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1806년부터 독일 전역을 돌면서 사람들로부터 직접 옛이야기를 듣고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는 그 이야기를 채록한 글을 1810년 친구이자 작가인 클레멘스 브렌타노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늘리고 보태서 태어난 독일 민담집이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이야기』(1812년)지요. 이 책의 대표작인
『룸펠슈틸츠헨Rumpelstilzchen』에서는, 왕이 방앗간 집 딸에게 짚으로 황금 실을 만들라고 명령하지만 실잣기와 물레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또한 룸펠슈틸츠헨의 이름을 알아낸 이도 하녀가 아니라 왕입니다.
그림 형제는 1819년에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이야기』의 두 번째 판을 간행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형태인
『룸펠스틸트스킨Rumpelstiltskin』으로 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는 초판본과 전체적으로 같지만 부분적으로 보완된 것으로서, 왕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대목에서 룸펠스틸트스킨이 한쪽 발을 잡고 자기 손으로 몸을 반으로 쪼개는 잔인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부지런하고 완벽주의자였던 그림 형제는 이 모음집을 또다시 수정?보완해서 1857년에 세 번째로 마지막 판을 펴냈습니다. 이는
『룸펜슈틴츠헨Rumpenstuenzchen』의 다섯 번째 변형판으로, 작품의 변형은 이전 작품의 연속성 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폴 오 젤린스키는 ‘그림 형제의 옛이야기를 다시 쓰면서’란 제목의 덧붙인 말에서, 자신의 그림책에 맞게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그림을 그린 원전은 1819년판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 몇 줄을 더했다고 밝힙니다. 그럼 그림 형제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옛이야기를 그림책 속에서 현대적인 말과 그림으로 재화한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책
『룸펠슈틸츠헨』을 함께 보도록 하죠. 참고로 다양한 이름(제목)이 있음에도 젤린스키가 최종적으로
『룸펠슈틸츠헨Rumpelstilzchen』을 자신의 그림책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 역시 1819년판에 기초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고전주의와 바로크 양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린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은, 높은 곳에서 구릉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그린 것 같은 니코라 푸생(Nicolas Poussin, 17C)의 그림을 착실히 계승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림 속의 시대를 유추할 수 있게 그 시대의 취향과 관습이 반영된 인테리어(기하학적 문양의 채색 바닥재, 채색 대리석 기둥, 화려한 문양의 태피스트리)의 세심한 묘사와 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생생하게 표현한 기법은 니콜라 랑크레(Nicolas Lancret, 1690~1743)의 회화에서 로코코적 장식성을 떼어낸 듯합니다. (물론 이런 해석은 미술사를 제멋대로 공부한 책 읽어주는 마녀만의 것이니 설령 이견이 있다고 해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폴 오 젤린스키가 그림 형제에 경도되면서, 이야기의 재화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바탕이 된 시대 상황이나 장소에 대한 나름의 연구가 뒷받침되었을 거라는 추정의 근거는 그림책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남부 독일 지역에서 채록된 것 같은데요, 상대적으로 중세의 문화가 발달한 남부 독일은 그만큼 구전된 민담이 많고, 특히 마녀니 난쟁이니 하는 중세적 분위기를 띄는 등장인물이 자주 등장하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곳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폴 오 젤린스크가 재해석한 그림 속의 건축물을 보면 석조의 궁륭과 작은 창문, 입구 기둥 사이의 반원형 아치, 내부의 열주 등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건물은 산세가 험한 남부 쪽 수도원이나 높은 곳에 있는 중세에 세워진 성(독일은 남부로 갈수록 적의 공격을 피하고자 험준한 곳에 크고 작은 성을 많이 지었습니다. 지하에 감옥이 있거나 적 감시나 음식 저장을 위해 별도의 탑을 갖춘 경우가 허다하지요)에서 자주 볼 수 있거든요.
이렇게 장황한 배경 설명을 한 이유는,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에서 섬세하게 묘사된 배경으로 여러분의 시선을 인도하고자 함입니다. 보세요, 훗날 왕비가 될 방앗간의 아가씨가 짚을 자아 황금 실을 뽑아야 하는 과제를 받은 곳은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칙칙한 광입니다. 더 자세히 보면, 장식이라곤 없는 이 방에 세워진 기둥 위쪽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있는 모습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곳에 때마침 우리나라 민담의 도깨비와 같은 역할을 맡은 난쟁이가 등장합니다. 민담에서는 난쟁이나 도깨비 같은 장난꾸러기를 트릭스터(trickster)라고 합니다만, 이 트릭스터인 난쟁이가 방앗간 아가씨의 목숨을 구해주는 구원자로 우선은 등장합니다. 난쟁이는 짚을 자아 황금 실을 만드는 신비한 기술을 지녔거든요.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제를 낸 왕은 방앗간 아가씨의 재주에 감탄하며 이악스럽게도 욕심을 더 부리고 다음날 밤에도, 또 그다음 밤에도 점점 더 많은 짚을 던져주고 갑니다. 방앗간 아가씨에게 장난꾸러기 난쟁이가 거저 봉사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처음엔 아가씨의 목걸이를, 그 다음엔 아가씨의 반지를 대가로 받았지요. 결국 마지막 날 아가씨는 난쟁이에게 더 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쟁이가 아주 사악한 제안을 하지요. 아가씨가 왕과 결혼해서 낳는 첫 아들을 자신에게 달라는 것인데,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많은 고민 끝에 현명한 아가씨는 일단 승낙부터 해놓습니다.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벌써 걱정할 이유는 없었던 거죠. 어쩌면 아가씨는 매우 낙천적인 성격이거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는 자신감 넘치는 여인인 것 같습니다.
왕은 자신에게 큰 부를 가져다준 방앗간 아가씨를 약속대로 자신의 왕비로 맞이하지요. 이제 결혼식 장면을 잘 보세요. 궁전의 뜰을 마주한 입구의 회랑에 선 신랑과 신부의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지도, 서로 향하지도 않습니다. 좀 넋이 나간 듯 보이는 왕(신랑)은 공주 쪽으로 시선을 두었지만, 방앗간 아가씨에서 신분이 상승한 왕비는 살짝 고개를 돌려서 독자 쪽으로 눈길을 던집니다. 이 시선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렇게 해석해 봤습니다. 아직 남은 이야기에 대한 ‘상기’라고 말이죠. ‘내게는 자신감이 있으니, 독자들이여 믿어달라’라는….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에게 힘을 달라는 호소의 눈빛으로 말입니다. 즉 왕비가 이 이야기 전체의 중심 역할을 맡은 화자인 셈이죠. 비록 결혼 문제에 관해선 권력과 재물에 팔려온 신세지만,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서는 소극적일 것 같지 않다는 암시를 던져주는 눈빛인 셈이지요.
자, 1년 뒤 왕비는 잘생긴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물론 이때 난쟁이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찾아옵니다. 왕비는 울며 사흘을 벌었습니다. 재밌게도 트릭스터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이 난쟁이도 왕비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 자신의 이름을 알아맞히면 아이를 데려가지 않겠노라며 사흘의 시간을 허락하고 사라집니다. 왕비는 자신이 아는 모든 남자 아이의 이름을 떠올려보지만, 아무래도 전부 아닌 듯싶었습니다. 왕비의 다급한 마음을 알아챈 시녀가 밤길을 타고 숲 속 덤불을 뒤져 마침내 난쟁이가 사는 동굴을 찾아내지요. 난쟁이는 늘 갖고 다니는 작은 국자로 활활 타는 불 주위를 돌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다 은연중에 혼잣말로 자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혹시나 잊어버릴까봐 시녀는 난쟁이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성으로 돌아갔겠죠?
다음날 저녁, 난쟁이가 국자를 들고 왕비를 찾았을 때, 여유를 찾은 왕비는 ‘룸펠슈틸츠헨’이라며 난쟁이의 이름을 말하지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룸펠슈틸츠헨은 국자를 타고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지만, 이 부분은 폴 오 젤린스키식 엔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룸펠슈틸츠헨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독일어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달그락 소리를 내는 지주(支柱)’란 뜻인데요, 즉 ‘시끄러운 난쟁이’란 의미입니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는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가 바로 룸펠슈틸츠헨입니다. 이런 유형의 도깨비가 또 어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느냐 하면요, 스코틀랜드 민담인
『Whuppity Stoorie』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여자 주인공더러 아이의 목숨을 구하려면 자신의 이름을 맞히라는 화소가 등장한답니다.
한편 실 잣는 여인들의 이야기로는
『The Three Spinners』란 민담도 살펴봐야겠는데요, 이 이야기에는 세 명의 여인(마녀겠죠?)이 여주인공의 실 잣는 일을 돕는 대신 그녀의 첫 아이를 요구하지요. 여주인공은 자신의 결혼식에 세 명의 여인을 초대하여 왕에게는 자신의 친척이라고 속이지만, 왕 앞에서 세 여인의 흉악한 얼굴이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좀 다른 결말이지요. 어쨌거나
『룸펠슈틸츠헨』과 같은 화소의 이야기는, Aarne와 Thompson의 세계 민담 분류에 따르면 유형 500에 속하는 것으로서 ‘The Name of the Helper(구원자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답니다.
자, 여기까지 폴 오 젤린스키의
『룸펠슈틸츠헨』을 통해 그림 형제의 원전도 함께 이야기해 봤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의견을 솔직히 말하자면, 그림 형제 원작에서 재화를 따온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책이 지닌 공통점은 이야기의 구성보다는 시각적 창조가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회화 작품으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 고흐, 세잔, 마그리트 이전의 서양미술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이 품은 마력을 직접 경험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답니다.
■ 폴 오 젤린스키 (Paul O. Zelinsky)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인근 윌미트(Wilmette)에서 태어나 수학 교수이자 의학 관련 도서의 삽화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폴 오 젤린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일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NCCIL(미국 어린이 삽화 문학 센터)에서 소개하는 폴 오 젤린스키의 일대기에 따르면,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던 어린 시절의 젤린스키가 진정으로 되고자 했던 것은 어린이 책의 삽화가가 아니라 피카소 같은 화가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책의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대체로 어린이의 장래희망이 수시로 바뀌듯이 그의 꿈도 천문학자에서 건축가, 박제사로 그때그때의 관심에 따라 바뀌었다고 하는군요.
예일 대학의 예술학부에 입학했을 때, 그는 운 좋게도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모리스 센닥으로서도 예일에서의 첫 강의였다니… 어떤 필연 같은 만남의 인연이 작용했던 것이겠지요. 예일 대학 2학년 때 그는 역사 강의도 수강했는데, 모리스 센닥과의 만남과 역사 강의를 통해 어린이 책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젤린스키는 로마와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그림을 공부하고, 타일러 미술학교(Tyler School of Art)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잠시 캘리포니아 주에서 대학생의 미술을 지도했는데, 마음속에는 늘 삽화가가 되고 싶은 꿈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결국 삽화가로 데뷔하고자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처음에 <뉴욕 타임즈>와 <배론즈 위클리> 같은 정기간행물의 삽화를 시작으로 아동서 삽화가 및 작가가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병행해 나갔습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함께 상상의 세계를 만들고, 주인공에게 성격을 부여하며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푹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젤린스키의 천부적인 미술적 재능이 멋지게 활약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지요. 그럼 여기서 그때를 회상하는 젤린스키의 말을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말도 안 되게 웃긴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우화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죠. 또 5학년 때는 친구들과 함께, 서로 다투는 두 섬나라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동화를 편지로 주고받으며 전개해 나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 두 나라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쪽은 이글비니아(Igglebeania)였고 다른 쪽은 스퀴글비니아(Squigglebeania)였을 거예요. 다양한 등장인물과 이색적이고 중요한 사건이 이야기 속에 한가득 있었어요. 그 두 나라는 세상에서 잊힌 땅이었지요. 그리고 또 있어요. 14살 때는 고릴라의 침공에서 지구를 구한 원숭이 우주인에 관한 소설 비슷한 것을 썼어요. 물론 그림까지 그려 넣었죠. 친구 아버지 한 분이 그걸 출판사에 검토해달라고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물론 정중한 거절 편지를 받았지만, 그 후 그 출판업자와 함께 저는 두 권의 책을 내게 되었어요.”
자, 이 정도면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감수성과 미술적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고 열의 또한 얼마나 뜨거웠는? 짐작할 수 있겠지요? 마치
『Captain Underpants』의 작가인 Dav Pilkey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젤린스키 편으로 듣는 것만 같은데요, 위대한 작가나 화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출중함이 있었고, 그것을 더 계발하려는 열정과 학습이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늘 숨어있더군요. 그의 첫 어린이 책 삽화 작업은 1978년 유명한 어린이 책 작가인 에이비(Avi)가 쓴 소년 소설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젤린스키는 본격적으로 어린이 책 세상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면서 다양한 화풍의 그림책을 내놓았습니다.
신간 『The Shivers in the Fridge』의 내지를 이용한 포스터
한편 젤린스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1995)
『헨젤과 그레텔』(1985)
『룸펠슈틸츠헨』(1987)으로 세 차례나 칼데콧 명예상을 받았으며, 이어 1998년에
『라푼첼』로 또다시 칼데콧 상을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무척 상복이 많은 그림책 작가인데요, 다재다능함으로 널리 인정받는 그는 자신의 화풍이 특정한 스타일로 규정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Friendly.ly.net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더군요. 들어봅시다.
“저는 글에 맞춰 그림도 같은 목소리와 색깔(voice라고 표현했지만, 목소리와 색깔로 번역함)을 갖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책을 만들 때마다 다양한 유형의 삽화를 그리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저는 매우 광범위한 스타일의 삽화를 그려왔고, 운 좋게도 여러 출판사로부터도 저의 그런 점을 인정받고 책마다 개성이 있는 그림을 그리며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폴 오 젤린스키는 1981년 초등학교 교사이자 피아니스트인 데보라(Deborah)와 결혼하여 애나(Anna)와 레이첼(Racheal) 두 딸을 두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종종 그의 그림책에 반짝 출연하는데요,
『The Wheel on the Bus』에서는 두 딸 모두 등장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룸펠슈틸츠헨』에서 왕비의 웨딩드레스 화환 자락을 잡았던 애나는 대학생이 되었다는군요. 이들 가족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단란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좀 더 궁금한 점이 있는 분은 젤린스키의 홈페이지(
//www.paulozelinsky.com)에 들어가 보세요. 비버리 클리어리가 쓴 소년 소설
『Strider』와
『핸쇼 선생님께』의 삽화를 폴 오 젤린스키가 그렸다는 걸 저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야 알았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요즘 들어서는 입학시험이나 자격시험, 졸업시험 등에서 상위권에 드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이 현상에 대해 경제신문지 기자는,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의 성별과 관계없이 최고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현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지요. 게다가 학계나 재계에서도 이제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부드러운 포용력을 갖춘 여성성을 갖춘 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요, 이 아이 안젤리?를 좀 보세요. 흔히 우리가 기대하는 이야기책 속의 여자 아이는 연약하고 수동적이고 예쁜 외모를 지니게 마련인데, 이 책은 시작부터 틀에 박힌 우리의 기대를 깨트리네요. “안젤리카 롱라이더(Angelica Longrider)가 세상에 태어나 첫 울음을 터트린 날은 1815년 8월 1일이었어요. 갓 태어난 안젤리카는 엄마의 키보다 약간 더 클까 말까 했고 혼자서는 나무를 타지도 못했어요”라고 첫 문장이 시작됩니다. 거 참, 갓 태어난 아이가 나무 탈 걸 기대하는 부모가 있겠습니까만, 어찌 되었거나 이 이야기는 여자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태어나서 몇 년 후 늪에 빠진 마차를 구해 사람들에게 ‘늪의 천사’라고 불리는 안젤리카는 이미 집채보다 덩치가 크고 사내 몇을 단숨에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이 셌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안젤리카가 사는 테네시 주에 산처럼 거대한 곰이 나타나 사람들이 겨우내 먹으려고 보관해 둔 양식을 감쪽같이 해치워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곰에게 벼락이나 맞아 죽으라는 의미로 ‘벼락’이란 별명을 붙였지만, 그 누구도 날쌔고 교활한 곰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곰 사냥 대회를 열어 곰을 없애기로 했지요. 테네시 주에서 용감무쌍하다는 청년들이 모두 이 대회에 참가했고, 안젤리카도 당연히 참가했어요. 청년들은 여자가 사냥 대회에 참가한다며 비아냥거리고 무시했지만, 안젤리카는 회오리바람을 붙잡아 꼬아서 거대한 밧줄을 만들어 거대한 ‘벼락’을 땅바닥에 패대기쳤어요.
그뿐인 줄 아세요? 나흘째 쉬지도 않고 힘겨루기를 하다 ‘벼락’과 뒤엉켜 호수에 곤두박질치자 안젤리카는 호수의 물을 다 마셔 버렸어요. 엎치락뒤치락 둘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결국 지친 ‘벼락’이 잠이 든 사이, 안젤리카도 덩달아 잠들었지요. 그때 테네시 주에서 두 번째로 큰 소나무가 잠든 둘 옆에 쓰러졌는데도 둘은 지쳐 계속 잠만 잤답니다. 나무가 연쇄적으로 쓰러졌는지 ‘벼락’은 결국 커다란 나무에 머리를 맞고 뻗어버렸답니다. 안젤리카는 그제야 깨어나서 벌어진 일의 진상을 깨닫게 되죠. 안젤리카의 맹활약에 힘입어 테네시 사람들은 첫눈이 올 때까지 곳간 가득 곰 고기를 채울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안젤리카는 ‘벼락’의 가죽을 바닥깔개로 쓰기로 하고 테네시 주를 덮어보았는데, 어찌나 크던지 결국 안젤리카는 ‘벼락’의 가죽을 멀리 몬태나 주로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그 앞에 곰 깔개를 깔았다죠? 지금도 몬태나 주에 가면 ‘짧은 풀 언덕’이란 지명이 있다고 하네요.
우리는 이 그림책을 통해 작가의 능청스러운 과장을 보았는데요, 이 그림책의 글을 쓴 앤 이삭스(Anne Isaacs)는 미국 뉴욕 주 버팔로에서 태어나 미시간 대학에서 영어학과 행동환경학을 공부하고, 이 책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로 문단에 데뷔해, 그해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선정한 ‘가장 유망한 작가’로 주목받았답니다. 흠, 역시 행동환경학을 공부한 작가답게 너스레를 떨어도 규모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통쾌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남성성’ 하면 보통 사냥꾼의 기질로 대표되는데, 바로 그 남성성을 뽐내는 자리인 곰 사냥에서 당당히 안젤리카라는 여자애가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여자니까 양보해야지’ ‘무슨 여자가…’ 등등의 차별적인 발언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받게 돼요. 시대는 바야흐로 21세기이지만, 의식의 진화는 시간의 흐름보다 느린지 여전히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은 남성보다 지위가 낮아요.
모든 인간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칼 융(C. Jung)이 말했죠. 여성이든 남성이든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노력해야 하는데요, 지금까지는 개발의 논리를 앞세워 남성성이 상대적으로 우성인 것처럼 여성성을 눌렀어요. 하지만 그 역효과가 드러나자 이제는 포용과 관용의 힘을 지닌 여성성 계발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거죠. 참, 폴 오 젤린스키는 미국의 전통적인 민속 예술 방식으로 체리나무와 은행나무 베니어에 오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재미있어요. 안젤리카의 짓궂고도 당당한 표정이며, 곰에게 한 방 맞고 넋 나간 표정의 젊은 남자들 모습만 봐도 그림으로 표현된 해학과 익살을 읽을 수 있어요. 이 그림책은 ‘칼데콧 명예상’을 비롯해서 ‘보스톤 글로브 혼 북 명예상’ ‘뉴욕 타임스 최고의 그림책’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베스트 북’ 등을 휩쓴 작품으로, 앤의 기발한 발상과 과감한 주제의식이, 신비로우면서도 재치 있는 폴 오 젤린스키의 그림과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1,000% 발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21세기 여성은 ‘여자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가두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남성도 ‘남자니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폴 오 젤린스키라는 걸출한 그림책 작가와 그의 두 작품을 함께 살펴보았는데요, 한글로 번역된 그림책이 이 둘밖에 없는 게 무척이나 아쉽네요. 여러 화풍을 그림책에서 보여주는 폴 오 젤린스키의 작품들…, 칼데콧이 괜히 이 작가에게 네 번씩이나 상을 준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