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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나는 가끔 침대 속에서 라라를 생각한다. 바로 이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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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랑을 시작하거나 끝내려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명제는 오직 하나!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의 분신이라는 것!

나는 가끔 침대 속에서 라라를 생각한다. 바로 이 문장이다.

“지금 라라는 자기의 키를 침대 속에서 두 점 -왼쪽 어깨 죽지와 오른발의 엄지발가락- 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한쪽 어깨와 한쪽 발이었고, 나머지 모든 것은 그녀 자신, 한 외형 속에 맵시 있게 짜 넣어져 있는 미래로 민감하게 돌진하고 있는 그녀의 영혼 혹은 본질이었다.”

이건 내가 소설 속 여주인공 중 가장 사랑하는 『닥터 지바고』의 라라가 7월의 어느 휴일 아침에 침대 속에서 기지개를 켜며 ‘조금만 더 자야지’라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이런 표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를 긍정하는 사람에게만 어울리는 표현이다.

침대 속에서 어깨를 당기는 시간이 동시에 나의 본질이 미래로 힘차게 돌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는 건, 침대 속에서 내가 뒹구는 동안에도 나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니,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킨다는 것만큼이나 경이롭기도 하다. 사랑의 본질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몸을 쭉 펴고 나를 고양할 준비만 되어있다면 나는 미래로 돌진할 것이다.

어깨에 대해서라면 떠오르는 남자가 하나 있다. 그는 늘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는 남자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날씬하고 어깨가 좁은 여자에게 전해 들었는데, 처음 만난 날 그는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어깨를 바라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단다. “당신은 참으로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군요.” 그래서 그녀는 딱 한마디만 했단다. “만져봐요” 그 말에 그는 웃었고, 팔을 뻗어 어깨를 만지는 그 동작과 동시에 그의 영혼은 미래로, 사랑으로 돌진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북미를 여행하면서 보낸다’라는 한 구절의 프로필로 나의 여신이 되어버린 애니 프루의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 브로크백 마운틴의 배경은 물론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산이다. 그 산에서 두 청년 잭과 애니스가 1963년 여름을 난다. 잭은 뻐드렁니가 인상적인 로데오광이며 그 어디라도 다른 곳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열아홉 살 청년이다. 애니스는 좁은 얼굴에 매부리코이고 추레한 용모지만 길고 가는 다리에 유연한 몸을 가진 열아홉 살 청년이다.

둘은 1963년 팜 앤드 랜치 직업소개소에서 처음 만났고, 여름 방목지인 브로크백 마운틴 수목 한계선에 있는 양치기와 야영지 감시인 고용계약을 맺는다. 둘은 함께 산에 올라가지만 한 사람은 야영지에서, 한 사람은 양 옆의 좁고 냄새 나는 텐트에서 코요테를 쫓으며 자야 한다. 둘은 불가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담배를 피우고 술병을 나누고 가끔 모닥불에 오줌을 눈다.

그 둘은 말과 로데오 사고와 상처, 승무원 전원이 사라져 버린 잠수함 트레셔호의 마지막 불운의 순간, 두 사람이 키웠던 개와 알고 있던 개들, 징집, 잭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하는 고향 목장, 몇 년 전 부모가 죽은 후 접은 애니스 가족 목장, 결혼한 누나 등등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 동지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애니스는 이렇게 좋은 시간은 평생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표현한다. “발을 뻗으면 달까지도 닿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을 가졌다.” 잭이 애니스를 인식하는 방법은 이랬다. “어두운 텐트에서 잭은 거대한 검은 산 덩어리에 밝게 빛나는 단 하나의 불빛으로 애니스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잭의 이 문장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첫 순간을 묘사하는 수만 가지 표현 중에서도 절창이다. 사람에 빠지는 순간의 사람은 자기 사랑을 인식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눈을 갖게 된다. 브로크백 마운틴 야영지에서는 그게 한 점 불빛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도 대단한 절망에 빠졌다가 미칠 듯한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의 절망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공부, 일, 우정, 사랑, ?랑을 찾아 헤매는 것이 다 끝났다. 한마디로 의미 있는 인생 전체가 끝났다. 나에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이제 나는 결국 아무 가망 없이 내가 지금 놓여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라고 토로한다. 그러다가 그가 일하게 된 탄광 도시에서 한 여자를 본다.

“그때 나는 루치에를 처음 보았다. … 그녀의 모습은 평범했다. 나중에는 이 평범함 자체가 나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끌게 되었지만 처음에 그녀가 나를 멈추어 세운 것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오스트라바의 거리에서 그런 평범한 아가씨들을 자주 마주치지 않았던가? 아무튼 나는 그 아가씨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원래 걷던 그대로 진열창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나서 여전히 서두르지 않으면서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 그토록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루치에의 그 특이한 느림 때문이었다. 서둘러 돌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란 없다고, 무언가를 향해 초조하게 손을 내미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체념한 마음을 발산하는 그 느림 때문이었을 거다. 그랬다. 그 아가씨가 매표소로 가서 동전을 꺼내고 표를 사고 관람실을 한번 보고는 다시 마당으로 나오는 동안 계속 나로 하여금 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했던 것은 아마도 정말로 그 우수에 가득 찬 느림 때문이었을 거다.

… 첫눈에 반한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사랑이 자기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 내거나 그 시작을 나중에 신비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그것이 그렇게 돌연히 불붙은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 어떤 예시 같은 것이 있었다. 루치에의 본질, 나는 그것을 한순간에 깨달았다고 느꼈고 보았던 것이다. 마치 누가 밝혀진 진리를 가져와 보여주듯이, 루치에가 가져와 드러내 보인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이 또한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통찰력으로 나를 흥분케 한다. 사람은 누구를 왜 사랑하는가? 엄밀히 말하면 그 대답은 추리소설 한 권 분량이 될 것 같다. 그 추리소설의 첫 문장은 사랑을 선택했던 순간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금 내 옆의 사랑이 정말로 시시하다면, 견딜 수 없는 그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을 선택한 순간의 내가 그 정도만을 허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끝낼까 말까 머리가 복잡할 땐, 역설적으로 사랑을 선택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는 견딜 수 있는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 시절로부터 도망치고 싶은가? 지금의 이 빛바랜 사랑은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이었으므로, 그 시절에서 출발해 어느 해안으로 밀려왔는가를 따져 봐야 할 뿐.

『브로크백 마운틴』의 끝 장면은 이렇다. 애니스와 또 다른 한 남자와의 동성애 때문에, 잭은 얼굴이 짓이겨진 채 살해당한다. 잭이 애니스의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애니스는 때때로 비탄에 잠겨, 때로는 환희의 사정의 감각에 휩싸여, 때로는 베개가, 때로는 시트가 젖어 깨어났다. 아는 것과 믿으려 했던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칠 수 없다면 견뎌야 한다.” 눈물뿐이 아니고 정액뿐이 아니고, 눈물과 정액이 함께 나오는 이 장면이 내겐 너무나 따뜻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눈물과 정액 둘 중에 한 가지만 골라 바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사랑을 시작하거나 끝내려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명제는 오직 하나!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의 분신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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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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