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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 것 없는 인생, 나는 자유다 -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영화배우 앤서니 퀸의 팬이라면 한 번쯤 영화로도 만나보았을 법한 그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습니다.
「“선생, 이리 좀 오시오. 내게 그리스인 친구가 하나 있는데, 내가 죽거든 편지로 최후의 순간까지 내가 정신이 말짱한 채 그 친구를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뭔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도 전해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잠깐 더 들어요. 신부 같은 게 내 참회를 듣고 종부성사(죽기 전 하는 고해성사)를 하려거든 빨리 꺼지는 건 물론이고 온 김에 저주나 잔뜩 내리고 꺼지라고 해요. 내 평생 별짓을 다 해봤지만 아직 못한 게 있소. 아…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
어찌 보면 어처구니없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 그리스 남자는 알렉시스 조르바라는 사람으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영화배우 앤서니 퀸의 팬이라면 한 번쯤 영화로도 만나보았을 법한 그의 삶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른바 ‘펜대 운전수’라 불리는 작중 화자(나)가 막노동판 십장쯤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예순 줄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 크레타 섬에서 함께 갈탄광 사업을 벌이다 실패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 쓴 소설입니다. 지식인과 막노동꾼, 젊은 축과 늙은이, 신사와 방탕아라는 완벽한 대립을 이루는 두 사람이 만드는 대화가 이 소설의 핵심 주제면서, ‘나’와 ‘조르바’ 두 사람이 만드는 변증법적 결론의 밑거름입니다.
크레타 출신이지만 한동안 외국을 떠돌며 살아온 ‘나’는 고국으로 돌아가 무언가 안정적인 수입을 만들 일을 벌이면서 책 읽으며 사는 인생을 꿈꿉니다. 크레타에서 ‘나’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는 늙은이를 만나게 되는데, 이 늙은이는 거칠고 공격적이면서도 매우 선언적인 말투와 친근감으로 ‘나’의 시선을 끕니다.
알렉시스 조르바. 어느 마을에나 처음 가면 과부 있는 집을 찾아가서 잠도 자고 재미도 본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는 조르바는 딱히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운 적도 없고, 남들처럼 책을 읽어 그 속에서 교훈을 얻은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삶을 배운 곳은 바로 삶 그 자체입니다. 어린 나이에 크레타 독립전쟁 의용군으로 뛰며 사람을 죽이고, 잡상인이 되어 여기저기 물건을 팔며 떠돌아다니고, 어지간한 막노동은 안 해본 것이 없는 노동판의 십장인 그는 자신의 삶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를 ‘나’와의 대화 속에 남김없이 흩뿌립니다.
「“확대경으로 물을 보면 벌레가 드글드글하다고 하던데, 당신 같으면 갈증이 날 때 그 벌레를 보겠소? 아니면 외면하고 그냥 벌컥벌컥 물을 마시겠소?”
“인간이란 참 묘한 녀석입니다. 속에다 빵, 포도주, 물고기, 홍당무 같은 걸 채워 주면 그게 한숨이나 웃음, 꿈이 되어 나오거든요. 무슨 공장 같지 않습니까? 우리 대가리 속에 발성영화기 같은 거라도 들어있나 봅니다.”
“조국이라고? 책에 씌여진 그 엉터리 수작을 당신은 다 믿소? 당신이 믿어야 할 건 나 같은 사람이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크레타에서 갈탄광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내내 거칠고 갈라진 말 속에서 조르바는 인생의 진리를 끌어냅니다. ‘나’와 조르바의 대화는 처음부터 깊고 무거운 인생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저 단순한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는 그러나 조르바의 산 경험에서 우러나는 삶의 지혜를 통해 조금씩 그 무게를 실어가며, 마침내 대화가 끝날 때쯤이면 조르바는 마치 잠언과도 같은 진리를 툭툭 꺼내 던지며 ‘기껏해야 책밖에 더 읽은’ ‘나’를 은근히 타박합니다. 그러나 지식인인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사실 소설의 구성은 위 문단에서 서술한 형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아 단조롭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서부터 마지막에 사업을 망치고 헤어질 때까지, 그리고 작중 화자가 편지로 조르바의 죽음을 전해 받을 때까지 크게 다를 바 없이 만나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일하고, 그러다가 조르바의 한 마디에 ‘나’의 감탄이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함? 지루함으로 만들지 않는 공은 첫째로 과감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인생과 진리에 대한 조르바의 관념입니다. 그는 비록 유려한 인문人文의 세례를 받지 않아 투박하고 거칠게 표현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물에 대한 분석적 정의와 실용적 가치(물 속의 벌레 이야기)를 선별할 줄 알며, 이른바 문화라고 불리는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 결국은 물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음(발성영화기 이야기)을 역설하고, 내셔널리즘과 같은 집단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억압함(조국 이야기)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르바는 관찰자인 ‘나’를 통해서 비로소 독자에게 접근합니다. 삶의 진리를 찾고자 책 속을 후벼 파던 ‘나’는 자신이 찾던 궁극적인 질문의 해답이 조르바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의 말을 재해석할 여지를 마련합니다. ‘나’는 그러한 궁금증을 늘 가지고 있기에, 조르바가 툭툭 던지는, 자칫 지나치기 쉬운 말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독자와 공유하며, 이는 소설의 동어반복 구조를 매 순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두 번째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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