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잭 스나이더의 <300>을 보고 왔는데요, 역시 내용보다는 스타일이 더 중요한 영화였습니다. 전 영화를 보면서 그리스 도자기에 새겨진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극도로 양식화된 스타일로 그려진 움직이는 그림 말이죠. 심지어 주인공들의 울퉁불퉁한 근육마저도 하나의 스타일로 규격화되어 있었죠. 그들의 육체는 인상적이긴 해도 개성적이지는 못했습니다. 300명이 다 똑같아 보였죠.
그러나 그걸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린 그리스 조각상의 육체에서 어떤 개인의 개성을 기대하지는 않잖아요. 제가 위에서 언급한 도자기에 새겨진 그림 역시 모델에게 분명한 개성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초라한 건 아니고요. 양식이 개별 캐릭터의 개성을 넘어서는 일도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300>은 전자였던 거죠.
그러고 보면 시각 매체의 발전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작품이 개별 문화의 특성에 귀속되지요. 그러다 슬슬 모델과 예술가가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상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나 알렉산드로스나 다 비슷해 보입니다. 그나마 부인할 수 없는 개성을 지닌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나 조금 튀는 거죠.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 화가의 개성과 함께 모델의 개성이 더 중요해집니다. 나폴레옹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지만 우린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나도 잘 알죠. 수많은 초상화가가 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지만, 그의 분명한 개성은 화가들을 어느 정도 넘어섰죠.
요새는? 글쎄요. 사진이라는 매체가 나오면서 모델의 중요성이 작가의 중요성을 넘어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사진작가의 명성은 여전히 중요해요. 하지만 보그지를 보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건 모델이 누구냐지 사진작가가 누구냐는 아니죠. 심지어 모델 대부분은 크레디트에 이름이 실리지도 않는데 말이죠.
사실
<300>의 배우들이 그렇게 조각 같은 몸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스파르타 병사라고 모두 그런 몸은 아니었겠죠. 정상적인 영화라면 자잘한 육체적 결함이나 단점이 자연스럽게 개성에 섞여 집단과 구별되는 개인을 만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할리우드식 몸만들기에 돌입하면 그런 개인은 사라지죠.
어떻게 보면 이건 영화 주제와 맞습니다. 스파르타는 현대인이 보기엔 정말로 견뎌내기 어려울 정도로 뻑뻑한 전체주의 국가였으니까요. 그런 체제에서 만들어진 300명의 살인기계의 활약을 다룬 게
<300>이죠. 그들의 복제된 육체는 실제 스파르타 군인과는 닮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들의 복제된 정신을 그린 훌륭한 상징이었던 셈입니다. 그들은 똑같아 보이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고 보니 언급할 만한 것. 그건 바로 이 영화에서 가장 개성적인 인물로 나오는 사람이 흉측한 곱사등이 에피알테스라는 거죠.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결코 명예로운 스파르타인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린 그를 쉽게 무시하거나 증오하지 못합니다. 스파르타인이 그를 어떻게 모욕하고 경멸했는지 너무나 잘 봤기 때문이죠. 사실 명예와 죽음만을 외쳐대는 스파르타인보다는 에피알테스에게 감정이입하기가 더 쉽습니다. 전문화된 살육만을 유일한 직업으로 택했던 스파르타인은 평범한 시민으로 구성된 아르카디아인을 비웃었지만 과연 우리가 그들에게 동조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걸 보면 잭 스나이더의 영화가 스파르타인을 그런 식의 근육질 복제 인간으로 만든 이유를 의심하게 됩니다. 물론 영화는 강한 선전(宣傳)의 힘이 있어서 관객은 쉽게 그 폭력적인 감정에 이끌립니다. 하지만 내용만 뜯어본다면 부인할 수 없는 노골적인 거리 두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영화는 그들을 공감할 수 있는 인간에서 벗어난 금속성의 괴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그들에게 완전히 감정이입하지 않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