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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미만 구독불가’ 전문 만화가가 뱀파이어를 그리는 방법
토쿠히로 마사야의 만화는 이번에도 ‘19세 미만 구독불가’다. 전작인 『쿄시로 2030』은 모든 것이 통제된 근 미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섹스와 폭력의 만화경이었다.
토쿠히로 마사야의 만화는 이번에도 ‘19세 미만 구독불가’다. 전작인 『쿄시로 2030』은 모든 것이 통제된 근 미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섹스와 폭력의 만화경이었다. 토쿠히로는 정말로 폭력과 섹스를 좋아하는 만화가다. 언제나 토쿠히로는 노골적으로 섹스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섹스로 대표되는 인간의 욕망은 부정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 속에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처절한 탐구를 시도했던 『쿄시로 2030』에 이어, 토쿠히로가 뱀파이어란 존재에 도전하는 이유도 ‘욕망’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물론 뱀파이어의 본산지인 서구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만들어진 뱀파이어 만화나 영화도 많다. 섹스와 폭력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전형적인 뱀파이어뿐만 아니라, 『양의 노래』나 『블러드 얼론』처럼 독특한 시각으로 뱀파이어를 그린 만화도 있다. 그렇다면 토쿠히로는 뱀파이어를 어떤 시각으로 그려낼 것인가.
온 가족이 살해당한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고등학생 혼다 쇼헤이. 그에게는 초능력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책상에 올려놓은 지우개를 공중에 띄워보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쇼헤이는 세상을 날려버릴 힘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그저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쇼헤이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쇼헤이에게 능력이 있다면서, 그 능력으로 자신을 도와달라는 마리아는 그에게 처음으로 섹스를 가르쳐준다.
마리아의 정체는 뱀파이어다. 흔히 보는 불사의 뱀파이어와는 달리, 마리아는 무한한 존재가 아니다. 죽을 때가 되면 무성생식으로 아이를 낳고, 아이는 모든 기억을 물려받는다. 용모가 똑같고, 기억도 공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불로불사라고 믿는다. 아니, 그 말도 맞다. 마리아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거나, 뇌를 완전히 헤집어놓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재생된다. 그런 불로불사의 비밀을 캐려고 수많은 인간이 달라붙는다. 진시황이 불로불사의 명약을 얻으려고 했듯이, 권력을 쥔 자들은 누구나 불로불사를 원한다. 뱀파이어의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
반면 불로불사의 뱀파이어는 영원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자기가 사랑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하고, 어리석은 짓을 계속 반복하는 인간을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을 없애려는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지금 마리아를 잡으려는 자들은 2차 대전 말기 공습으로 떨어져 나간 마리아의 팔을 입수한 거대 재벌이다. 그들은 마리아의 팔을 조사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영원한 세포재생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러면 태아처럼 면역력이 약해진다. 결국 개발한 약은 불치병을 앓는 사람의 생명을 3년 연장하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영원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권력자, 기업가들은 아낌없이 돈을 바친다. 마리아를 잡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이처럼 『뱀파이어』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토쿠히로는 권력자들의 영원에 대한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토쿠히로가 긍정하는 욕망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소한 욕망, 자신의 작은 생명을 소중하게 가꾸다가 이름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의 일상적인 욕망이다. 먹고, 자고, 섹스하고, 웃고, 즐기고 등등.
하지만 반드시 탐욕만이 문제가 아니다. 마리아에게는 또 하나의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마리아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리아를 숭배하면서, 그녀를 신으로 받들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잔인하게 공격한다. 마리아를 숭배하는 자신들만이 선이라고 믿으며, 인간의 사소한 욕망을 부정한다. 신처럼 순수하고 고결해지고자.
그러나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길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정당하지도 않다.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그 욕망을 올바르게 쓰는 길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마리아가 쇼헤이를 찾은 건 단지 보디가드가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리아에게 필요한 것은 불사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뱀파이어의 영원을 탐하지도 않고 숭배하지도 않는, 그저 친구나 애인으로서 옆에 늘 있어주는 사람. 뱀파이어도 인간처럼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토쿠히로가 그리는 뱀파이어는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소수인 뱀파이어는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에게 오히려 위협당하는 존재다. 토쿠히로는 뱀파이어를 다루면서도, 초월적인 뱀파이어가 아닌, 끊임없이 일상을 갈망하고 타인과 공존해야만 하는 존재를 그려낸다. 그게 더 인간적이다.
토쿠히로 마사야의 『뱀파이어』는 뱀파이어라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토쿠히로의 스타일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만화다. 토쿠히로는 인간의 욕망을 섹스와 폭력이란 도발적인 형식으로 그리면서, 개성적인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가다. 불로불사의 마리아와 염동력을 지닌 쇼헤이가 어떻게 ‘사악한’ 인간들과 싸워나갈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해 토쿠히로가 어떤 성찰을 보여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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