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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대한 고정관념과 판타지

정유미를 응원하느라 <케세라세라>를 보는 중이죠. 엄청 재미있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넘어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미니시리즈에서 제 관심을 끄는 건 정유미 캐릭터와 관련된 연애담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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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를 응원하느라 <케세라세라>를 보는 중이죠. 엄청 재미있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넘어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미니시리즈에서 제 관심을 끄는 건 정유미 캐릭터와 관련된 연애담이 아니에요. 아마 정유미는 이규한이나 에릭과 연애를 하거나 말거나 하겠죠. 엄청 대단한 결말을 준비해두고 있다면 모를까, 이 러브라인엔 별 관심이 가지 않아요. 그 과정이 너무 뻔하니까. 하지만 정유미와 이복동생 이은성의 관계는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더군요.

이은성 캐릭터는 자신에 대한 이복언니의 감정을 일종의 콩쥐 콤플렉스로 설명하던데, 그 무심한 태도 때문에 더욱더 흥미가 가더라고요. 과연 이 자매를 연결하는 정서적 힘은 어떤 기반에 바탕을 두었을까? 그건 동생이 치명적인 병을 앓는 동안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고 변형될까? 그건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고 전 그걸 더 보고 싶은데… 아마 제가 기대하는 것만큼 시리즈에서 그려지지는 않을 겁니다. 남녀 간의 연애가, 슬쩍 어긋난 가족의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니까.

<케세라세라>의 은수(정유미)와 이복동생 지수(이은성)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시사회에서 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생각납니다. 전 작정하고 자기 인생을 망치는 이 마츠코라는 캐릭터를 동정하기보다는 분노했는데, 그건 이 캐릭터의 행동이 용서할 수 있는 단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자길 멸시하고 구타하고 괴롭히는 남자들을 생각 없이 따라다니는 건 이해해줄 수도 있어요. 그런 것도 병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사랑이 정말로 필요한 병약한 동생과, 자신을 끝까지 돌봐주고 조건 없는 우정을 퍼부어주는 친구를 그 같잖은 남자와 자존심 때문에 버리고 달아나는 그 사람의 모습은 차마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외로움이니 사랑과 관련된 주저리주저리 변명도 통하지 않아요. 그 두 사람은 마츠코에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었고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자포자기로 외롭고 비생산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영화 속의 (소설은 안 읽었으니 거기선 어떻게 그려졌는지 전 모르죠) 마츠코가 그걸 몰랐던 건 이성애 연애가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굶주림의 유일한 해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겠죠.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한 장면

연애에 대한 사람들의, 그리고 매체의 고정관념과 판타지는 심각할 정도로 짜증나는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그건 중요한 것이죠. 그를 통해 인간이라는 동물이 종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건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에 매료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인간이 번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외의 다른 것도 필요합니다. 그건 가족 간의 애정일 수도 있고 친구 간의 우정일 수도 있고 일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죠. 이들은 모두 연애를 넘어서 훌륭한 드라마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습관적으로 연애에 밀려요. 연애는 필수고 의무라는 사회적 강요가 온갖 매체를 통해 사람들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건 솔직히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강요와 협박을 통해 세뇌되지 않았다면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우울증을 주입하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의 가능성을 빼앗으니 말이죠. 생각해 보니 위에서 예를 든 마츠코도 그런 세뇌의 희생자였음이 분명합니다. 무조건 그 사람을 탓할 수만도 없겠네요.

이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은 <케세라세라>에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거쳐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넘어갑니다. 얼마 전에 이 시리즈에서 서민정은 같은 학교 교사 이민용과 나누던 연애를 접었죠. 아직 미련이 남은 모양이고 이야기도 더 끌어갈 것 같긴 하지만 이 커플의 미래는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허우대만 멀쩡한 골빈 제자 윤호와 진짜 연애를 할 수도 없는 거고요. 아주 새로운 길을 뚫지 않는 한, 서민정의 러브라인은 막혀 있습니다. 저랑 만난 몇몇 사람은 이를 캐릭터에 대한 사형선고쯤으로 받아들이더군요.

하지만 정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러브라인이 시트콤 캐릭터의 유일한 존재이유여야 한다는 법은 또 어디 있답니까? 왜 서민정 캐릭터에게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처음부터 부인해야 하는 거죠? 최근 들어 가장 재미있었던 서민정 에피소드는 연애와 거의 관계가 없었고 지금 하이킥이 지지부진한 것도 다 그 느려터진 러브라인들 때문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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