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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가 잘 팔린 까닭

로렌 슬레이터의 심리실험 탐구와 심리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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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이 실험자의 주변인물이나 실험 참가자를 찾아나서는 취재 열의는 기자와 논픽션 작가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심리학자인 그녀의 전문적 식견과 신중한 자세 또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심리실험이 영 마땅치 않다. 또한 그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실험은 실험일 뿐인데 특정한 실험결과가 마치 인간의 행동양식을 간파한 것인 양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일회적으로 실험결과를 발표하는 무책임한 학자와 검증과정 없이 그걸 유포하는 데 여념이 없는 언론에는 거부감마저 생긴다.

번역자가 불분명한 『마시멜로 이야기』의 모티브인 ‘마시멜로 실험’을 봐도 그렇다. 15분을 참고 기다려 마시멜로를 하나 더 얻은 아이들과 15분을 못 참아 그걸 삼킨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10년간 추적했더니, 15분을 참았던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공부 잘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이걸 믿으라니,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하나만 보고선 열을 알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설령 예외가 있다 해도, ‘마시멜로 안 먹고 15분 버티기’는 그런 잣대로 한참 모자란다. 아무튼 20세기의 대단한 심리실험 10가지를 다룬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가 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조증열 옮김, 에코의서재, 2005)는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 않았다. 문턱을 넘자 순탄한 길이 열린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가 잘 팔린 까닭

이 책의 번역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로렌 슬레이터의 글발이 만만치 않다. 작년 연말 잇달아 불거진 대필 스캔들의 와중에 터져 나온 ‘그러면 문학하는 사람만 책을 내야 한다’거나 ‘문학수업을 받지 않으면 단행본 분량의 글을 쓸 수 없다’는 식의 주장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이 책에서 슬레이터는 필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뽐낸다.

옮긴이의 지적대로 “줄거리와 욕구와 인간이 살아 있는 ‘이야기체’ 서술 방식” 또한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로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 텔링’ 자기계발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는 실험자라는 한 ‘인간’이 자신의 이론을 발견하기까지 겪었던 일련의 과정들을 생생한 필체와 맥락을 가지고 전개함으로써 각 이야기에 ‘역사성’과 ‘필연성’ 그리고 ‘극적인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었다.”

20세기의 대단한 심리실험은 그것을 실행한 20세기의 위대한 심리학자 또는 정신의학자와 짝을 이룬다. 로렌이 실험자의 주변인물이나 실험 참가자를 찾아나서는 취재 열의는 기자와 논픽션 작가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심리학자인 그녀의 전문적 식견과 신중한 자세 또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형성하는 과정과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도 우리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저런 생각에 이끌리게 되는지, 왜 어떤 기억은 보관되고 어떤 기억은 폐기되는지, 이러한 기억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로렌 슬레이터는 “10가지 실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새로운 세상에 어떤 현재적 의의를 지니는가를 질문함으로써, 그것을 동시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나는 “세상을 놀라게 한 심리실험 10가지” 가운데 권위에 대한 복종에 관한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기계 실험이 인상적이었다.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사람들이 성격보다는 상황 탓에 파괴적인 복종에 굴복한다고 보았다. 아주 설득력 있는 상황이라면 이성적인 사람도 도덕률을 무시하고 명령에 따라 얼마든지 잔혹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밀그램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위대한 실험”을 꾸민다.

가짜 충격기계를 만들어 놓고 학습에 관한 실험을 명분으로 내세워 지원자 수백 명을 모은 다음, 한 사람에게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기충격을 받는 사람은 고용된 배우로서 고통스러움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결과는 실험 대상자의 65퍼센트가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정도로 명령에 복종했고, 35퍼센트는 어느 시점에서 명령을 거부했다.

한 실험 참가자가 실험 직후의 신상파악을 위한 면담에서 실험의 원래 성격을 눈치 채자, 밀그램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65퍼센트가 당신처럼 행동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이 상황에서 당신이 선택한 행동은 완전히 정상입니다. 그것 때문에 안 좋은 감정을 느끼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단지 수적 우세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밀그램에 앞서 “심리학자 다니엘 프랭크가 자신이 흰 가운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피실험자들에게 머리를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라든가, 한쪽 눈을 감고 뒤로 걸으라든가, 창문에 혀를 대라는 요구를 했을 때 사람들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요구라 하더라도 응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때론 과학이 발달했다는 서구의 과학자들이 우리가 온몸으로 쉽게 체득하는 사실을 이처럼 어렵게 파악하곤 한다. 그가 단지 계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아직 푸른 옷이 낯선 젊은이들은 신병훈련소 조교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따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라, 이것들이 개긴단 말이지, 저기 축구 골대까지 뛰어갔다 오는데 선착순 ○명”이라는 명령은 약과고, 호된 얼차려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병들은 사단 신병교육대로 오는 도중 빈 막사에 들러 한바탕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밀그램이 “철저히 연출된 상황을 통해 우리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적나라한 우리의 삶을 엿보게 해주었던 것”이라는 로렌 슬레이터의 평가는 옳다. 밀그램 부인의 증언에 의하면, “남편은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어요. 결국 그는 사람들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군대는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사회심리학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우리가 언제, 어느 장소에 있었는가를 더 중요시했다”지만, 언제 어디서든 두드러지는 건 결국 ‘어떤’ 사람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군 복무를 하면서 우리 사회가 전면적이고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힘겹게 작은 개선이 이뤄질지는 모르겠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복종이나 저항과 관련된 성격적 변수가 따로 존재한다고 하면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성격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간이란 단지 상황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렌의 이런 주장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군대라는 한계 상황은 인간성을 발가벗겨 절망을 낳는다. 갓 자대에 배치되어 몸을 씻는 신병의 엉덩이와 허벅지가 시커멓게 멍든 걸 본 선임하사는 구타한 상급자를 색출해 처벌하겠다는 거짓 액션을 취하고, 쇠몽둥이에 맞아 그렇게 된 신병은 내 잘못이라며 비굴해진다. 비참한 기억이다.

“실험에 복종한 그는 엑슨의 고위 간부로 일하고 그 이후 군대에 입대한 반항아 조슈아보다 더 반항적인 생활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밀그램의 실험에 대한 로렌 슬레이터의 해석은 독특하다. “사람들의 65퍼센트는 복종을 했다. 35퍼센트는 복종을 하지 않았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은 좋은 것이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책임감 분산’ 현상

밀그램의 전기충격기계 실험에 이어지는 존 달리와 빕 라타네의 연기(煙氣) 실험은 좀 생뚱맞다. 먼저, 연기 실험은 ‘제노비스 현상’으로 불리는 1964년 뉴욕 주 퀸스 지역의 어느 아파트 앞에서 한밤중에 35분간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을 38명이 인지하고도 수수방관한 상황을 해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연기 실험은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적어진다는” ‘책임감 분산’ 현상에 관한 실험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중시한다는 것”이 맞는다면, 북한식 전체주의는 탓할 게 못 된다.

제노비스 살인사건의 증인들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또는 두려움에 몸이 얼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서 갈팡질팡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기보다는 “도시인 특유의 냉담함 때문에 모른 척했”을 것이다. 도시는 살벌하다. “그 사건에 연루된다고 해서 법적으로 손해를 입을 이유도 없었다”고 하지만, 피해자나 신고자로 경찰서를 드나드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엽기 살인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의 결론이자 ‘책임감 분산’ 현상에 대한 해결책은 어이가 없다. 대략 난감할 지경이다. 허무하기까지 하다. “만일 우리가 어떤 집단에게 사회적 신호와 다수의 무시 그리고 방관? 효과에 관한 교육을 실시한다면 그런 행동이 앞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숨은 진리를 찾는 심리동화

『루비레드』(조영희 옮김, 에코의서재, 2006)에는 심리치료를 위한 동화 15편이 실려 있다. 넓은 의미의 동화 다시 쓰기로 볼 수 있으나, 딱히 어느 범주에 포함되는지는 섣불리 속단하기 어렵다. 표제작과 「변신」은 각기 「백설공주」와 카프카 단편소설의 골격을 빌려왔다는 점에서 패러디 동화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동화나 대안 동화로 보기도 어렵다. ‘삶의 숨은 진실을 찾는’ 15편의 동화는 심리동화라는 상식적인 틀이 가장 걸맞아 보인다. 그런데 상황 설정이 괴이쩍은 이 심리동화를 나는 그로테스크 동화라고 부르겠다. 백설공주를 시기?질투하는 것은 계모가 아니라 생모고, (「루비레드」), 애인의 신체 일부와 연애하며(「내 여자친구의 팔」), “한때 내 남편은 초록색 유리병 속에서 지낸 적이 있다”(「변신」).

문외한인 나로선 이런 동화를 어떻게 심리치료에 활용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 다만, 그것에 관한 로렌 슬레이터의 원론적인 설명은 약간 알아들겠다. “나는 특히 동화가 이야기 치료에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동화는 때때로 우리들의 자아를 가장 적나라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드러내준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이전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동화는 언제나 상징적이다.”

솔직히 나는 로렌의 심리동화보다는 그녀의 ‘글쓰기론’에 귀가 솔깃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를 오가는 것을 의미”하고, “사랑을 하는 작업”이다. “그 사랑은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도덕적인 존재로도 만들어준다.” 또 “글을 쓴다는 것은 문자의 기록을 의미하며, 그것은 때때로 어떤 지속적인 일관성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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