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선배가 말했다. 싸울 때는 독어로, 사랑을 속삭일 때는 불어로 말하면 제격이라고. 진정 프랑스어로 주고받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이렇게 감미로울 줄이야! <노트르담 드 파리> <십계>와 함께 프랑스 3대 뮤지컬로 꼽히는 <로미오 앤 줄리엣>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대를 장악하는 화려한 색감
막이 열리면 무대 양쪽에 푸른색과 붉은색 옷을 입은 무리가 나뉘어 서 있다. 조명이 번갈아 비추면, 색깔은 같지만 디자인은 저마다 다른 의상을 입은 푸른색의 몬테규 가와 붉은색의 캐플랫 가가 서로 으르렁거린다. 그런데 이 의상의 디자인과 색감이 예사롭지 않다. 원색의 빨강과 파랑에서 명도와 채도를 낮췄고, 다양한 프릴과 레이스를 더해 르네상스 시대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한편으로는 집시풍의 자유로운 멋을 살렸다.
장면이 가면무도회장으로 바뀔 때도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그 장면. 그 순수하고 맑은 사랑을 담아내려는 것인지 무대 위에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배우들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은 흰색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우아하며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조명 또한 의상의 화려한 색감을 좇아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낸다.
| 로미오 앤 줄리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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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문의 울분을 표현하는 역동적인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매우 연악하고 여리지만, 그래서 무대 위 군무도 아름다운 사랑에 초점을 맞춰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표현될 것 같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푸른색과 붉은색 의상으로 대비되는 몬테규와 캐플랫 가는 잘 알듯이 원수지간이다. 그러나 그 감정이 대사로 표현되는 부분은 많지 않다. 두 무리가 맞붙게 되면 서로 엉키고 밀쳐내고 싸움질이지만 이 모든 동작은 역동적인 안무로 표현된다. 때문에 다른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군무는 물론이고 기계체조나 서커스 동작을 보는 듯한 아크로바틱,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듯한 더욱 격정적인 동작이 가득하다.
또한 일부 배우는 남녀를 불문하고 매우 큰 키를 자랑하는데, 게다가 모두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렀다. 이 장신들이 금발의 또는 흑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춤을 또는 공중무예를 펼친다고 생각해 보라.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그 역동적인 아름다움은 주인공들에게 다가올 불운을 예감이라도 한 듯 더욱 뜨겁고 크게 피어나 객석의 눈을 사로잡는다.
불멸의 사랑을 담아내는 호소력 짙은 가창력
첫 공연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배우들의 가창력이 제대로 가다듬어졌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분명 호소력은 있었다. 또한 멜로디가 무척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아직도 귀에 아른거린다. 1막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O.S.T 앨범을 구매하고자 티켓부스를 찾을 정도였다.
실제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러브 테마인 ‘Aimer(사랑한다는 건)’와 ‘Les Rois du Monde(세상의 왕들)’는 지난 2001년 파리 초연 당시 프랑스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불어로 부르는 사랑의 테마곡은 한없이 감미롭고 또한 긴박하면서도 웅장해, 마지막 무대 인사 때 앙코르에서도 객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 감미로운 한밤의 세레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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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예술적 감각으로 재창조된 <로미오 앤 줄리엣>
재밌게도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프랑스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뮤지컬은 원작이나 영화를 통해 맛볼 수 있었던 재미와 감동에 만족하지 않고, 화려한 의상과 역동적인 안무, 흡인력 강한 음악으로 새로운 감흥을 선사한다.
특히 로미오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여신’은 뮤지컬만의 볼거리다. 신비하면서도 음산한 표정과 몸놀림, 그 팽팽한 긴장감은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한층 높인다.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2막의 여러 행위예술도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이 이렇듯 대중성과 함께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임을 과시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360도 회전하며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는, 특히 1층에서 3층까지 활용해 때로는 2·3층 관객에게 더 나은 시야를 제공하는 무대 세트며, 조명, 의상, 음악, 안무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는 완벽한 무대는 깊은 감동과 함께 남모를 부러움까지 자아내게 했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은 2001년 초연 이후 아시아 국가 가운데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무대에 올랐다. 그만큼 국내 뮤지컬 시장이 커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급성장하는 시장 규모에 걸맞게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 쏟아지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 로미오와 그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여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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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벤볼리오, 로미오, 머큐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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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오리지널팀 내한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2007년 1월 20일 ~ 2월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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