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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은 삶을 동경하다

자연생태 저술가 데이비드 쾀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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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 1947- )의 『야생에 살다』(이충호 옮김, 푸른숲, 2006)는 길들여지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출판 전문 잡지에서 청탁받은 글을 쓰려고 이른바 ‘스토리 텔링’ 서적을 읽는 중이다. 스토리 텔링 서적이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마시멜로 이야기』로 대표되는 우화 형식의 실용 처세서를 말한다. 집에 없는 책 서너 권을 예스24에 주문해서 구입했는데, 이 책들의 쇄수가 만만치 않다. 어떤 책은 출간 1년 20일 만에 무려 93쇄를 찍었고, 또 어떤 책은 석 달 만에 20쇄를 찍으며 쇄수를 늘려가고 있다.

스토리 텔링 서적의 판매 호조는 우화 형식의 ‘이야기’에 크게 힘입은 결과다. 이야기적 요소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밑거름인 셈이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본 칼럼의 조회수가 최근 부쩍 는 것 역시 ‘이야기’를 선호하는 추세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세 번 연속해서 내 얘기를 하는 건 무리가 따르는 거라서 자제하려 했으나, 리뷰 대상도서가 다시금 자기고백의 계기를 만들어준다.

야생의 삶을 말하다

생태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 1947- )의 『야생에 살다』(이충호 옮김, 푸른숲, 2006)는 길들여지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쾀멘이 이 책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독자 “여러분에게 야생자연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하고, 다소 신축적이고 포괄적인 ‘야생자연’의 정의에 친근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넓은 의미의 야성(wilderness)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절대 안전과 확실성에 오염되지 않은 지리적 또는 감정적 환경에서라면 어디든지 존재한다.” 그것은 코요테 무리가 사는 미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 산기슭에 깃들어 있지만, 뉴욕 맨해튼 중심부의 빌딩 숲에도 있을 수 있다.

쾀멘은 “우리가 사는 지구 모든 곳을 더 편평하고 길들여지고 단순하고 추한 모습으로 만드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인간에게는 거대하고 두렵고 살인적인 야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담담하게 우리를 죽일 능력이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자연 속의 야수와 장소와 힘을 보전할 필요가 있다.”

물살이 거센 골짜기가 있는 칠레의 푸탈레우푸 강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처럼 호랑이, 소만악어, 갈색곰, 코모도왕도마뱀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피조물의 정점에 서 있는 무적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존재들은 우리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야생마’였다

이제 나의 출판언론계 생활이 12년째로 접어든다. 한데 그동안 출퇴근을 한 기간은 불과 2년 남짓이다. 첫 직장인 서평전문지 기자 시절, ‘야생마’라는 소릴 들었다. 프로야구의 이상훈 투수와 같은 별명이 붙은 게 좀 어이없기는 했다. 나는 갈기 머리를 휘날리거나 불 같은 강속구를 던진 일이 없어서다.

그게 조직생활에 잘 맞지 않는 인간형을 뜻한다는 걸 한참 후에 깨달았다. 이런 성향을 스스로 부지불식간 알고 있었는지 몰라도,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업을 아예 포기했다. 백수 생활 3년 만에 운 좋게 들어간 잡지사가 일반직장보다는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곳이어서 그나마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 첫 직장에 복귀했으나, 이번에는 6개월을 다녔다. 내가 한 직장을 두 번째 그만둔 과정은 ‘야생마’란 소릴 들을 법도 하다. 서평전문지의 발행처는 정부가 출연한 출판기금을 관리하는 기구였고, 그곳의 명목상 책임자는 퇴직한 공무원이었다. 정부 관련부처의 국장급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자리였는데, 정권이 바뀔 때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으로 교체되었다.

사단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여름날의 점심 회식장소에서 벌어졌다. 나는 그날의 회식이 못마땅했다. 외국 도서전에 다녀온 잡지의 영업책임자를 환영한다는 게 회식의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장기 근속자를 배려하는 차원이라고는 하나, 도서전은 마땅히 취재기자가 다녀왔어야 했다.

윗분들은 그런 자리에 늘 늦게 나타난다. 아랫것들은 미리 가서 그들을 기다린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그날따라 안 하던 짓을 했다. 그냥 시간을 보내기가 무료했는지, 동료 기자들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이윽고 등장한 윗분들이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조직’의 명목상 책임자께서 영업책임자가 사온 외국 술을 꺼내들어 짧은 공치사를 한 다음, 좌중을 둘러본다.

이제 부하 직원들에게 술을 따를 차례다. 그런데 아랫것들의 잔에 술이 부어져 있지 않은가. 그는 무례하게 어떤 놈이 그랬느냐는 식으로 심하게 나무란다. 나는 기분이 몹시 언짢다. 어떻게 하지? 몹시 불쾌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서 식당을 빠져나와 사무실에 들렀다가 바로 귀가했다. 이튿날 잡지사를 그만두었다.

빼어난 ‘단편선’

앞서 번역된 쾀멘의 책 두 권이 장편소설이라면 『야생에 살다』는 단편소설집이다. 그것도 보석 같은 작품을 추린 빼어난 단편선집이라 할 만하다. 책에 실린 23편의 글이 하나같이 밀도 있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이 책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홍동선?홍욱희 옮김, 범양사출판부, 1988) 정도다.

전문성도 굴드의 책에 뒤지지 않으면서 이야기의 폭은 한결 넓다. 주로 강과 도시와 산의 자연생태를 다룬다. 그런데 미국 최초의 대륙간 핵미사일(ICBM) 발사기지라는 예외적인 소재를 다룬 「지옥의 열쇠」는 생생한 군사르포를 방불하게 한다. 핵미사일 기지에 근무하며 유사시 미사일 발사 임무를 맡은 장교는 ‘개인적 책임 최종 확인서’에 서명해야 한다.

“나는 미사일 전투요원의 책임을 이해하고, 이 임무 수행에 따르는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나의 능력과 신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음을 보증합니다.” 이 진술서에 서명한 훈련생은 미사일 요원 훈련을 계속 받지만, 서명하지 않은 훈련생은 미 공군을 떠나야 한다.

굴드의 문장도 매끄럽지만 쾀멘의 문장 또한 그에 못잖게 운치가 있다. “남극 대륙은 경사가 완만한 돔 모양의 대륙이 얼음 무게 때문에 셰브롤레 자동차의 천장이 움푹 꺼진 것처럼 납작하게 짓눌려 있다.”(「얼음 밑의 딸기는 얼지 않는다」) “우리는 머리가 희끗희끗 새어가고 갚아야 할 대출금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있는, 한창때를 지난 아마추어 물놀이꾼에 불과하다.”(「소용돌이」)

진솔하고(‘야생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은 바로 이거야!’), 장난기 어리며(“고것 참 쌤통이다!”), 역설적인 표현에선 익살스러움을 뽐내기도 한다. “사실, 나는 숲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나머지, 농구를 하며 치료 교육을 받아야 했다.” 또한, “마흔을 지나면 삶이 훨씬 복잡해지고 아주 바쁘게 쪼개진다”라는 문장에선 삶에 대한 성찰이 빛난다.

나는 무엇보다 쾀멘의 단정적 진술에 크게 공감한다. “장점이 많다 해도 책은 그저 책에 불과했다.” “실용성은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비실용적인 것의 겉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일 뿐이다.”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이와 함께 댐과 동물원을 보는 그의 생태 친화적인 시각을 지지한다.

“댐을 건설해 강을 가둔 물에 푹 잠기게 하는 것은 뭔가 다른 것을 얻기 위해 이전의 강을 죽이는 것이다. 단순히 전기를 생산해 팔아먹기 위해 합당한 이유 없이 댐을 건설하는 것은 지구 전체로 볼 때 또 하나의 야생 장소가 사라지고, 지구는 예전보다 다양성이 감소되고, 더 편평하고 길들여지고 단순하고 추한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에 비극이다.”

“동물원에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지난 150년 동안 동물원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된 서커스단의 동물에 대한 평가를 좀 더 지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높이기 위해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동물원은 그다지 교육적이지 못하다.”

책다운 책

다윈이 따개비를 탐구한 『만각아강(蔓脚亞綱)에 관한 연구(A Monograph of the Sub-Class Cirripedia)』에서 진화를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굴드는 초창기의 대중적 수필에서 ‘다윈의 지연(Darwin’s Delay)’이라 표현했다고 쾀멘은 지적한다. ‘다윈의 지연’은 『다윈 이후』의 첫 장이다.

쾀멘은 다윈이 따개비에 깊이 빠져 진화론 발표를 늦춘 까닭으로, 그가 따개비에서 마치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깊이 공감했다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그런데 다윈이 자서전에서 따개비 연구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많은 시간므 들일 가치가 있었겠느냐 회의를 품었다는 쾀멘의 설명은 다윈의 자서전과 일치하지만, 다윈의 연구 열정과 은둔 기질에 관한 내용은 약간 다르다.

「다윈과 따개비」에서 쾀멘은 다윈이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다윈이 따개비 연구에 열중했던 때문으로 풀이한다. 반면, 다윈은 자서전에서 “건강이 너무 나빠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유언 집행인 중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라고 술회한다.

『야생에 살다』는 책다운 책이다. 책의 진가를 말해주는 대단한 책이다.

알파 포식자

인간을 먹고 산 식인 동물에 대한 문화생태학적 고찰인 『신의 괴물』(이충호 옮김, 푸른숲, 2004)은 쾀멘의 최신작이다. 이 책은 사람을 잡아먹는 포식동물을 다룬다. 쾀멘은 그런 동물을 ‘알파 포식자’라 부른다. 그러한 동물을 한데 아우르는 과학적 명칭이나 공식적인 범주가 아직 없어서 쾀멘이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알파 포식자에는 선택받은 일부 동물만 속하지만, 동물학적 경계를 초월하여 포유류?어류?파충류 등 다양한 동물이 포함된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러한 분류는 작위적인 것으로, 분류학적으로나 생태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 실체는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심리적인 것이다.”

알파 포식자로는 호랑이, 갈색곰, 백상아리, 나일악어, 소만악어, 사자, 표범, 홍상어, 북극곰, 코모도왕도마뱀을 포함한 그 밖의 몇몇 종이 있다. 퓨마는 유력한 후보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아프리카비단구렁이, 그물비단구렁이, 아나콘다, 재규어와 몇몇 악어류와 상어류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그 정도가 전부다. 큰 고양이과 동물, 몇몇 연골어류, 일부 파충류, 두세 종의 곰이 전부다. 이들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몸집이 아주 크고, 때로는 동물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잡아먹을 만큼 사납고 식욕이 왕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들 동물에게 느끼는 위협은 여타 동물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이 책은 알파 포식자에 대한 탐색기다. 쾀멘은 지구상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알파 포식자의 서식지를 찾아 나선다.

섬 생물지리학

『도도의 노래』(이충호 옮김, 푸른숲, 1998)는 섬 생물지리학에 근거한 멸종생물탐사기다. “생물지리학(biogeography)은 종의 분포와 분포 유형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이다. 즉, 동물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식물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살고 있지 않은 곳은 어디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관심을 특별히 섬에 집중하는 분야를 섬 생물지리학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쾀멘은 진화생물학자 알프레드 월리스의 복권을 꾀한다. 월리스는 찰스 다윈과 더불어 진화론의 양대 근원을 이루는 인물이지만, 다윈이 진화론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데 비해 월리스는 겨우 이름만 남아 있다. 쾀멘은 다윈이 더 뛰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월리스의 업적이 누락된 것에 주목한다. “그의 가장 큰 과학적 업적은 격리가 지닌 중요성을 발견하고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그런데 쾀멘의 이름을 우리에게 처음 알려준 『도도의 노래』에 묘한 징크스가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책은 늘 품절 상태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역시 품절일 때 이 책을 구입했다. 내가 가진 『도도의 노래』는 2001년 6월 15일 펴낸 초판 4쇄(1권)와 1999년 12월 10일 펴낸 초판 3쇄(2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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