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입니다. 다들 안녕하셨는지요. 저는 조금 우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차례 연속으로 도올 김용옥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언급한 게 화근이었나 봅니다. 어떤 분들 - 어디 소속이시고 어느 편이신지 여기서 공개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 이 ‘기독교와 도올 중에서 어느 편을 들 것이냐. 인기에 영합하려고 일방적으로 어디 편을 들었다간 좌시하지 않겠다’라는 요지의 메일을 보내셨더군요.
기가 죽었다거나 겁을 먹었다거나 한 건 아닌데, 기분이 좀 많이 안 좋았습니다. 제가 CQ에서 쓰는 글이든, 채널예스에서 쓰는 글이든 종종 메일이나 쪽지로 항의 의견을 받을 때가 있어요. 제 글은 대체로 객관보단 편파적인 주관에 의존해서 쓰는 글이고, 그 글을 읽으신 독자들의 견해가 저와 심각하게 다르면 항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무례한 메일이라면 읽고 기분이 좀 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항의가 독자의 정당한 권리라는 사실까지 망각할 정도로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이건 아직 쓰지도 않은 글에 대해 흡사 사전 검열을 하시겠다는 거나 다름없잖습니까. 제가 누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사전에 원치 않는 검열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더군요.
글을 쓸 때 교단 쪽도 도올 쪽도 편들어 줄 생각이 없었는데, 그 메일을 보고 나니 메일 보내신 분들 쪽에 박정한 방향으로 글의 방향이 기우는 걸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관두기로 했습니다. 글 쓰는 게 너무 구차해져서요. 저도 자료 조사한답시고 구입한 책값이 만만치 않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다음에 누구를 쓸지 미리 예고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는 실망을 끼쳐드려서 죄송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더 성의 있는 글로 찾아뵙는 것만이 기대에 보답하는 일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묵묵히, 열심히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변명과 투덜거림은 이 정도로 해두고 이번 호 주인공에 대한 글로 넘어가지요.
표정이 살아있는 배우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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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제작발표회장에서 | |
<주몽>이 끝나고, 월화드라마 시간대를 차지하려는 각축전이 치열합니다. 시청자의 간택을 받으려는 드라마끼리의 경쟁을 보는 건 즐거워요. 만드는 사람들이야 죽을 맛이지만, 서로 경쟁하면서 더 좋은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데 보는 사람 처지에서야 두 손 들어 환영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드라마를 보고 계세요? 저는 그 시간에 여전히 MBC를 봅니다. KBS의 <마왕>과 저울질을 좀 했습니다만, 일단 첫 주는 <히트>를 보기로 했어요. 형사 장르에 대한 애정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저인지라, 모자가 나란히 앉아서 시청하곤 합니다. 날마다 피부 관리를 받은 티가 역력한 고현정이 강력반 형사라는 것부터 CG티가 적나라한 헬기 장면까지 부담스러운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리니지’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고구려군 강철 갑옷도 참았는데 이 정도야 약과죠. 제 비위의 기초 체력을 단련해 준
<주몽>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쨌거나, 아직은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자기들도 뻔하다는 걸 아는지 캐릭터의 입을 빌려 ‘꼭 영화 같잖아. 그것도 무슨 미국영화’라고 고백하더군요. 고현정의 연기 톤도 조금은 더 방향을 다듬었으면 좋겠어요.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그래도 아직 캐릭터가 허공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오히려 제 눈을 잡아끌었던 것은 날라리 신참검사 김재윤 역할을 맡은 하정우였습니다. 능글능글하고 ‘싸가지’ 없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나오는데, 텔레비전 보면서 캐릭터를 향해 그렇게 욕을 해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악역을 맡은 배우를 길에서 실제로 보면, 때리면서 ‘야, 이 망할 여편네야,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라고 말씀하시곤 한다는데 그 마음이 이해가 갈 지경이었어요. 표정 하나, 던지는 말 한마디가 어쩜 그렇게 재수가 없던지요. 능글능글하게 ‘이거 까죠. 폭행이랑 자술서랑, 서로 까자고요’라고 알랑대고는 바로 낯빛을 바꿔서 ‘히트팀 담당하게 된 김재윤 검사입니다. 앞으로 잘해봅시다’라고 악수를 청하는 장면에선 손에 들고 있던 물잔을 브라운관에 던질 뻔했어요. 솔직히 김재윤 캐릭터를 보고 저처럼 재수 없어하고 흥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습니다만, 저로서는 그렇게 재수 없는 연기를 잘하는 것도 재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고로 이번 호의 주인공은 김재윤 역할을 능글맞게 하는 하정우입니다.
남녀가 콤비를 이뤄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물/추리물들은 흔합니다.
<엑스파일>이나 <레밍턴 스틸>도 그렇고, 가장 최근에는 KBS에서 방영했던 4부작 <특수수사일지: 1호관 사건>도 있지요. <히트> 역시 선배들의 선례를 좇아 안전한 방향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차별점을 둔 게 있다면 이 작품에선 막 나가는 강력반 형사를 여자가 하고, 검사 역할을 남자에게 주되 날라리라는 성격을 부여해서 갈등을 만들어 낸다는 것 정도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히 이 드라마, 때깔이 잘 나와서 그렇지 90년대 중후반 감성이 좀 심하게 느껴지잖아요? 슈퍼주니어가 불렀다는 주제곡마저도 <사랑을 그대 품 안에>라거나 <별은 내 가슴에> 시절을 연상케 하고 말이죠. 잘못 연기하면 우스꽝스러워지기 쉬워요.
이런 상투적이고 뻔한 느낌은 하필이면 베테랑 고현정보단 비교적 신인인 하정우에게 몰려 있습니다. 하정우는 흔하고 뻔한 설정, 고급 바에서 술을 홀짝이다 말고 쓸쓸한 표정으로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스팅’ 주제가를 연주한다거나, 스트레스를 잊으려고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혼자 딱 붙는 삼각 수영팬티 차림으로 다이빙을 한다거나, 집에 들어오면 자신을 따라오는 카메라에 맞춰 여유롭게 최고급/최첨단 인테리어의 집을 한 바퀴 빙 돌고 TV를 켜고 창 밖을 바라보는 식의 설정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뻔뻔스럽게 소화해내며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그럼에도 하정우는 제법 잘 해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3회니까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그러고 보면 하정우가 일반 대중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맡았던 경호원 역할도 그렇게까지 신선한 역할은 아니었습니다. 보면서 어딘가 모르게 ‘많이 쾌활해진 이정재 같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썰렁하고 무심한 태정 역할 역시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제하고 나면 그냥 뻔한 예비역 역할이었죠. 자기네들이 찍은 게 대단히 독특한 영화라 믿고 있을
<구미호 가족>의 무식한 아들 역할조차도 어디서 많이 본 뻔한 캐릭터예요.
제가 지금 자꾸 뻔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뻔한 역할을 자주 맡는다는 건 흉이 아닙니다. 역할이나 설정이 뻔하다는 건 그만큼 그런 역할이나 설정이 많은 작품에서 자주 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보는 이들에게서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기에 효율적인 설정이어서 자주 쓰일 수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되죠. 문제는 그 뻔한 역할을 그럴싸하게 하면서 어떻게 배우 자신의 존재감까지 각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배우가 배역 대신 배우만 남거나, 배역은 선명한데 배우가 각인이 안 되거나 하는 딜레마를 겪는 가운데, 하정우는 아직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잘하고 있어요. 저는 하정우가 자기 존재감을 각인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그의 얼굴을 꼽고 싶습니다.
하정우는 매끈하게 생기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미남형이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찢어진 눈에 좁고 긴 하관은 자칫 복 없이 생겼다는 소리를 듣기 좋게 생겼죠. 아버지 김용건은 풍채가 워낙에 좋아서 쾌남형으로 보인다 해도, 요새 젊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 하정우는 외모 덕을 많이 보는 것 같진 않습니다. 저야 하정우의 외모가 그런대로 마음에 듭니다만, 제 주변의 지배적인 반응이 ‘거 참 복 없이 생겼네’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길쭉하게 찢어진 눈으로, 하정우는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아냅니다. 눈의 좌우 움직임이 커서 눈만 봐도 현재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요.
게다가 그의 얼굴은 어떤 역할을 맡겨놔도 이물감이 없습니다. 하정우는 분명히 잘생긴 사람이에요. 일반인 백 명 사이에 하정우를 세워놔도 아마 한눈에 들어올 겁니다. 하지만 결코 비현실적일 정도로 번쩍번쩍 빛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 덕분에 그가 분하는 인물은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법한 현실감을 부여받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장동건이 바가지 머리를 하고 전기톱을 휘두르며 바보 구미호 역할을 하는 것을. 원빈이 호일 파마를 하고 후줄근한 남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노량진 술집에 처박혀 군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이물감이 확 오지 않습니까?
잠깐 딴소리 좀 할게요. 아버지 김용건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하정우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건 아마 김용건이 아들의 활동에 크게 간섭 안 하는 게 크게 작용하는 걸지도 몰라요. 실제로 김용건이, 연기하는 아들에게 당부하는 것이라 봐야 ‘차 조심해라’와 ‘싸우고 다니지 마라’뿐이라니, 거의 방목 수준이죠. 사실 돌아보면 이영하 아들 이상원이나, 고공행진을 이어온
<주몽>의 송일국조차도 아직 부모님의 그늘을 벗지 못하는 게 연예인 2세의 현주소잖아요. 결정적으로, 이루만 나오면 방실방실하는 태진아를 보세요. 이루가 태진아 아들이라는 딱지를 떼는 일이란 정말 요원해 보이잖아요.
아마 자신의 2세가 험난한 연예계에서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결국 부모의 벽을 넘지 못하게 되어버리면 그게 다 2세 손해입니다. 설령 부모가 2세를 감싸고 돌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청자들은 2세를 보면서 그 부모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고 김무생 선생 생전에 아버지의 벽을 넘지 못했던 김주혁이나, 아직도 허장강 선생의 모습이 위에 겹쳐 보이는 허준호도 그렇잖아요. 그런 면에서 하정우는 상당히 좋은 위치에서 시작했습니다. 관객들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로 강하게 각인을 찍은 후로는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가 아니라, 배우 하정우로 어필할 수 있게 된 거죠.
(아마 아니리라 생각은 합니다만) 아버지 김용건에게 특별히 연기교습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어도, 연극무대에서 다진 기본기가 워낙에 탄탄한지라 안면근육의 움직임도 뛰어나고요. 자신의 자산 중에 외모만 뽑아먹는 몇몇 사람은 흔히 카메라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찍히나 신경 쓰는 통에 안면근육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그 결과, 자기가 무슨 스티븐 시걸도 아닐 진데 어떤 장면을 찍어도 표정이 변하지 않는 현상이 생기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스타나 아이돌로는 남을 수 있어도, 배우로 커리어를 유지하는 건 점차 어려워집니다.
하정우를 볼까요? 하정우라고 카메라에 자신이 어떻게 찍히는가 신경이 안 쓰이겠습니까마는, 아마도 멋지게 나오는 것보다는 그럴싸한 연기를 보여주는 쪽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 모양입니다. 눈가에 깊게 잡히는 눈웃음 주름부터, 인상을 쓰면 콘트라스트가 도드라지는 이마 주름, 입가를 일그러뜨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구겨지는 입가 주름이 캐릭터의 복합적인 정보를 함축적으로 담아냅니다. 그 결과, 망설이는 표정 하나만 주문해도 눈의 움직임과 주름이 빚어내는 콘트라스트 덕에 뭔가 많은 것을 뇌리에 숨긴 듯한 근사한 표정이 나오는 거죠.
예를 들자면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승영을 만나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사실은 썩 달갑지는 않은 태정의 표정. 혹은
<시간>에서 여자친구 세희와의 잠자리에서 세희가 왜 화난 건지 모르는 멀뚱멀뚱한 표정에서 급격하게 ‘이런 게 사랑이야?!’ 하고 울부짖는 표정으로 바뀔 때의 그 과격한 전환. 하정우는 표정 하나만으로 하나의 감정에서 다른 감정으로 진실하게 넘어가는 묘기를 성공적으로 부립니다. 저는 하정우가 유오성 이후로는 최고로 주름과 안면근육을 잘 활용하는 배우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아까 위에서
<구미호 가족>에 대해 ‘자기네들이 찍은 게 대단히 독특한 영화라 믿고 있을’ 영화라고 혹평을 날리긴 했습니다만, 하정우는 그 안에서도 인상적인 순간을 보여줍니다. 서커스 장면이나, 아버지가 날린 단검을 곤봉으로 막아내는 장면에서 하정우의 표정은 거의 무성영화 시절 배우의 얼굴이나 마임 배우의 얼굴처럼 고도의 희극성을 자아냅니다. 무식하게 전기톱의 전원을 당길 때, 혹은 아버지 주현을 향해 태엽장치 기계처럼 혀를 날름거릴 때의 표정은 정말 일품이에요.
연기에서 대사는 참 중요한 요소예요. 하지만 비언어적 요소가 연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또 얼마나 큰지요. 배우의 뒷모습 하나, 어깨의 떨림 하나만으로 캐릭터가 관객에게 확 다가오는 경험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말 한마디 없이 표정 하나로 시청자를 울리던
<굿바이 솔로>의 나문희나, 멈춰버릴 것처럼 느릿한 화면 속에서 서로 옷깃을 스치며 아쉬워하는
<화양연화>의 양조위, 장만옥을 보세요. 대사 없이 이들이 빚어내는 캐릭터의 피와 살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뚫고 튀어나올 듯한 그 순간은 온전히 배우들의 비언어적 요소, 육체적 요소에 빚진 것입니다. 그리고 전 하정우에게서 그런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을 봅니다. 대사와 감정을 캐릭터에 일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육체까지 온통 캐릭터가 되어 버리는 혼연일체의 경지를 향해, 하정우는 지금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