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 이야기, 함께 하실래요? 『열정시대』 & 『편집자 분투기』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유독 두 권의 책을 소중하게 바라봅니다. 하나는 한기호의 『열정시대』, 다른 하나는 정은숙의 『편집자 분투기』입니다.
참으로 많은 책이 나옵니다. 그만큼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많겠지요. 하기야 출판사 숫자는 생각 외로 많습니다. 지난날의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흥미롭게도 그 출판사에 있는, ‘출판인’에 대한 이야기는 드뭅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나요? 소설가와 시인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학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데, 책을 만들고 홍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물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묘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유독 두 권의 책을 소중하게 바라봅니다. 하나는 한기호의 『열정시대』, 다른 하나는 정은숙의 『편집자 분투기』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두 명은 모두 유명한 출판인이지만 분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기호는 영업자였고, 정은숙은 편집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두 권의 책, 많이 다릅니다. 이야기하는 것도, 다루는 방식도.
이 책을 말하기 전에 먼저 적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자들에 관한 것이지요. 먼저 한기호는 1983년부터 15년 동안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이하 창비)의 영업을 맡았던 인물로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케팅까지 했던, 선구적인 생각을 지녔던 사람입니다. 지금이야 출판사가 기업화되면서 마케팅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한기호가 살던 시대만 해도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한기호는 책을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당시에는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앞서간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덕분에 우리는 좋은 작품을 두루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그 책들은 없었거나, 혹은 창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봐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정은숙이 편집자가 된 건 1985년입니다. 본래 그는 기자가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 그 후로 20년 동안 편집자 생활을 했네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시절엔 기자도 어려웠지만, 편집자는 더했거든요.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기자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되는 등 ‘인기직업’이 되기도 했지만, 편집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잘 버텼지요.
잘 버틴 것뿐일까요? 편집자로서 어떤 책을 만들었는지 말하면 정은숙을 알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다른 이름을 말해볼까요. 좋은 책 많이 만드는 걸로 소문난 출판사 마음산책 아시죠? 그곳의 대표랍니다. 이만하면, 정은숙의 내공, 이해되시죠?
저자가 워낙에 쟁쟁한 분들이라서 그럴까요? 『열정시대』와 『편집자 분투기』에 담긴 내용은 깊이가 있습니다. 물론 깊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듯 생생합니다. 덕분에 그 시절 출판사를 둘러싼 격동기를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열정시대』를 생각해볼까요? 영업자로서 출판계 현장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그것을 뚫었던 이야기가 가득한데,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에피소드 중심이라는 것이 더욱 그럴 텐데, 가령 이런 것이 재밌습니다. 당시 창비는 출판계에서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군사정권 아래서도 꿋꿋이 버텼지요. 그런 만큼 나라에서 곱게 볼 리는 없겠지요? 나라에서는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그중에는 후원하는 단체를 통해 압박하는 것도 있습니다. 동시집을 두고 ‘폭력 혁명’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두기도 하거나 어린이 책에 ‘민중론’이 침투해 위험하다는 식의 보도 자료를 내놓기도 하지요.
민중론이라? 상상이 되십니까? 『몽실 언니』가 판금도서 목록에 오른 건 어떨까요? 1984년 문공부 추천도서로 선정된 그 책은 다음해에 몹쓸 꼴을 당합니다. 덕분에 어느 곳에서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 교사들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황당하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런 시대에 책을 팔기 위해 돌아다녔던 그의 처지는 어땠을까요? 나라 눈치를 보거나 나라의 말만 무작정 믿고 책을 빼버리는 서점을 볼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리고 한기호의 마음을 보고 있노라면, 출판인의 열정이 보입니다. 아니지요.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열정시대』의 제목이 과장된 게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을 테고요.
『편집자 분투기』요?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고생해도 언제나 그늘로 묻혀 있는 편집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서 출판인의 열정을 분출합니다. 그렇지요. 책을 볼 때, 누가 편집자 이름을 확인하겠습니까? 아예 편집자라는 존재를 잊어버리지요. 오타가 보일 때야, 편집자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서 욕을 할 뿐이지요.
아! 저는 『편집자 분투기』가 생생해서 좋습니다. 편집자로서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한껏 어우러진 것이 그야말로 진국입니다. 게다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난 건 또 어떤지! 저는 이 책을 본 후로 변했습니다. 책을 볼 때 작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의 이름까지 확인하게 됐으니까요. 별것 아닌 것이지만, 일종의 예우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편집자 분투기』는 그 분야의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열정시대』도 그럴지 모릅니다. 출판인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멀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소설이나 수필, 한 편의 시보다 더 따뜻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다가오니 이 일을 어쩔까요? 다른 분들도 그럴 것 같은데 어떨까요?
책 한 권을 통해서 누군가의 열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드문드문 나오는 출판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자, 흔하지 않은 이 책들, 언제까지 놓아두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