서는 일단 마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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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유독 음악을 좋아했던 오빠가 처음 들려줬다. 록보다는 클래식을 좋아했던 오빠에게는 격한 사운드가 더욱 비장하게 들렸으리라. 대학 때 유독 음악을 좋아했던 그 사람도 이 노래를 들려줬다. 클래식보다는 록을 좋아했던 그에게는 부드러운 선율이 더욱 외롭게 울렸으리라. 나에게 그들의 음악은 힘겹게 버텨왔던 감정의 축을 산산이 무너뜨리는 존재였다. 그래서 존재의 참을 수 없는 버거움을 느낄 때마다 나는 볼륨을 한껏 높여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시원스레 목 놓아 울었다.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됐던 두 세계, 바로 클래식과 록을 멋들어지게 접목한 뉴 트롤즈(New Trolls). 그들이 드디어 국내 무대에 올랐다. 다행히 무대는 체육관이 아닌 LG아트센터에 마련돼 사운드 면에서는 일단 마음을 놓았다. 전성기가 지난 것은 한참 전이고, 이제 멤버들이 할아버지가 된 뉴 트롤즈 공연에 과연 좌석이 다 찰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당일 공연장은 보란 듯이 새까맣게 채워졌다. 특히, 다른 공연과는 달리 나이의 무게가 느껴지는, 게다가 홀로 자리를 꿰찬 남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웬만해서는 혼자 공연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리라.

여부가 있겠는가? 환갑을 훌쩍 넘긴 뉴 트롤즈 원년 멤버, 비토리오 데 스칼지와 니코 디 팔로, ‘라떼 밀레’의 드러머인 알피오 비탄자 등이 무대에 올라 ‘Nella Sala Vuoto’를 연주하는데, 음악은 둘째 치고 반가움과 야속함이 뒤엉켜 무턱대고 울컥 뜨거운 게 올라온다. 무대 뒤쪽에는 은발의 연주자들이, 앞쪽에는 그보다는 훨씬 젊은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6명의 멤버가 선사하는 열정적인 연주와 목을 젖히며 내지르는 고음의 하모니에 ‘Shadow’에 이어 ‘Let it be me가 흐를 즈음, 이미 객석은 무아지경에 빠졌다.

클래식과 록의 멋진 만남

이번 무대는 특히 뉴 트롤즈 Concert Grosso 시리즈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No.3의 세계 초연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2부에서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15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No.3의 7개 악장을 감상할 수 있었다. 클래식의 부드러운 선율, 록의 거친 사운드, 무대 왼쪽의 오케스트라와 오른쪽의 록 밴드가 한 번씩 주고받다 격정적으로 섞이며 몰아치는 그 절묘한 조화, 그 환상의 하모니. 스칼지가 한 곡 한 곡 소개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마치 천상의 연주를 몰래 훔쳐 듣는 듯 벅찬 감동에 힘찬 박수와 큰 함성으로 답했다.

특히 ‘Cadenza Cello’는 뉴 트롤즈의 음악적 감성이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케 한 명곡이었다. 또한 Stefano Cabrera의 멋진 첼로 연주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첼로 솔로로 시작해 록 사운드를 입히고 다시 첼로 솔로로 마무리할 때까지, 그는 쉴 새 없이 활을 움직인다. 마치 새 건전지를 넣은 자동인형처럼 한 번도 쉬지 않고, 느려짐도 없다. ‘클래식과 록의 만남’이라는 뉴 트롤즈의 실체는 더욱 빛났으며, 객석에서는 탄성이 이어진다.

무대는 Concert Grosso No.1으로 이어져 ‘Allegro’와 ‘Adagio(Shadow)’ ‘Cadenza’까지 울려 퍼졌다. 이쯤에서는 모두 자제력의 한계를 느낀 듯하다. 내 왼쪽에 앉은 홀로 온 남성은 일어섰고, 오른쪽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던 정장 차림의 두 남성도 급기야 ‘브라보’를 외쳤다. 아침 6시에 방송이 있어 절대 소리 지르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했던 필자도 결국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3층 맨 앞자리였는데, 난간이 없었다면 무대로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객석의 열기가 너무 치솟았는지(끝장 분위기이긴 했다), 스칼지는 “We have more…”라며 다소 난감한 웃음을 건네고 Concert Grosso No.2의 곡을 마저 선사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무대였으니 막을 내린들 팬들이 꿈쩍할 수 있었겠는가. 불까지 꺼져 캄캄한 공연장엔 말없이 우렁찬 박수만이 오래오래 이어졌다. 많은 공연장에 다녔지만 이렇게 멋진 분위기는 처음이다. 팬들의 환호에 결국 밴드는 다시 무대에 올라야만 했다. ‘Aadagio’와 ‘Cadenza Cello’ 등을 연주해도 객석에서 물러남이 없자, 스칼지는 “One more?”라고 즐겁게 물은 뒤 ‘시간을 좀 달라’고까지 했다. 결국 네 번의 커튼콜까지 뉴 트롤즈는 3시간 20분이라는 긴 시간을 무대 위에서 팬들과 함께했다.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인 백발의 스칼지

그러나 절대적으로 안타까운 이 마음은 지금도 달랠 길이 없다. 클래식 파트가 약했던 것이다. 일단 전체적인 힘이 부족했고 음량 차도 커, 사운드가 빈약했다. 뉴 트롤즈의 곡은 현악 파트가 록 사운드를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편성돼 있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소리가 묻혔다. 게다가 곡에 대한 이해도 많이 부족했다. 주최 측은 한 달 전에 구성된 프로젝트팀이라고 하지만, 뉴 트롤즈 특유의 꾸밈 많고 기교적인 현란한 연주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또한 욕심일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다 풀어헤치는 우울의 절망감도 느낄 수 없었다.

특히 ‘Cadenza’(분명히 필자처럼 ‘Adagio’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를 연주할 때 퍼스트 바이올린은… 처음에는 연출인 줄 알았다. 조금 지나서는 재해석인 줄 알았다. 그러나 둘 다 아니었다. 박자마저 놓친 그의 연주는 모두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다음날 공연에서는 급기야 연주자가 바뀌었다. 외국 뮤지션과 협연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혹시 그 곡에 바이올린 솔로가 얼마나 중요한지조차 몰랐던 것은 아닐까 하는 원망이 사무친다.

흔히 뉴 트롤즈 음악에 너무 빠져들지는 말라고 한다. 그만큼 우울하고 허무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번 무대는 무척이나 열정적이었고, 아기자기했다. 스칼지는 시종일관 함박웃음을 지으며 플루트에 피아노, 건반을 오가며 근사한 보컬까지 선사했고, 기타의 Andrea Maddalone은 현란한 속주에 목 뒤로 기타를 돌려 연주하거나 이로 뜯는 화려한 무대 매너로 객석을 한껏 흥분케 했다. ‘IL Treno’에서 ‘칙칙폭폭’ 기차 소리를 내던 기타, 신들린 듯한 드럼, 품위 있는 첼로 연주까지. 진정 무한 감동의 무대였다.

네 번의 커튼콜, 뮤지션도 팬들도 감격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래전 노래에 마음이 더 크게 울리는 것은 그 시절의 추억이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제 내 곁에는 그때처럼 뉴 트롤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다.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외로움이라면 나는 아주 오랜만에 외롭지 않았다. 천여 명의 사람들과 울고 환호하며 벅찬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망해본다. 부디 뉴 트롤즈가 다시 오기를, 언젠가는 그 시절의 그들과 ‘Cadenza Cello’를 함께 들을 수 있기를.

뉴 트롤즈 내한공연
2007년 4월 4일 ~ 5일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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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 - Concerto Grosso Per1.2
New Trolls 노래 | 굿 인터내셔널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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