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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rebirth'를 선사하는 맑은 눈물의 책

『플랜더스의 개』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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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좀 더러운 이야기 하나. 막 한글을 큰 막힘없이 후루룩 읽게 되었을 즈음, 푸세식이라 철따라 구더기마저 드문드문 보이던 화장실에 앉아 『플랜더스의 개』를 펼쳐든 어느 오후였습니다.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좀 더러운 이야기 하나. 막 한글을 큰 막힘없이 후루룩 읽게 되었을 즈음, 푸세식이라 철따라 구더기마저 드문드문 보이던 화장실에 앉아 『플랜더스의 개』를 펼쳐든 어느 오후였습니다. 나는 온몸에 냄새가 찌든 것도,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내린 것도 무시한 채 울고 울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다’라는 느낌을 생전 처음으로 가져본 것 같습니다. 착하고 힘들게 산 한 어린아이의 짧은 생은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아무리 원하고 노력해도 끝내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선언이었고, 어쩌면 나 자신도 살아가는 길목에서 저러한 사실을 더러 절감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었을 것도 같습니다.

첫발을 내딛고 난 이후로 슬픔은 더 쉽게 읽혔습니다. 왜냐하면 도처에 슬픔이 널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그러했고 『인어공주』가 그러했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가엾은 여인 낸시가 그러했고 『안나 카레니나』가 그러했습니다. 과연 예감은 맞아떨어져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던 스무 살에는 세포 하나하나가 물거품으로 변해버린 인어공주의 마음이 저리게 내려앉았고, 어린 딸 손을 잡고 언 거리 한 모퉁이에 섰던 서른 몇의 어느 날엔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이던 소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설마 그 『플랜더스의 개』 말이야? 한때 TV에서 저녁마다 어린이 시간에 방영했던 그 만화영화? 이런 의문, 당연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급전환시켜 오늘 이 자리에 이르게 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 방향이 진보냐 아니냐는 차치하고, 내 인생의 가장 특별한 책이라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 시절, 이 책은 내게 긍정하라, 긍정하라고 일러주었고, 지금도 간단없이 이 메시지를 내게 날립니다. 긍정하라. 무엇을? 모든 태어난 것은 저마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삶에는 알게 모르게 슬픔이 배어있음을, 때로 슬픈 것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그리하여 존재하는 것을 가만히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는 습관을 익혀라.

위의 모토 아래 나는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남편을 선택하고 살아왔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라 슬픈 아름다움 따위 편안히 사는 이들의 여흥거리로만 치부하는 세태에 웬 생뚱맞음이냐 하면 할 말 없습니다만, 긍정하라는 말이 단순히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말로만 들리는 이들에게 ‘참, 할 짓 없다’로 보인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삶에는 반드시 눈물로 씻어내어야 할 공간이 있지 않을까요? 증류수나 육각수로도 정화되지 않고, 오로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눈물로만 깨끗해지는 그 무엇. 그리하여 내부를 ‘refresh’하고 ‘renewal’하여 급기야 작은 ‘rebirth’, 즉 ‘거듭남’을 경험하게 하는 그런 ‘깊은 감동’ 말이지요.

자, 『플랜더스의 개』가 너무 어린이 책이라 읽기 민망하다고 하는 분들을 위해 권하는 특별한 책 한 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원제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입니다. 이 귀중한 책을 저도 최근에야 만났습니다. 한동안 네로를 잊어버리고 동분서주하던 일상에 내린 가느다란 빗줄기. 삶의 고달픈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일단 함께 울어주고, 이어 따뜻한 밥 한 끼 먹인 다음, 따끔한 충고까지 풀 옵션으로 제공하는 친구가 내게 권한 책입니다.

모름지기 ‘맑은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책이야말로 문학이다’라는 어쭙잖은 지론을 견지하는 내게 이 책은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한 새벽을 꼬박 바쳐 엎드렸다 누웠다 하며 읽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한순간에 나를 푸세식 화장실의 그 오후로 이끌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아깝거나 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슬퍼서 울었습니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내 아이들을 위한 책을 탐색하느라, 혹은 남들 다 읽었다 하니 창피하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책을 읽어온 내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책 읽기의 처음, 그 순수한 즐거움을 되돌려주어, 나는 꺽꺽 즐거워하며 눈물을 뽑았습니다.

부모를 잃은,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섞인 아이의 이름은 ‘작은 나무’입니다. 그는 역시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섞인 할아버지와 순수한 체로키 인디언 할머니와 함께 숲 생활을 시작합니다. ‘작은 나무’라니! 어쩌면 이렇게도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란 말인지요. 각설하고, 저자의 자전적인 이 소설은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인디언의 순수한 삶과, 법?제도?테크놀로지로 무장한 백인의 삶을 대조적으로 비추어주며, 내가 인디언이 아닌 백인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합니다.

인디언은 짝짓기 철에는 덫을 놓지 않는다 합니다. 세상 어느 것도 짝짓기와 싸움을 동시에 할 수 없으므로 싸울 수 없는 동물을 상대로 덫을 놓지 않는다 합니다. 인디언은 필요하지 않을 때 절대로 사냥을 하지 않는다 합니다. 사냥을 즐기는 건 백인뿐이라 합니다. 인디언은 어리고 허약한 동물을 공격할지언정 무리 중 가장 힘세고 강한 것을 건드리지 않는다 합니다. 그들의 종족을 튼튼히 보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 합니다. 과연 이들은 이 책에서 무수히 나오듯이 야만적인가요?

나는요, 고백하건대 이따금은 조그만 덫을 놓고 누군가 걸리기를 기다리며, 상대가 약할 때를 노려 공격하며, 필요한 것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곤 합니다. 반성합니다. ‘작은 나무’가 존재하지도 않는 인디언 연방을 찾아 길을 떠나는 모습 뒤에서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반성합니다. 그러나 그 새벽녘, 작은 ‘rebirth’로 새로워진 뒤이므로, 당분간 나는 조금 더 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나무’의 슬픈 아름다움이 한동안은 내 속을 오갈 것 같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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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파란흙). 같이 시작한 남녀들이 모두 무슨 잡지사, 출판사의 최고위층에 도달했다 마침내 더러 하산해 있는 동안, 이리저리 어정거리다 결국 애 엄마, 직원 전무하다시피 한 조그만 편집회사의 농땡이 사장, 속도 느려 터져서 출판사를 애먹이는 영문 단행본 번역자라는 여러 타이틀을 지니게 되었다. 아, 일주일에 두세 번 논술지도도 한다. 참 오지랖 넓으나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 예스24 독서도우미클럽 여러분과의 친교가 삶의 활력소. Thank you. 좋은 책 한 권 찍어내고, 길이 남을 번역 한 권 하고 싶다. 방금 안도현 님의 『연어』 책 뒤를 보니 1판 37쇄 2판 57쇄란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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