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명배우들의 명연기, <신의 아그네스>

두 배우가 선택한 작품은 지난 1983년 국내 초연 이후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으며 꾸준히 사랑받는 <신의 아그네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최근 관록 있는 여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잇따라 오르고 있다. 지난 12월 <강철>로 무대에 오른 윤소정이 소름 돋는 연기로 객석을 술렁이게 하고, 재작년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도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그리고 연극계 간판스타 박정자, 손숙도 나란히 한 무대에서 열연하고 있다. 두 배우가 선택한 작품은 지난 1983년 국내 초연 이후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으며 꾸준히 사랑받는 <신의 아그네스>. 특히 두 배우는 15년 전에도 <신의 아그네스>로 함께 무대에 올랐던 만큼, 그 기대가 더욱 크다.

리허설 공연이 있었던 지난 1월 8일, 손숙 씨를 직접 만나봤다

리빙스턴 박사 역의 손숙

Q. 두 분이 15년 만에 <신의 아그네스>로 다시 한 무대에 오릅니다. 같은 작품을 같은 배우와 다시 연기한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A. ‘똑같은 작품을 왜 또 연기하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일단 배우로서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인 것 같아요. 작품이 좋으면 보강하고, 재분석하고, 또 연출가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되잖아요? 연극은 그런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좋은 작품은 무대에 또 올리고 또 올려도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박정자 씨와 다시 무대에 오르는데요. 사실 박정자 씨가 원장 역을 하면 저도 하겠다고 했어요. 글쎄요, 재미도 있고 겁도 난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15년이라는 세월이 있으니까 연륜이 더해진 만큼 더 깊이 있고, 예전에 놓친 것도 되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거예요. 반면 그때처럼 풋풋하지는 않겠죠?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어려운 게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박정자 씨가 많이 격려해 줍니다.

Q. <신의 아그네스>는 책과 영화로도 인기가 높은데요, 연극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A. 무엇보다 무대에서 배우와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물론 책과 영화도 나름의 특별한 멋이 있겠지만, 2시간 동안 관객들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압축되고 열정적인 무대는 다른 장르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매력일 겁니다.

Q.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작품에서 열연하셨는데, 아직 못 해본 인물이나 해보고 싶은 배역이 남아 있을까요?

A. 춘향이도 못 해봤고, 줄리엣도 해보고 싶어요(웃음). 그런데 나이가 들면 맡을 수 있는 배역에 한계가 있잖아요. 배역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아직도 작품을 맡게 되면 떨리고 겁이 나요. 예술에는 완성이 없는 것 같고요.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또 열심히 연기할 거예요.

<신의 아그네스>는 어떤 이야기?

수녀원의 젊은 수녀, 아그네스가 아기를 낳았다. 게다가 그 아기가 바로 살해돼 사건이 법정에 회부된다. 법정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이 당시 아그네스의 정신상태를 감정하고자 수녀원을 방문하면서, 맑고 순수하게만 보이는 아그네스의 왜곡된 어린 시절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리빙스턴도, 신의 기적을 염원하는 미리암 원장 수녀도 묻어두었던 자신의 상처를 꺼내 어루만지게 되는데….

무대는 미궁의 사건을 풀어나가고자 긴박하게 진행되지만, 사실 내용이 쉽지는 않다. 소설가 김형경 씨 덕분에 많이 친숙해진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이해가 쉬울까?

알코올 중독인 엄마가 어린 아그네스에게 가한 학대. 그 고통과 수치를 잊으려고 아그네스는 자신의 실제 삶을 외면하고, 맑고 순수한 환상 속에 살게 됐는지도 모른다. 또한 리빙스턴 박사와 미리암 원장 수녀,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의 모든 이도 아그네스를 통해 평범한 얼굴 뒤에 감춰둔 자신의 어두운 상처를 속 시원히 드러내고 위로받고자 한다. ‘나는 이렇게 아팠고, 너를 그렇게 죽이고 싶었노라’ 크게 울부짖으며, 마침내 스스로 용서하는 것이다.

왼쪽부터 박정자, 전예서, 손숙



혼을 빼앗는 명배우들의 명연기

극이 진행되는 100분 동안 객석은 세 명의 배우에게 정신을 홀라당 빼앗긴다. 중저음의 음색으로 가만가만 대사를 읊조리지만 카리스마 그 자체인 박정자. 특히 이 심각한 내용의 희곡에서도 때때로 객석에 웃음이 번지는데, 그 코믹함은 신기하게도 대부분 박정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기묘한 표정, 엇박자로 받아치는 대사, 간혹 중저음을 벗어나는 고음의 추임새. ‘명연기란 이런 것이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손숙은 어떤가? 예순을 넘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곧은 몸매, 똑 부러진 말투(대사가 너무 많은데다 전투적인 역이어서 안타깝게도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다). 냉철하면서도 한없이 인간적인 배역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 그렇게 표현되는 감정의 다채로운 변화에 객석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국내 연극계 간판스타인 이들은 아직도 무대에 설 때마다 설레고 겁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예순을 넘기고도 무대에서 이렇게 열연하는 모습이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지 그들은 알까? 어쩌면 그네들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매번 새로운 에너지를 머금고 새롭게 태어나는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의 명연기



언젠가 연극 <갈매기>를 보는데 누군가 내용이 지루했던지 “아~ 갈매기살 먹고 싶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콘서트나 뮤지컬보다 연극은 ‘재미’ 면에서는 뒤처진다. 그러나 복잡하고 깊은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연극만 한 장르가 있던가? 연극의 그 같은 ‘멋’과 ‘맛’을 알게 된다면 연극을 보는 ‘재미’도 차츰 늘어날 것 같다. 특히 이렇게 관록 있는 배우들이 휘젓는 인생사는 재미를 넘어선 깊은 감동까지 선사할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