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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은 재미없다? - 『자정의 픽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당신이 봤던 한국소설은 진지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설은 또 하나의 운동이었고 당연하게도 시대의 고민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농담도 없었고, 장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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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봤던 한국소설은 진지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설은 또 하나의 운동이었고 당연하게도 시대의 고민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농담도 없었고, 장난도 없었다. 주제의식을 부각하고자 등장한 에피소드는 하나같이 고민스러웠다.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읽고 나면 함께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덮기로 했다. 사는 것도 고민스러운데 소설까지 보며 고민하고 싶지 않았던 게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그 태도는 지극히 당연했고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입에서는 “한국소설은 재미없다”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 그만. 박형서 소설집 『자정의 픽션』을 보면 그 말은 정말 그만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막히고도 찬란한 ‘구라’가 만발한 이 소설집을 본 순간, 헉! 하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왜냐? 구라 섞인 농담이 가득한데 그것은 농담으로만 끝나지 않고, 고민스럽지만 고민으로도 끝나지 않고, 진지한 것 같지만 웃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재밌는 소설인 셈이다.

당신은 그 유명한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알 것이다. 『자정의 픽션』은 그것의 ‘음란성’을 연구한다. 무슨 엉뚱하고도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단어를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음란성’이다. 그 소설에 무슨 음란성이 있는가? 어머니가 사랑손님에게 줬고, 사랑손님이 옥희에게 줬던 달걀을 XX로 해석하면 그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XX가 뭐냐고? 그건 책을 보면 알 일인데, 어쨌거나 이 작품은 소설집의 구라를 힘차게 보여주고 묘한 웃음을 짓게 한다.

당신은 ‘논쟁’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을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승부사가 되고 싶을 것이다. 『자정의 픽션』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소설 속의 학자들은 ‘유리한 주제의 선정’, ‘은근히 겁주기’, ‘무시하기’, ‘반말하기’ 등으로 열심히 논쟁하는데 이게 참 웃기다. 왜냐? 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수를 동원해봤자 힘센 놈이 와서 “이 X들아! 조용히 해!” 하며 ‘무력’을 사용하면 논쟁의 기술이든 뭐든 다 끝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호, 통재라. 박형서, 정말 멋진 농담을 기막힌 타이밍에 던진다. 이 농담에 박수를.

당신이 봤던 한국소설은 또한 치밀했다. 너무 치밀해서 재미없었다. 그렇다. 마치 데이트할 때 미리 각본을 다 짜두고 나오는 것처럼, 소설은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하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 행동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문제는 사람들의 삶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의 삶만 해도 그렇다. 당신의 삶에 우연적인 일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나비효과니 뭐니 해서 뉴욕의 나비가 날갯짓을 한 탓에 당신이 우연히 무슨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다면, 송구스럽다. 이 글 읽지 않기를 바란다.)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데 사람은 우연적인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데, 소설은 그런 것이 없다. 모든 것을 필연으로 한다. 서사 때문이다. 그러니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당신은 처음 한두 번이야 ‘소설이니 그렇지’ 하고 넘기다가 나중에는 아예 안 봤을 것이다. 아침 드라마가 더 실감나기 때문이고 언제부턴가 당신은 “한국소설은 고리타분해”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도 이제 그만. 이기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본다면 그 말도 정말 그만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기호의 소설은 엉뚱하다. 소설 따라했다가 비웃음 산 남자도 나오고, 국기 게양대에 매달려 사랑타령을 하는 사람도 나온다. ‘도대체 이게 뭐야?’ 싶은데 너무 엉뚱한 탓에 웃음이 킥킥 나온다. 이거 참, 하는 소리도 연발해야 한다.

당신은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에 관한 외국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도 그런 이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거 참, 기막히게도 아름다움은 없다. 그럼 뭐가 있는가? 장면을 보자. 읽어주는 소설은, 옷 벗고 들어야 하는 소설이란다. (이유는 묻지 말라. 소설에 그렇게 나왔다.)

주인공은 옷을 벗게 하는데 문제는 듣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18세 이상이 아니더라도 그 후의 응응하는 이야기는 다 알 것이니 긴 설명은 그만두고 엉뚱함이 생동감 넘친다는 것만 말해야겠다. 그렇지 않은가? ‘책 읽어주기=상처 치유’라는 외국의 명작, 아니면 ‘책 읽어주기=갈등 해소하는 복선’으로 설정하던, 그 옛날에 너무 치밀해서 재미없던 소설에 비하면 얼마나 엉뚱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것인가? 이 소설이 그 옛날에 나왔다면 어떠했을까? (나올 수 있었을까?)

이 소설집의 백미는 갈팡질팡하는 것에 있다. 갈팡질팡! 명확하지 않음! 이 소설 속의 모 씨는 이유도 없이 맞는다. 우연적이다. 굳이 이유를 탐구하면야 있겠지만, (당신이 우연히 길거리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해보자. 그 이유라는 것이 “당신이 그 길을 걸어서”라고 한다면 당신은 “옳거니!” 하겠는가?) 필연적이라고 하기에는 참 거시기한 것이다.

모 씨의 이야기는 다 그런 식인데, 이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왜냐? 서사를 중시하는 한국 소설을 향한 작은 반란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호, 통재라. 이기호, 정말 멋진 일 만들었다. 이 반란에 박수를.

이 소설들은 각각 구라와 엉뚱함으로 뭔가를 하려 했고 일정 부분 그것을 해냈다. 그것을 확인한 지금, 나는 당신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한국소설 재미없다는 말을 멈추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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